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손바닥 2cm 긁힌 상처'
'3~4일간 치료를 요하는 외음부 출혈과 상박부 근육통'
'얼굴 및 팔 다리 멍'
대법원에서 상해로 인정하지 않는 판례들이다.
법조계와 의료계는 '문진'으로만 이뤄진 (상해)진단서의 법적 효력에 대해 회의감을 드러냈다.
대한의료법학회는 보건의약식품전문검사 커뮤니티와 17일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춘계공동학술대회를 열고 상해진단서의 증명력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진단서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진찰 결과에 대한 판단을 표시해 사람의 건강 상태를 증명하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를 말한다.
창원지검 진주지청 성재호 검사는 "경미한 상해일 때 의사는 피해자의 주관적 호소 등에 의존하고 의학적 가능성에 기초해 치료 기간이 2~3주 정도 경추염좌나 요추염좌 진단서를 발급하고 있다"며 운을 뗐다.
이어 "수사 및 공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상해 여부를 다툴 때 진단서의 증명력을 보완해 피해자의 상해 여부를 명백히 밝히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부족한 증명력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나 목격자의 진술 ▲의사의 진술 ▲진료기록부 등 의무 기록 ▲의무 기록 감정 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마디모 프로그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적정 입원일수 분석 ▲건강보험공단의 이전 진료내역 등을 추가로 확인한다.
성 검사는 "간호기록지는 특히 일반적 언어로 돼 있어 쉬워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이동진 교수도 "문진에 의거해서 전형적으로 외부적 증상 발현이 없는 염좌나 좌상으로, 특히 진단 결과가 1~3주 정도로 별도 치료가 필요하지 않을 때는 상해진단서를 성실하게 작성했더라도 증거력이 줄어든다"고 동의했다.
그러면서 "진단 수단 중 가장 기본이 되는 문진에서 대개의 환자는 가능한 한 사실대로 증상을 진술할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면서도 "법적 분쟁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진단서를 받고자 하는 환자라면 허위 진술을 하거나 중요 진술을 누락할 강력한 유인이 있다"고 짚었다.
이어 "환자의 의도를 의사가 어디까지 스크리닝 할 수 있는지가 문제"라며 "역할 갈등에 휘말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인재 변호사(법무법인 우성)는 실제 현장에서 진단서 증명력이 배척되는 사례를 꺼냈다.
그는 "산업재해 심사위원을 하고 있는데, 심사 과정에서 주치의가 작성한 진단서는 사정없이 배척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환자를 계속 보다 보면 환자가 (진단서를) 해달라고 했을 때 안 해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진료기록부 기재 내용, CCTV, 영상 자료, 제삼자의 감정 기록 때문에 진단서 내용은 충분히 배척될 수 있다"며 "환자가 처음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호소하는 내용은 대부분 사실일 가능성이 많은데, 이 내용과 진단서가 일치한다면 팩트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진단서 작성은 의무…악마 소리까지 들어봤다"
하지만 의료진 입장에서 진단서 작성은 '의무'이고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무조건 무시하기에는 분명히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다.
국립경찰병원 이승림 진료부장(정형외과)은 "수사 기관은 제발 1주일짜리 진단서를 내지 말아달라고 한다"며 "진단서를 내면 불법적 사실이 인정돼 기소를 해야 하고 수사를 진행해야 하니 기간이 짧은 진단서는 안 낼 수 없냐고 물어올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 입장에서는 진단서를 쓰는 게 의무"라며 "진단서 기간이 며칠 안 나온다고 하면 환자는 정상이라고 확신할 수 있냐고 되묻는다. 그럼 또 거기에 대한 답변은 못하기 때문에 진단서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인천성모병원 김봉겸 교수도 "진단서 작성요령을 보면 상해진단서에서 의사가 직접 관여하는 기간인 치료기간과 멍처럼 특별히 의사 손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기간인 치유기관으로 나눠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에 따라 작성을 해도 피해자나 가해자 측에서 항의를 받고, 악마라는 소리까지도 들어봤다"고 털어놨다.
"진단서 꼼꼼히 쓰고, 사실-판단 구분해야"
전문가들은 진단서, 특히 상해진단서 서식을 보다 꼼꼼히 쓰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동진 교수는 "진단서 서식에 진단 근거의 개요를 표기해 환자 진술에 의존한 진단과 그 밖에 상당한 진찰 및 검사 결과가 포함된 진단을 진단서만으로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또 "상해는 기본적으로 규범적 개념이므로 규범적 평가에 필요한 사실 요소를 세분해 오해의 소지 없이 전달하도록 진단서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즉, 의사가 상해를 진단할 것이 아니라 질병과 판단 근거만 기재하고 치료기간도 상해에 전형적 내지 표준적 치료기간임을 진단서 서식 자체에서 분명히 해야 하며 최종 진단인지 임상적 추정인지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 오세진 검사도 "상해진단서의 서식을 규격화해 강제하고 있지 않아서 작성원칙에 어긋나는 상해진단서가 빈번하게 제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해진단서 작성방법을 보다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며 또 상해 원인이나 추정되는 상해 원인 등에 환자의 주장에 의한 기재라는 취지를 부기할 수 있는 선택칸을 만들어 누락되는 것을 방지하는 방안이 있다"고 제안했다.
실제 상해진단서에 진단명과 치료기간 정도만 기재하고 나머지는 비워둬 수사기관에서 의료기관에 추가로 전화를 하거나 증인 요청을 하는 경우가 빈번한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의료법학회 이숭덕 회장(서울의대)은 진단서를 볼 때, 사실과 주장을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사실 진단서를 쓰는 게 의사의 본업이 아니기 때문에 잘 못 쓴다"며 "사실과 판단을 구분해서 쓰려고 노력하고 근거를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상해 피해자에게 손바닥에 2cm 긁힌 상처가 났을 때, 긁힌 상처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고, 상해로 볼 것인가의 문제는 의사의 판단이다.
이 회장은 "상해진단서 무용론자가 많다"며 "의사는 일반적인 진단서에 상해 원인, 상황, (치료) 주수 등의 팩트를 쓰고, 팩트와 판단을 가려서 읽으면 진단서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