인턴을 시작하기 전 준비물이 여럿 있다. 그중 필수적으로 구매하는 것은 '크록스' 신발이다.
요즘 병원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도 실제 모습을 반영해 배우들이 모두 크록스를 신고 나오는 것 같다. 의사 옷차림에 대한 특별한 의식이 없던 시절 의사들이 병동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고 한다. 현재에는 병원 전체가 금연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의사들의 흡연 역시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가운을 입을 때 정장 혹은 수술복을 입는 것을 권고한다. 반바지나 짧은 치마, 화려한 옷은 되도록 자제하게끔 한다.
신발도 정장 차림이라면 구두를 착용해야 한다. 하지만 하루 종일 병원 이곳저곳을 걸어 다녀야하는 의사에게 구두는 불편하다(미국의 경우 구두 대신 편한 운동화를 신는 의사들도 많다). 물론 수술실에서는 수술장 내에서만 착용하는 깨끗한 슬리퍼를 신는다.
그 외에도 인턴이 환자 침대에서 처치를 하려면 신발을 편히 벗고 신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값싼 슬리퍼를 신는 것은 의사 가운에 품위를 무너뜨리는 모양새다. 발가락이 과도하게 노출되는 패션 슬리퍼도 영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크록스 신발이다.
크록스의 모양을 보면 분명 샌들의 일종인데 앞코 모양이 뭉툭하다. 기능화의 장점도 있어 환자의 침대를 끌거나 더러운 오물이 튈 때 발을 보호할 수 있다. 크록스 홈페이지를 보면 '일 전용 신발'이라 하여 병원에서 신을 수 있는 모델들이 따로 있다.
인턴의 경우 환자 침대를 끄는 도중 침대 바퀴에 발을 찧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 발가락이 노출되는 슬리퍼를 신고 있으면 심한 경우 발톱이 깨지기도 한다.
근무를 시작하면서 구입한 크록스 신발이 닳고 냄새가 나 바꾸기로 했다. 군청색 크록스는 몇 번씩 내 발가락을 보호해주었다. 오돌도톨 했던 밑창은 어느새 맨들맨들해졌다. 마음 먹고 크록스를 새로 주문했다.
여자 인턴들은 노랑색, 빨강색, 분홍색 등 알록달록한 색을 선호하고 발이 작은 인턴은 알록달록한 어린이용 크록스를 신기도 한다. 남자 인턴은 대개 검은색이나 군청색, 짙은 녹색 계열로 많이 신는다.
하지만 나는 하얀색 크록스가 신고 싶었다. 병원을 막 굴러야 하는 인턴이기 때문에 때가 많이 탈 것도 알고, 수술실에서 피가 튀기라도 하면 티가 날 것도 예상했지만 결국 하얀 새 신발을 신고야 말았다. 역시나 병동을 거니는 가벼움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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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