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오랜 시간 치아 교정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미국에서 치과 진료를 하러 갔다. 교정을 할까 말까, 이대로 살까, 지금 할까, 나중에 할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치아 교정에 대해 그동안 여러 군데 상담도 다녔다. 가는 치과마다 다른 얘기를 할 정도로 아들의 치아는 조금 어려운 경우였다.
하악은 정상이고, 상악은 작아서 치열도 고르지 않은데, 상악을 넓히기 위해서 입천장 중간을 열어 뼈나 인공뼈를 넣어 정상으로 만들고 나서 교정을 하자는 치과도 있었다. 수술비 2000만원에 교정비가 따로 드는 대공사다. 물론 그냥 교정만으로 해결된다는 치과도 있었다.
아들은 여러 군데 치과를 다니다가 어떤 필리핀 여의사가 하는 작은 치과에서 교정을 하겠다고 나에게 연락을 했다. 그래서 왜 그 치과에서 시술을 결정했냐고 물어보았다.
아들은 의학적 시술 방법과 비용을 상담하러 갔는데, 그 필리핀 여의사는 옆방에서 자기의 4살짜리 아들과 놀아주고 있다가 상담을 하면서 던진 의사의 말이 와닿았단다.
그 의사는 "그동안 이를 가리느라고 제대로 웃지도 못했겠어요. 손으로 가리고 웃었죠? 마음 고생이 심했겠네요!"라 말했다고 한다.
나는 아들과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아들이 치아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손을 가리고 웃거나, 마음고생을 했을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당연히 아들도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필리핀 여자 치과의사가 아들의 아픈 곳을 얘기하면서 어루만져 준 것이다. 그 날 아들은 그 치과에서 교정하겠다고 나에게 의논을 했고, 나 또한 그런 마음을 가진 의사에게 나의 아들을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7000달러(약 807만원)를 냈다.
아들은 나에게 말했다.
"엄마, 저는 의학적인 자문을 구하러 갔는데 전문적 이야기와 함께 의사가 기대치도 않았던 감성적인 터치까지 해서 놀라고 감동했어요! 저는 이 치과에서 교정하고 싶어요. 어려운 진료는 다른 큰 병원이랑 연계해서 한대요. 이 치과가 작고, 필리핀 여의사이긴 하지만 믿고 맡겨도 되겠어요. 내가 아는 사람들도 여기서 진료했는데 만족도가 높아요."
나는 아들에게 이야기했다.
"네가 의사가 된다면, 그 필리핀 의사와의 대화를 절대로 잊지말아라. 네가 의사가 되었을 때도 똑같은 방식으로 환자에게 상담하고, 환자의 아픈 몸과 아픈 마음까지 어루만져 줘야 한다. 환자의 마음을 열었을 때 치료가 더 잘 될 거야. 그 의사에게 너의 마음을 열었을 때 너의 지갑을 열었듯이, 대부분의 고객은 마음이 열리면 지갑은 저절로 열려."
VIP 고객을 많이 확보한 백화점이나 호텔은 최상의 서비스를 한다. 고객의 지갑을 열기 위해 자본이 허락하는 가장 멋진 서비스를 한다. 하지만 자본력이 부족한 개인 의원이나 병원에서는 하드웨어로는 절대 백화점, 호텔은 이길 수가 없다. 서비스 자체가 모두 돈이기 때문이다.
자본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면, 시설이 좋고 서비스가 좋은 큰 병원과 경쟁을 해야 한다면, 강남에 있는 인테리어 좋은 의원과 경쟁을 하거나 이제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병의원과 경쟁해야 한다면 하드웨어대신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는 수 밖에 없다.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서비스는 모두 해야 한다. 직원이나 의사의 친절한 접대, 세심한 배려, 따뜻한 눈빛, 배려하는 말 이 있겠다. 그렇게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연 다음 진료를 시작해야 한다. 환자의 마음이 봄 눈 녹듯이 녹으면 치료는 훨씬 잘 된다. 당연히 환자는 그 병원에서 지갑을 열게 될 것이다.
개원 17년째 쯤, 15km 떨어진 곳에 산부인과 하나가 개원을 했다. 그 이후로 우리병원을 다니던 산모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 산부인과 원장은 초음파 겔이 묻은 복부를 직접 수건으로 닦아주고, 초음파를 보고 침대에서 내려오는 산모의 신발을 신겨줬다.
환자의 손을 붙잡고 눈을 보면서는 "어머니, 임신해서 힘드시죠? 제가 그 마음 다 압니다. 저에게 모두 얘기하세요. 제가 다 해결해 드릴게요!"라고 이야기한단다.
평소 스스로 마음이 아주 따뜻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이런 '닭살' 돋는 멘트는 절대 하지 못한다. 개원 17년째 내가 보던 산모는 한 달에 10명 빼 놓고 거의 대부분 닭살 멘트를 날리는 그 산부인과로 가 버렸다.
나와 친한 보건소 직원이 나에게 왜 다른 산부인과 원장처럼 똑같은 말을 못하느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나는 결국 하지 못했다.
진심이면 통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진심이 있든, 없든 내가 생각하기에 '닭살' 돋는 말이나 행동이 환자들을 감동시킨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의 아들이 필리핀 치과 의사에게 감동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내 마음 속에 아무리 따뜻한 마음씨가 있다고 해도 표현되지 않으면 나의 고객은 그것을 읽을 수가 없다. 특히 처음 방문한 고객은 절대로 알 수 없다.
지금도 여전히 환자에게 닭살멘트나 닭살행동을 하는 것은 쑥스럽다. '내가 굳이 그렇게까지 행동해야 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의 아들처럼 모든 환자는 그런 행동에 감동을 하고 마음을 연다고 하지 않는가.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잘 듣지 못했지만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내가 나에게 오는 모든 환자를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환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환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족이 아니지 않은가. 사랑한다고 얘기를 하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해야 환자들은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다.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야 소통이 되고, 치료가 된다.
사랑을 표현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을 하자.
나의 진심이 전달될 수 있는 언어나 행동을 의도적으로 하자.
생각만 해서는 절대로 나의 마음이 전달될 수 없다.
사랑은 표현해야 사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