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병원 한 임상교수가 선배 교수와의 갈등으로 결국 사직했다. 일각에선 선배교수의 갑질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 메디칼타임즈는 수면 위로 떠오른 일선 대학병원 내 젊은 교수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재조명해봤다. <편집자주>
지방 A국립대병원 외과 A임상교수: 처음 임상교수로 임용됐을 땐 정교수를 꿈꿨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데까지 1년이 채 안 걸렸죠. 교수직은 커녕 외과의사로 성장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사직했어요.
B대학병원 흉부외과 B임상교수: 저는 분명 계속 일했는데 병원 내에 잡힌 실적은 형편없었어요. 분주하게 수술장을 오갔지만 저의 실적 상당수는 시니어 교수에게 돌아갔어요. 수년째 관행처럼 이어져오던 터라 새삼 문제를 제기할 수도 없는 게 분위기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게 현실이죠.
선배 교수 갑질에 떠나는 젊은 교수들
이는 임상교수들 사이에선 놀랍지 않은 에피소드다. 다수의 젊은 교수가 소위 시니어 교수의 갑질을 참지 못해 병원을 옮기거나 교수직을 포기하고 있다.
대학병원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개 교수직은 겸직교수, 기금교수, 임상교수, 진료교수 등으로 구분한다. 그중 교육부 발령을 받는 겸직교수와 학교 소속인 기금교수는 신분이 안정적인 반면 임상교수 특히 진료교수는 신분이 불안정하다.
병원의 필요에 의해 일시적으로 1~2년 채용하는 진료교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기재부 정원을 받는 임상교수도 신분상 불안감이 크다는 지적이 거세다.
병원 측에서 사실상 정규직이라고는 하지만 임상교수들은 재계약이 다가올수록 고용 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게 젊은 교수들의 하소연이다.
일부 젊은 교수들은 임상교수 정원만 책정하고 이후 관리는 부재한 기재부 측에 관리소홀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기재부에서 정원 받아 정규직으로 전환해놓고 실제로는 2년간 계약직으로 돌리고 있으니 답답하죠. 임상교원에 대해 안이하게 관리하고 있는 기재부 측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기재부 측에 확인한 결과 각 대학별 임상 교원 근수년수 등 근무환경에 대한 현황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말로만 정규직…현실은 고용불안 시달리는 임상 교수들
실제로 최근 계약한 모 국립대병원 한 임상조교수의 임용계약서를 확인한 결과 계약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있었다.
계약서상에는 결격사유가 없으면 계약기간을 2년 연장한다고 명시해 사실상 정규직이라고 했지만 수술 등 실적이 부진하면 스스로 병원을 떠나야 하는 게 현실이다.
특히 재계약시 각 진료과 과장의 추천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장의 지시에 복종하게 되고 불만이 있더라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여기서 임상교수의 재계약 키를 잡고 있는 시니어 교수의 갑질이 시작되는 것이다.
C국립대병원 교수는 외부 의료진 유입이 적은 지방의 국립대병원일수록 선배 교수들의 기득권이 탄탄하게 형성돼 있다고 했다.
"대학병원 특히 지방 국립대병원에서 과장은 절대권력을 쥐고 있어요. 병원장도 임기만 끝나면 힘이 있나요. 병원 개원 당시부터 자리를 잡은 시니어 교수가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거죠."
그에 따르면 올해 초 핵의학과 한 임상조교수도 위와 같은 이유로 병원을 떠났다.
"검사 및 판독 등 잡무는 많은데 병원이 원하는 실적은 모두 시니어 교수에게 잡히는 식이니 좋은 평가를 받을리가 없고 결국 재계약에서 불이익을 받는거죠. 이런 경우는 알려지지 않았을 뿐, 종종 발생한다고 봅니다."
아직 역사가 길지 않은 모 국립대병원의 경우 해당 의과대학 출신 교수는 일부에 그치는 수준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중도에 포기하고 자리를 옮기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A국립대병원 임상조교수 출신인 의료진은 젊은 교수들이 자기 발전을 위해서라도 떠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수술 및 검사 실적이 없으면 급여도 다른 교수들에 비해 낮을 수 밖에 없어요. 낮은 급여에 발전 가능성도 낮은 병원에서 앞도 안 보이는 교수직만 바라볼 수 없어 떠나는 거죠."
수술 방식도 선배 교수의 통제 하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도 제한적이고 그나마 수술 실적도 시니어 교수에게 돌아가는데 어떤 젊은 의사가 버티겠느냐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젊은 교수들의 고충은 지난 2012년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에서 발간, 순천향의대 박윤형 교수(예방의학교실)가 연구책임자로 실시한 '의과대학 교수의 교육, 진료, 연구환경 개선을 위한 만족도 조사연구'보고서를 통해 경향을 읽을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간 평균 근무시간 현황을 파악한 결과, 5년 미만의 임상교수가 61.5시간으로 가장 길었으며 5~10년 미만이 57.8시간, 10~15년이 53.5시간으로 집계됐다. 즉, 근무경력이 짧을수록 근무시간이 길었다.
반면, 소위 병원에서 실적으로 쌓이는 진료환자 수는 5년 미만의 젊은 교수 대비 15년 전후의 교수에 몰렸다.
실제로 1주일간 평균 진료 환자 수 또한 5년 미만이 외래 88.7명, 입원 14.2명(수술 9.7명)인 반면 10년이상~15년 미만은 외래 134.5명, 입원 26명(수술 4.9명)이었으며 15년 이상~20년 미만은 외래 122.4명, 입원 24명(수술 7.8명)수준이었다.
물론 설문대상이 1000여명에 그치는 수준으로 일반화 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젊은 교수일수록 업무강도는 높은 반면 실적은 저조했다.
모 대학병원 조교수의 제보에 따르면 갑질 교수의 행태 중에는 의학기술의 발전과 무관하게 자신의 술기만 고집해 후배 의사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경우도 있다.
"모 대학병원 D외과교수의 경우 갑상선 절제술을 기존의 수술 방식만 고집해 후배 의사에게도 복강경 및 다빈치 수술을 제한하기도 해요. 의학발전을 위해서도 사라져야 할 갑질이라고 봅니다."
역량있는 교수 떠난 자리 의료공백 불가피
사실 더 큰 문제는 시니어 교수의 갑질로 왕성하게 환자를 진료했던 젊은 교수가 병원을 떠난 이후다.
최근 논란이 된 충북대병원 외과 과장의 갑질로 결국 사직한 젊은 임상교수의 경우 사실상 혼자 소아외과 분야 응급수술 등을 도맡아왔다.
수년째 외과 전공의도 없어 혼자 응급콜을 받아왔는데 그가 떠나면서 당장 야간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의료공백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충북대병원 한 의료진은 젊은 임상교수의 이탈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소아외과 분야는 의료진 자체가 많이 않아 대체가 어렵기 때문에 당분간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대응이 미흡할 수 밖에 없을 거에요. 의사 개인에게도 불행이지만 환자를 생각해서도 이는 반드시 개선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후배 의사 위해 과거 '권위주의' 벗어야 할 때"
선배 교수들도 반론은 있다. 한 대학병원 흉부외과 과장도 '갑질'로 몰아가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
"워낙 의사사회가 도제식 환경이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화인데 이를 '갑질'이라고 봐야하는지 의문입니다. 선배 의사는 후배 교수를 양성하려는 것인데 젊은 교수 입장에선 독립적인 진료를 원하는 시각차가 생겨난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시니어 교수들도 소위 갑질 문화에 대해 우려섞인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상당수. 또 일각에선 개선책을 찾기 위한 노력도 있다.
모 대학병원 기조실장도 문제의식을 느끼는 교수 중 한 명. "도제식 수련 특성상 쉽게 바꾸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이는 전근대적인 사고로 당연히 사라져야 할 부분이죠.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과거 권위주의를 벗어야 할 겁니다."
서울대병원 김수웅 교육인재개발실장은 별도의 조직을 통해 이와 같은 사례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최근에는 각 과별로 자정활동을 하고 있어 후배 교수에 대한 갑질 사례가 크게 줄어든 게 사실이지만 일부 과에서 남아있는 것으로 알아요. 이는 최근 발족한 의사직업윤리위원회를 통해 개선할 예정입니다."
소위 말하는 시니어 교수의 갑질은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만큼 윤리적으로 접근, 개선책을 찾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료계 고질적인 병폐에 대해 의료계 한 인사는 보다 적극적인 개선방안 모색 필요성을 제기했다.
"갑질 교수에 대해 의사협회 윤리위원회에 회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병원 내 권력을 장악한 일부 교수의 갑질로 젊은 의사들의 싹을 자르는 것은 의료계 전체를 보더라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죠. 후배 의사에게 올바른 의료환경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도 반드시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