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기 위해서도 여러 가지가 필요하지만 불행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피해야 할 일도 있다. 위기관리를 잘 해야 한다. 군대에 갔을 때 잘못해서 폭발물을 밟게 되면 죽거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도 곳곳에 폭발물이 있을 수 있다. 개원해서 겪을 수 있는 위기는 세무조사, 건강문제, 현지조사, 사기나 보증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살면서 여러 번의 사기를 당했는데, 말하기 부끄럽지만 그 중에 최근 겪은 사건 한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지방흡입 관련 기기를 시범적으로 써보기로 했다. 피부과에서 쓰는 기계이고 장비가격은 1억5000만원이었다. 지방흡입 후 울퉁불퉁하거나, 턱 밑 또는 얼굴 등 약간의 지방이 있는 부위의 지방을 없애는 기계다.
판매업자인 권 모 대표가 우선 데모를 받아보라고 해서 턱밑 지방흡입을 해봤다. 시범사용한 지 몇일이 안지났는데 권 대표는 계속 찾아와서 6개월간 무상으로 쓰게 해줄테니 사용해보라고 했다. 기기의 효과를 확인하려면 2~3개월이 걸리는데 말이다.
6개월 내 반품이 되면 다른 병원에 팔 테니까 먼저 리스 계약서에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6개월 안에는 언제든지 반품을 해준다고 해서 일단 사인을 했다.
며칠간 같은 사람을 계속 만나다보니 사적인 얘기까지도 하게 되었다. 병원 인테리어를 고치고 싶은데 돈도 없고 은행에서 돈을 더 빌려주지 않는다고 했더니, 권 대표는 나에게 그런 돈은 자기가 구해 주겠다고 했다.
"어떻게 돈을 구할거냐?"고 물어보니 권 대표는 "그 기계에 대해서 한 번 더 리스를 끊으면 1억5000만원이 리스회사에서 나오는데, 그 돈을 나에게 주겠다"고 말했다. 그 기계는 다른 병원에 팔면 되니까 그 돈으로 인테리어를 하고 36개월에 걸쳐서 리스처럼 갚으면 된다고 했다.
"그거 불법 아니예요?"라고 물어봤다. 권 대표는 불법이 아니고 다른 원장님들도 그렇게 해서 돈을 쓴다고, 의사들 사이에서, 그리고 리스회사나 기계 파는 회사에서 많이 하는 일이라고, 개업해서 돈이 없는 원장들은 그렇게 해서 돈을 융통해서 쓴다고 얘기를 했다. 리스회사 직원을 오게 할테니 일단 사인을 하고, 그리고 생각 해 보라고 말 했다. 나는 뭐에 홀린듯이 권 대표에 말에 넘어가 일단 사인을 했다.
그리고나서 아무래도 찜찜했다. 결국 여러 가지 지식이 많은 원장님께 물어 보았다. 그 원장님이 깜짝 놀라면서 그것을 '공리스'라고 하는데 '공리스'나 '업리스'는 모두 불법이고 잘못하면 의사 면허에 문제가 생긴다고 빨리 없던 일로 하라고 얘기 해 주셨다.
그래서 사인을 한 바로 당일 밤, 두 건의 계약 모두 없던 일로 해 달라고 카톡을 보냈다. 권 대표는 알겠다고 답했다. 사인한지 하루도 안 지났으니까 문제가 금방 해결될 거라고 생각 했다. 그런데 "그러겠다"고 대답한 사람이 계약 해지 요청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금방 해결하겠다는 말만 하고 바로 다음 날 리스사에서 돈을 받아서 갚지를 않았다.
정말 큰 일이 난 것 같아서 원무과에 고백을 했다. 원무과에서 매일 전화로 사정도 해 봤지만 권 대표는 돈을 갚지를 않았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서 공리스만 겨우 해결했다. 나머지 기계는 쓰지도 않고 반품했는데 그 기계에 대한 리스료는 갚지를 않았다.
결국 계약한 날로부터 9개월이 지나 경찰서에 사기건으로 고소 했다. 그러던 중 다른 원장님들한테서 연락이 왔다. 권 대표와 그의 부인 최 모 씨에게 당한 의사가 22명 정도에 리스건은 30건 정도가 있다는 것이다. 기계 6대를 가지고 30개의 리스를 실행한 것이다. 권 대표는 의사 22명을 모두 바보로 만들었다.
더더욱 어처구니 없는 일은 6개월간 그 기계를 무료로 쓰라고 하고, 6개월 지나서 그 기계를 반품한다고 하면 다시 6개월 연장을 해 줄테니까, 6개월 더 사용하라고 하면서 다른 리스회사로 갈아타겠다고 의사에게 얘기를 한다.
이전 리스를 끄지 않고, 결국 2개의 리스를 실행시켜서 빚을 3억으로 만들어 놓은 의사가 8명이나 됐다. 어떤 의사는 같은 기계로 빚이 4억인 의사도 있었다. 모두 돈이 급했거나, 권 씨와 친분이 있는 의사였다.
개원 자금이 급하게 필요한 의사, 그냥 기계를 사용하라고 하니까 사용한다고 했다가 반품하려고 한 의사, 다른 자금이 급하게 필요한 의사를 속인 것이다. 공리스, 업리스 형태나 다른 리스회사가 이자가 싸니까 옮겨 타자고 하면서 그전 리스를 안 끄는 방식으로 여러 명의 의사에게 사기를 치고 다닌 것이다.
그 기계를 팔고 사기를 친 두 부부는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고, 최고급 차를 타고 다니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경찰서에서 나와 대질 심문을 하는데도 권 대표는 계속 그 돈을 갚겠다고만 말했다. 더 놀라운 것은 권 대표는 이미 의사들 사이에 상당히 소문이 났는데도 다른 원장들에게 의료기기 영업을 하고 있었다.
변호사를 선임해서 경찰서까지 갔지만 사기를 증명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은 몰랐다. 그리고 20억~30억원 정도의 많은 돈을 사기쳐도 생각보다 감옥에서 형을 사는 날짜가 많지 않다고 한다. 처음부터 사기를 안 당해야지 일단 사기를 당하고 나면 해결은 거의 어렵다고 보면 된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감정 소모도 많고 지친다. 화가 나고 자존감도 떨어지고 살 맛이 안 나게 된다.
이렇게 장황하게 얘기하는 것은 다시는 같은 수법으로 다른 의사들이나 누군가가 사기를 당하지 않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상식적인 수준보다 좋은 조건을 얘기하거나, 지나친 호의를 베풀거나, 너무 자주 찾아오는 사람은 대부분 목적이 있거나 사기를 칠 확률이 높다. 세상은 거의 대부분 상식수준으로 돌아간다. 절대로 공짜는 없다. 그리고 공짜가 가장 비싸다.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댓가를 치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