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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특별법 시행 4달째… 현실은 거북이걸음

박양명
발행날짜: 2017-04-18 05:01:59

"인식 달라졌지만 업무부담 그대로…당직 부담에 사표 쓰는 교수도"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그들만의 '특별한' 법이 만들어져 본격 시행된지도 어느덧 4개월째. 병원도, 전공의도, 교수도 인식의 변화는 분명히 있었다.

교수가 먼저 전공의와 대화의 시간을 갖고,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을 지급토록 급여체계를 개편하는 등 변화의 기미가 보였다.

경상남도 A종합병원 인턴은 "업무 특성상 80시간이 되면 딱 일을 끊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교수나 진료과장이 먼저 전공의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며 "수련 분위기가 확실히 더 부드러워졌다"고 말했다.

또 "당직이나 근무 시간을 확실히 정해서 근무시간이 넘어가면 전산 프로그램에 로그인 자체도 안 된다"고 했다.

서울 B대학병원 2년차 전공의도 "업무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규정하고 초과분에 대해서는 수당을 더 주는 형태로 급여체계가 바뀌었다"며 "이전에 없던 전공의 교육 프로그램도 따로 만드는 등 예전에는 고민하지도 않았던 부분을 신경 써줘야겠다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전공의? 교수?…그 많던 업무량은 누가 메우나

변화가 법을 따라가고는 있지만 그 속도는 느렸다. 초과근무는 피할 수 없었고 주 80시간 근무에 따른 업무 공백을 나눠서 부담해야 한다는 데 대한 반감은 여전했다.

C국립대병원 전공의 3년차는 "신임평가위원회 당시 수련규칙 기준을 강화했을 때는 현장이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 법이 생기니까 변화는 확실히 느낄 수 있다"면서도 "아직 법의 정신을 이해하는 수준까지는 아닌 것 같다. 편법이 많다"고 털어놨다.

수련시간은 80시간을 제한하고 있지만 업무량은 전혀 줄어들지 않아 초과 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전공의는 "다음날 환자한테 수술 설명을 해야할 게 15건이라면, 모든 수술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료를 정리해야 한다"며 "마지막 수술이 끝나면 80시간은 어느덧 훌쩍 넘어가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하루 일당이 포괄임금으로 묶여 있어 초과 근무를 해도 수당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사실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병원 특성상 의료진의 초과 근무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경상북도 D종합병원 외과 과장도 "전공의 유무와 상관없이 병원이 운영되는 시스템에서 수련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실의 전공의의 노동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80시간이 법에 보장됐다고 해도 (전공의들이) 인정에 끌려 자꾸 양보하는 부분이 크다"고 말했다.

빅5 병원 중 한 곳의 2년차 전공의도 "80시간 근무에만 초점을 맞추고 여기에만 신경을 쏟다 보니 과도했던 전공의 업무를 분산해야 하는데 이를 어떻게 할 지에 대한 규정이 없다"며 "인력 충원으로 이어지지 않으니 내부에서 나눠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공의가 없는 외과계열은 레지던트의 업무 공백이 인턴에게 넘어가기도 한다.

E 대학병원 교수는 "전공의가 부족한 진료과는 인턴이 당직을 맡고 주치의까지 맡기고 있다"며 "인턴은 의사가 하지 않는 잡일을 하는 분위기였는데 이제는 주치의를 하며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턴의 만족도는 오히려 높은 편"이라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전공의 업무량이 줄었다면 상대적으로 전임의나 교수의 업무량이 늘어 또 다른 형태의 불만도 나오고 있다. 사람을 더 충원해도 업무 공백을 메울 수가 없다는 것.

부산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전공의들이 근무를 80시간까지만 해야 하니, 나머지 시간을 혼자서 부담하고 있다. 일요일을 제외한 주 6일을 근무하는 것.

F국립대병원 내과 교수는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업무 공백을 교수들이 부담하고 있다"며 "병원 차원에서 올해만 해도 내과와 외과를 합쳐 10여명의 교수를 충원했지만 환자도 추가로 늘어나다 보니 업무는 늘면 늘었지 줄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또 "내과는 만성 환자가 많아 숫자가 늘어나는 게 특징"이라며 "의료진만 충원한다고 업무 공백이 해결될 게 아니다"고 말했다.

A종합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역시 "전공의특별법 시행 후 밤늦게 퇴근하고, 밤중에 자다가도 콜 받고 달려와야 한다"며 "교수는 사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60세가 넘은 교수들은 당직을 서야 하는 상황이 오자 아예 사표를 던지는 일도 벌어지는 상황.

서울 G대학병원 교수는 "전공의 특별법 시행에 따라 의료진 전원이 당직에 동참해야 한다는 공고가 나오자 60이 넘은 교수들은 정년퇴직 나이가 아닌데도 사표를 쓰더라"고 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모 대학병원 교수는 "병원 내에서 전공의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며 "전공의 수련체계가 개편됐다면 그에 따라 병원 시스템 자체도 큰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상태가 이어진다면 전공의는 전공의대로, 교수는 교수대로 지칠 수 밖에 없다"며 "전공의특별법의 후폭풍은 단순한 인력의 문제가 아니다. 수련병원으로서 제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병원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