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시간의 진통을 겪던 산모에게 산부인과 의사는 1시간 30분 동안 쉴 수 있는 시간을 줬다. 태아심박동을 관찰하기 위한 장치도 쉬었다.
그 사이 태아가 사망했다. 쉬지 않고 태아심박동을 관찰하고 있었다면, 즉시 제왕절개를 했다면 태아가 사망하지 않았을까.
"의사의 과실로 태아가 사망했다"라는 원인과 결과에 대한 관계를 검사가 증명해내야 한다.
자궁 내 태아사망으로 금고형을 선고받은 산부인과 의사에 대한 2심 첫 번째 공판에서 판사는 검사에게 이같이 주문했다.
인천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9일 오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의 산부인과 의사 이 모 씨에 대한 항소심 첫 번째 공판을 진행했다.
재판장은 "1심에서도 즉시 제왕절개를 했다면 태아가 사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는데 이게 과연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나"라고 반문하며 "제대로 태아심박동 검사를 했어도 태아가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지 검사 측에서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즉 1시간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사이에 자궁 내 태아 사망이 발생했다. 그사이 두 번 체크를 했더라도 태아를 살릴 수 있었을까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씨측 변호인도 "과실 부분이 애매하다"며 "물론 가능성은 있었겠지만 엄격하게 입증된 게 아니다. 형사는 민사보다 더욱 엄격하게 증거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부검이라도 해서 사망 원인이 나왔다면 그걸로 따져볼 수 있는데 이번 사건은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다"며 "외국 사례를 보면 태아심음검사를 한다고 해도 잠깐 사이 태아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자궁 내 태아사망은 부검을 해도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과관계는 원인을 알아야 따질 수 있는데 원인 불명"이라며 "민사 소송에서 의료사고는 어느 정도 과실이 인정되면 인과관계 추정이 되는데 형사에서는 인정해주지 않는다. 1시간 반 사이 어느 순간 알아서 제왕절개를 했더라도 아이를 살릴 수 있었겠는가에 대한 입증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의료분쟁중재원의 의료감정만 2번, 절차 문제 있다"
이 씨 측은 증거조사 절차 과정에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두 번에 걸쳐 의료감정을 진행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다.
변호인은 "원심에서 대한의사협회, 산부인과학회 등 다른 기관의 감정도 신청했었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의료분쟁중재원에 감정을 의뢰했다"며 "같은 기관에서 연거푸 감정을 하는 것은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분쟁중재원이 아닌 다른 기관, 의협, 학회에 추가로 감정을 받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또 "의료 사고에서 의사 과실이라는 것은 일반인 기준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의사의 주의 정도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씨의 의학적 조치에 어떤 과실이 있는지 판단을 위해 전문가 진술서를 받았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전문가 진술서는 서류로 제출할 것을 허락했지만 타 기관에 감정 신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장은 "의료분쟁중재원의 감정 내용이 모순되거나 납득 안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의료분쟁중재원 감정도 산부인과 전문의가 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산부인과) 전문의라면 심박동수 체크 권고 사항에 대한 의미 등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라며 "특별히 이 씨에게 원한이 있지 않는 한 거짓으로 감정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