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반변성 환자들에게 Anti-VEGF 제제는 지푸라기 같은 마지막 희망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을 이유로 환자들의 희망을 꺾고 있다."
황반변성 환자들의 절규다.
황반변성. 눈의 안쪽 망막 중심부에 위치한 신경조직인 황반이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변성이 일어나 시력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으로, 만 65세 이상 인구에서 법적 실명 빈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특히 삼출성 황반변성의 경우 전체 황반변성의 10~20% 정도를 차지하며,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시력이 빠르게 저하돼 많은 환자들이 진단 후 2년 내에 실명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질환이다.
과거에는 열레이저응고술이나 광역학치료법을 썼으나 부작용과 비용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후 '루센티스' (라니비주맙)'와 아일리아'(애플리버셉트) 등 신생혈관 생성 촉진 인자인 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VEGF)를 억제하는 Anti-VEGF 제제들이 나오면서 질환의 진행을 지연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문제는 건강보험에서 Anti-VEGF 제제 투여를 환자당 14회까지만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황반변성 환자들은 이 보험급여가 자신들의 마지막 희망을 꺾고 있다며 전향적 급여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메디칼타임즈는 황반변성환우회 조인찬 회장을 만나 황반변성 환자들의 어려움과 급여 확대에 대한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조인찬 회장은 현재 시각장애 1급이다. 중심시력은 전혀 나오지 않고 주변시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쉽게 말해 시력검사를 할 때 숫자판은 고사하고 숫자판을 가리키는 간호사의 손 자체가 안 보일 정도다.
컴퓨터는 음성 프로그램을 통해 사용하고 있고, 문자 메시지는 글자 크기를 최대한 확대해서 보고 있다. 나머지 글자를 볼 때는 돋보기를 이용하고 있다.
조인찬 회장에게 황반변성이 찾아온 것은 지난 1988년도. 당시 조 회장은 캐나다로 출장을 갔다가 나이아가라 폭포를 찾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거대한 물줄기 옆 아치 모양으로 아름답게 뻗어 있어야 하는 무지개의 모양이 굴절돼 보였다.
이전에도 눈이 침침하거나 굴절돼 보이는 경우가 있었지만 단순히 피로탓으로만 여겼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무지개가 아치 모양이 아니라니… 조 회장은 자신의 눈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고 귀국하자마자 대학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대학병원에서도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았다. 조 회장에 따르면 당시 안과 교수는 중심성 망막염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증세라며 6개월 동안 관찰만 했다.
그러면서 오른쪽 눈은 점점 악화됐다. 왼쪽 눈은 눈부셔서 해를 못보지만 오른쪽 눈으로는 해를 볼 수가 있었다. 몇 달이 더 지나면서 오른쪽 눈에 해가 아예 안 보였다. 조 회장은 비로소 자신의 오른쪽 눈이 실명했다는 것을 알았다.
실명을 막기 위한 조인찬 회장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어렵게 찾은 미국 미시건대학에서는 그에게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당시 안과 치료로 세계 제일의 권위를 자랑한다는 러시아 표도로프 클리니컬도 찾았지만 특별한 치료는 받지 못했다. 다만 왼쪽 눈이라도 지키기 위한 보존적 치료만 받았을 뿐이다.
오른쪽 눈 이어 왼쪽 눈까지…
그나마 왼쪽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그에게 또 다시 시련이 닥쳤다.
오른쪽 눈에 황반변성이 온 후 12년 만에 2000년 2월에 왼쪽 눈에도 황반변성이 왔다. 설을 앞두고 스키장을 갔는데 왼쪽 눈으로 보이는 슬로프가 휘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왼쪽 눈에도 황반변성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 조 회장이 받은 치료는 광역학치료법. 그러나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눈은 갈수록 망가져갔다.
그런 그에게 한줄기 희망이 생겼다. 2005년 Anti-VEGF 제제가 나온 것이다.
그는 약이 나오자마자 바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치료비는 회당 200~250만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가약이었지만 왼쪽 눈의 잔존시력으로 버티던 그에게 치료비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Anti-VEGF 제제를 맞다가 병의 진행이 더뎌지면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한 대체약제를 맞았으나 또 다시 신생혈관이 진행하거나 출혈이 있을 때는 다시 Anti-VEGF 제제를 맞았다.
병의 진행이 멈출만도 했건만 시력저하는 계속 되고 있다. 그를 치료하던 교수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잔존시력이라도 보존하기 위해 주사를 안 맞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2015년 하반기, '루센티스'를 맞았는데도 혈관이 줄어들지 않았다. 교수는 '아일리아'를 맞아보자고 했다.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었던 아일리아를 맞기 시작했고 혈관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았고 크기도 많이 줄어들었다.
"경제활동 어려운 황반변성 환자들, 보험 끝나면 사실상 치료 포기"
기쁨도 잠시, 조인찬 회장은 검사를 하러 갈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한다. 환자당 14회로 제한돼 있는 보험 기준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초까지 14번의 주사를 맞았다. 보험에서 인정하는 투여 횟수가 끝난 것. 다행히 마지막 주사 이후로 병이 진행되지 않고 있지만 또 다시 진행된다면 전액 본인부담으로 주사를 맞아야 한다.
하지만 고가약을 본인 부담으로 맞기란 쉽지 않다. 그는 만일 병이 진행된다면 아일리아가 아닌 대체약을 써야 하나 고민 중이다.
그에 따르면 황반변성 환자들은 질환의 특성상 사회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으면 치료를 포기할 수 밖에 없다.
"황반변성 환자들은 시력 때문에 경제활동이 어려워요. 14회 접종이 끝나면 경제적 형편 때문에 비급여로 치료를 이어가기가 어려운 상황이죠."
"사실상 아일리아 등 Anti-VEGF 제제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자식에게 손 벌리기도 어려워요. 이게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불운한 현실입니다. 건강보험료는 꼬박꼬박 내고 있는데 말이죠."
"감기같은 질환과 달리 황반변성은 실명으로 이어져 생활하는데 불편함을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언제까지만 보험이 되고 그 이상은 안 된다는 발상과 정책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조인찬 회장의 질문에 보건당국은 "보험재정이 빈약합니다"라는 천편일률적인 답변 뿐이다.
건강보험에서 치료횟수를 제한하려면 그 횟수가 완치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14번까지만 건강보험을 인정하려면 어떤 황반변성도 14번 투여에 치료가 끝난다는 보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14번이라는 제한만 두고 있어요."
세계적으로 황반변성 치료제 보헙급여를 횟수로 제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호주 밖에 없다. 호주의 경우 18번까지 보험급여가 되지만 그 이후부터는 제약회사에서 100% 부담한다.
"황반변성 치료제는 마지막 희망, 14회 투여횟수 제한 없애야"
그는 황반변성 치료제 투여 횟수 제한을 아예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다.
"황반변성 치료제 투여 횟수 제한을 없애야 해요. 앞서 말했듯 그 횟수면 100% 완치가 된다는 전제 하에서 제한이 이뤄져야 합니다. 횟수를 조금 늘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는 황반변성 치료제가 환자들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한다.
"황반변성 치료제는 마지막 한가닥 남은 지푸라기에요. 그 지푸라기가 눈 앞에 있고 손 내밀어 잡을 수 있는데 급여가 막고 있어요. 환자들의 그런 애타는 심정과 절규를 정부에선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겁니다."
"손녀딸 넘어져 피가 나도 볼 수 없어 발만 동동"
질환을 오래 앓으면서 시력은 잃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단단해졌다. 하지만 삶은 늘 거친 길과 같다.
"길을 걷다보면 누군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요. 아는 사람이 내게 반갑게 인사하는 줄 알고 그 손을 잡습니다. 눈이 안 보이다보니 인사를 못 받아 오해를 사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막상 손을 잡고 보면 노숙자분들이에요. 구걸하는 손을 잡고 인사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자주 발생해요."
헤프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슴 아픈 일도 생긴다.
"5살 손녀 아이가 넘어졌어요. 피가 난다는 것은 알겠는데 눈이 잘 안 보이니 피가 코에서 나는지 입술인지 치아인지 알 수가 없다보니 응급처치를 할 수가 없었어요. 급한 마음에 아이를 업고 겨우겨우 약국을 찾아간 적도 있었죠.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가슴 아프고 안타깝죠."
손주들이 장난을 치다가 손발톱이 깨져 아파해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손주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가족 중 누군가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마지막 희미하게 남은 잔존시력에 기대어 감사하며 살아간다.
"황반변성은 특정한 이들에게만 걸리는 질환이 아니고 누구나 걸릴 수 있어요. 원인도 불분명하죠. 하지만 일단 병에 걸리면 삶의 질은 180도 바뀌어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죽을만큼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그렇게 사느냐고 물어요. 하지만 이렇게라도 살아야 해요. 전맹 환자들보다는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행복을 지키지 위해 황반변성 치료제 급여 확대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보건당국의 보험 관계자들이 이 병이 걸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래야 앞으로도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핑계를 댈 수 있을 것이라는 반어적 표현이다.
"정부 보험관계자들과 그 가족들이 황반변성에 안 걸리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야만 앞으로도 당당하게 재정이 없어서 보험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만일 그들이 황반변성을 겪게 된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건강보험 재정 핑계를 대지는 못할테니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