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치러지는 선거인 탓에 각 당 대선캠프 보건․의료 정책 담당자들은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기보다 기존 정책을 재활용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의료계 일각에서는 그만큼 현 의료전달체계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방증이라는 의견과 함께 새로운 대안이 없다는 지적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전문기자협의회는 지난 24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초청 보건의료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정책토론회에는 김용익 문재인 후보 정책본부 공동본부장(더불어민주당, 기호1번), 김승희 홍준표 후보 중앙직능대책위원회 제5본부장(자유한국당, 기호2번), 김원종 안철수 후보 정책본부 부본부장(국민의당, 기호3번), 박인숙 유승민 후보 정책위원회 부의장(바른정당, 기호4번), 윤소하 심상정 후보 조직본부장(정의당, 기호5번) 등이 참석했다.
대형병원 환자쏠림·중소병원 살리기 정책은?
5개 당 모두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을 막고 1차의료를 활성화하며 중소병원의 기능 재정립을 해야 한다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했지만 세부 정책은 달랐다.
하지만 간호인력 및 의사인력 재편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뚜렷한 비책을 내놓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더불어민주당=문재인 후보 캠프는 300병상 이하 중소병원 설립 제한, 외래환자 진료 안하기 시범사업 실시 등을 제시했다.
김용익 본부장은 "과거에는 병원이 자본투자를 많이 하지 않아 노동집약적이었지만 자본집적도가 높아질수록 병원 규모는 커져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소규모 병원이 많다"고 현실을 짚었다.
그러면서 "300병상 이하 병원들이 설립되지 않도록 병원 규모 제한을 더 크게 해서 신규진입을 막고 사업을 그만두기 원하는 병원들이 시장에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중소병원 문제를 푸는 핵심적 방식이다"고 제안했다.
이어 "소규모 중소병원은 요양병원이나 전문병원 등으로 기능을 전환하고 전문병원은 장려하되 규율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형병원 환자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본부장은 "대형병원에 경증 환자가 가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병원이 외래를 줄이는 것은 약간의 충격요법이 필요할 것 같다"며 "외래없는 병원 시범사업을 실시해 외래 환자 없이도 병원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자유한국당=홍준표 후보 캠프는 기존에 있는 각종 제도를 보다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김승희 제5본부장은 "중소병원이 고사하는 것은 의료기관 무한경쟁 체제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기 때문"이라 진단하고 "역할 정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척추, 여성, 노인치매 등 특화된 전문병원으로 전환하거나 지역거점병원을 전환해 중소병원의 필요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며 "경쟁력 발휘를 위해서는 수가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입원료 차등수가를 비롯해 중소기업청과 연계해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챙겨야 한다는 게 자유한국당의 방안.
김 본부장은 "중소병원 고사, 일차의료 활성화 문제의 근원은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이라는 문제의식을 내놓고 '수가'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라고도 했다.
대형병원에서 외래진료가 아닌 중증 아급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도록 외래진료를 제한하고, 수가 조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아울러 지역병의원 회송료도 현실화해야 한다며 기존 정책 강화 방향을 제시했다.
♦국민의당=안철수 후보 캠프는 일차의료지원특별법에 이어 '중소병원육성법' 제정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원종 부본부장은 "지역중소병원 육성법을 만들겠다"며 "약사 등 필요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지원책을 담고 조세나 재정지원, 수가가산 등의 내용을 담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또 "농어촌 지역은 거점병원중심으로 취약지 중소병원을 묶고, 도시는 신속하고 저렴하게 진료할 수 있는 영역을 찾는 데 집중하겠다"며 "수익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병원은 합리적으로 M&A 할 수 있는 방안도 찾겠다"고 제시했다.
대형병원 환자쏠림 현상은 약제비 인상으로 부분적 성과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여전히 쏠림현상이 이어지고 있는만큼 병원간 질적 격차를 줄이는 데 신경을 쓰겠다고 했다.
김 부본부장은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은 병원 간 의료격차에서 기인한 것"이라며 "진단 단계에서부터 격차가 있다. 인공지능 같은 정밀의료가 비수도권으로 확산될 수 있다면 진단의 격차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수술 부분은 지역거점병원을 육성해서 입원진료 취약지 거점병원을 육성하고 지방대학병원은 권역거점병원을 발전시킬 것"이라며 "수도권병원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데 시설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전문병원도 육성하기 위해 당근책을 마련하고 단골의사제도와 연계해 건강관리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바른정당=유승민 후보 캠프 박인숙 부의장은 중소병원 지역 및 전문 특성화로 가야하고 대형병원의 기능을 '연구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거점으로 활로를 찾아야 한다"며 "전문병원 선정 기준을 세분화해 전문병원을 활성화하고 농어촌, 산업재해 등 지역특성에 따라 거점화 하는 방안이 있다"고 제시했다.
또 "의료전달체계는 따로 생각할 게 아니라 다같이 맞물려 가야 하는 것"이라며 "대형병원들이 외래환자 1만명 돌파라는 것을 발표할 때마다 불편했다. 대형병원도 연구를 중심으로 하도록 변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구지원을 늘리고 일반환자 보는 걸 줄이는 수가 정책도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정의당=심상정 후보 캠프 윤소하 본부장 역시 중소병원은 '전문'으로 특성화하고 경증 외래환자를 많이 보는 병원들에게는 디스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했다.
윤 본부장은 "대형병원 외래 기능은 중증질환, 희귀난치성 질환 영역으로 제한하고 경증 외래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디스인센티브를 부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소병원도 중앙과 지역 간 격차가 엄청나게 크다"며 "역할정립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역거점병원, 전문병원, 요양병원 등으로 잘 분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규모 중소병원 난립은 찬성하지 않는다"며 "전문병원 역할을 재구성하고 지역별 병상 총량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료계 "갈 길 먼 의료전달체계, 참신한 대안 없나"
이날 토론회에서 각 당이 제시한 '익숙한 공약'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각 당이 제기한 의료제도의 문제점은 그동안 의료 정책과 의료전달체계를 논할 때 항상 문제로 대두되던 것들"이라며 "병상총량제, 의료기관 종별 기능 확립, 대형병원 외래 지양 등 공약으로 내놓은 것들 역시 귀에 못이 박힐 만큼 익숙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만큼 국내 의료정책과 의료전달체계에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며 "하지만 그동안 문제로 인식했던 것들이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고 대안으로 제시했던 것들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데 각 캠프에서는 여전히 똑같은 문제제기와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며 "대선공약인만큼 거시적인 면을 다루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공약을 어떻게 실행할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다. 특히 당장 실현 가능하고 변화 가능한 정책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해보인다"고 아쉬움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