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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사 잡겠다던 '설명의무' 유령법 전락 위기

박양명
발행날짜: 2017-05-23 05:00:59

현두륜 변호사, 법제화 과정 유감스럽고 충격적…현장 혼란 불가피

법원 판례로만 존재해온 의료진의 '설명의무'가 6월 21일, 법제화를 앞두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두륜 변호사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변호사는 최근 서울의대에서 열린 대한의료법학회 월례발표회에서 의료법에 설명의무를 법제화 하는 과정을 발표하며 "그 내용이 유감이고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다음달 21일부터 본격 시행될 설명의무법은 수술, 수혈, 전신마취를 하는 경우 환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게 골자다.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하는 사항은 환자에게 발생하거나 발생 가능한 증상의 진단명, 수술 등 필요성, 방법 및 내용, 설명하는 의사 및 수술 등에 참여하는 주된 의사의 이름, 예상되는 후유증 또는 부작용, 수술 등 전후 환자가 준수해야 할 사항 등이다.

이를 어겼을 때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즉, 의료사고로 인한 민사 소송에서 민사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보건복지부나 시군구 보건소 같은 행정기관에서 설명의무 위반 여부를 판단해 행정 처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두륜 변호사는 "국회에 설명의무 입법안이 발의된 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때까지 관련 공청회나 전문가 토론회는 없었다"며 "특히 보건복지위원회의 대안에는 설명의무 위반에 대한 형사처벌 및 자격정지처분 등 논란의 소지가 많았음에도 심도있는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혼란한 시국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의사의 설명의무가 의료실무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를 감안할 때 이번 의료법 개정 과정은 상당히 부실하게 진행됐다"며 "졸속입법"이라고 꼬집었다.

실무에서의 혼란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행정기관이 설명의무 위반을 이유로 과태료 처분을 하려고 할 때 환자에게 의사결정능력이 있었는지 여부를 실무진에서 판단해야 하는데 상당한 애로가 있을 것"이라며 "어떤 환자에게 진료 당시 의사결정능력이 있었는지 여부는 판단하기 매우 어려운 법률적 문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사결정능력은 획일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환자의 정신적 발달 정도, 진료당시 상태, 대상이 되는 의료행위 종류와 난이도 등을 종합해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보건소 공무원이 이를 판단할 능력이 있는지도 걱정스럽다"고 털어놨다.

설명의무 대상을 제한하고 있는 부분의 기준이 불명확하며 설명 및 동의를 받는 과정에 상당한 의학적 내용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현 변호사는 "최근 많이 이뤄지고 있는 중재적 시술은 수술 못지않게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입힐 수 있다"며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입힐 우려에 대한 기준도 불명확하다"고 비판했다.

또 "아무리 의사가 대화로 설명을 충분히 했더라도 서면 동의를 받지 않았다면 의료법상 설명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며 "앞으로 설명 및 동의서에 상당히 많은 의학적 내용이 포함될 것이다. 설명의무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의학교과서를 복사해 환자에게 교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현 변호사는 앞으로 설명의무 위반을 둘러싼 분쟁과 갈등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기존에는 의료행위 결과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문제되지만 개정된 의료법은 의료행위 결과를 따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록 설명의무 대상이 되는 의료행위의 범위가 제한되기는 했지만 설명 및 동의사항이 늘어났고 설명의무 면제도 기존 법리보다 줄었다"고 덧붙였다.

이에따라 행정기관 개입은 설명의무 이행을 확보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지나친 개입이나 일률적 판단은 오히려 의료인과 환자사이 대화에 의한 설명을 방해하고 형식적, 방어적 설명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현 변호사의 판단이다.

"임상에서 혼란 예측가능하지만 대응책 없다"

법무법인 제현 구영신 변호사는 설명의무법의 입법목적에서부터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유령수술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다가 설명의무법까지 의료법안에 넣는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며 "유령수술이라는 행위 자체를 제제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한데 이상한 형태로 의료법이 개정됐다"고 비판했다.

법이 시행되면 임상현장에서의 혼란은 예측가능하지만 대응책은 마땅치 않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조춘규 법제이사(건양의대)는 "수술을 하면서 수혈을 하는 게 아니라 정기적으로 수혈을 해야 하는 환자도 있는데 이들이 올 때마다 설명을 들었다는 동의서를 받아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현실에 맞지 않다"고 털어놨다.

대한의학회 이윤성 회장도 "한 환자에게 한 개가 아닌 여러개의 수술이 이뤄질 수도 있는데 이 때 설명 동의서에는 수술 각각에 대해 주된의사의 서명을 다 받아야 하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두륜 변호사도 이 같은 우려와 의문에 공감하며 "유령의사를 막기 위해 설명의무 규정을 넣었는데, 이 때문에 설명의무가 유령이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