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내과와 흉부외과가 협진 했을 때 주는 '통합진료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는 컸다. 아예 청구 자체를 하지 않는 지역도 16개 시도 중 5곳이나 됐다.
정부가 심장 내과와 외과의 통합진료 수가를 신설했을 때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흉부외과 의사들의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메디칼타임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에 제출한 심장통합진료비 청구 현황 자료를 분석했다.
보건복지부는 2015년 10월 심장내과와 흉부외과 전문의가 협진 했을 때 수가, '심장통합진료비'를 신설했다. 관상동맥, 판막, 선천성 심기형 등이 협진 대상 질환이다. 통합진료비 상대가치점수는 1467.44점으로 상급종합병원 기준 11만원에 가깝다.
통합진료비는 건강보험 적용이 인정되는 심장 스텐트 개수 제한을 없앤 후 스텐트 남용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동시에 정부는 심장 스텐트 수술은 집중심사하고 있다.
심장내과와 흉부외과의 협진을 바라는 정부의 방침은 통했을까. 통계자료만 놓고 보면 '외면'에 가까웠다.
통합진료비가 처음 만들어진 2015년 10월부터 12월까지 통합진료비 신청 건수는 157건, 청구금액은 1006만원이었다. 지난해 1049건, 8525만원이 나갔다. 올해 상반기 청구건수는 675건, 5946만원이다. 이 수치로 올해를 예측해보면 지난해보다 청구건수가 301건 늘어나는데 그친다.
종별로 보면 종합병원보다 상급종합병원이 오히려 통합진료비 청구를 하지 않고 있었다. 지난해 상급종병 심장통합진료비 청구건수는 467건, 올해 상반기 181건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청구건수는 지난해보다도 더 적을 수도 있다.
반면 종합병원 청구건수는 지난해 582건, 올해 상반기 494건이다. 올해 통합진료비 청구건수가 2배 가까이 증가하는 셈이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과 지방 격차가 극심했다. 해마다 심장통합진료비를 아예 청구하지 않는 지역이 하나둘 늘고 있었다.
수가 신설 첫해는 충청북도와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청구가 없었는데 지난해는 충청남도도 청구를 하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 현재 대전과 경상북도, 전라북도도 청구건수가 '0'이다.
인천광역시는 통합진료비 신청 건수가 1~2건에 불과했다.
청구건수가 '0'건인 지역이 있는가 하면 100건을 훌쩍 넘는 지역도 물론 있다. 경기도와 전라남도, 서울특별시가 그렇다.
경기도는 지난해 312건이었는데 올해 상반기에만 347건으로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청구건수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전남 역시 지난해 156건, 올해 상반기 101건이다. 하지만 서울은 지난해 151건, 올해 상반기 70건으로 다른 지역보다 청구건수는 많지만 수는 줄었다.
진료비 청구금액도 정부 예측치에 훨씬 못 미쳤다. 복지부는 수가 신설 시 연간 4억5000만원의 재정이 들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청구액을 보면 지난해 8525만원, 올해 상반기 5946만원이다. 올해 총 청구액을 예측하면 1억1893만원에 그친다. 정부 예측치의 3분의1 수준이다.
심장 통합진료비 청구 외면하는 이유? "현실성 부족"
병원들이 통합진료비를 외면하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문제는 통합진료를 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지방 중소병원은 흉부외과 의사가 아예 없거나 1명만 있는 수준이라 협진까지 할 여력이 없다.
제주도 한 흉부외과 의사는 "흉부외과 의사는 혼자다. 심장병 환자가 병원을 왔을 때 시술 또는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흉부외과 의사가 옆에 없는 경우가 많다"며 "통합진료를 하려면 의사가 수술을 하다 말고 나와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소린데 어떻게 협진을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심장질환자가 가장 먼저 만나는 의사가 심장내과 의사이다 보니 흉부외과 의사는 제한된 정보에만 노출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이 의사는 "사실 흉부외과 의사는 심장내과에서 수술해주세요 하는 것만 수술할 수 있다"며 "1차적인 정보가 차단돼 있다. 수술 선택권이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인천의 또 다른 흉부외과 의사도 "심장내과 의사가 스텐트 전 환자한테 하는 첫 번째 질문이 가슴을 째겠냐, 심장을 멈추고 수술하겠냐는 것이다"라며 "보호자나 환자라면 당연히 스텐트를 선택하지 않을까"라고 지적했다.
실제 심평원의 경피적 관상동맥스텐트삽입술과 관상동맥우회술(CABG) 청구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스텐트는 총 3만3379건, CABG는 1648건의 청구가 있었다. 스텐트가 CABG보다 약 20배나 더 많이 이뤄지고 있는 것.
스텐트는 상급종합병원뿐만 아니라 의원급에서까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CABG는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에서만 청구가 있었다.
경기도 한 흉부외과 의사는 "심장내과를 통해 환자가 들어오는 구조에서 심장내과는 게이트키퍼이기 때문에 내과의사 의견이 환자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심장내과 의사들은 통합진료비를 신청하는 과정 자체가 번거로워 협진을 하더라도 급여 청구를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많다고 했다.
서울 한 심장내과 의사는 "매주 심장내과와 흉부외과가 케이스 콘퍼런스를 하면서 협진하고 있는데 두 달 정도 급여 청구를 하다가 지금은 안 하고 있다"며 "청구를 하기 위해서는 의료진이 별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처음 수가가 신설됐을 때는 직원들이 직접 의사들의 서명을 받으러 다니고 했는데, 한두 달 정도 하다가 흐지부지 해졌다"고 덧붙였다.
이 의사는 수도권 집중 현상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스텐트를 전수로 심사하고 있기 때문에 남용이 있을 수 없는 현실"이라며 "통계를 보면 CABG 수술이 더 줄어들지도 않았다. 우리나라는 수술의사 인프라고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병원별로 가이드라인 만들고 국가가 투자해야"
전문가들은 수가를 만들고, 협진을 강제화하고말고 문제가 아니라 병원별로 협진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고 국가 차원에서 수술 인프라 양성을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한심장학회 관계자는 "심장통합진료가 강제화된다고 해도 시술 및 수술의 수도권 편중 현상은 집중될 것"이라며 "심장내과는 상대적으로 전국적으로 인프라가 돼 있지만 그래도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하다. 그 격차는 외과가 더 심하다"고 진단했다.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관계자도 "법이나 규정을 만들어 강제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대승적인 차원에서 국가가 큰 틀을 짜야 한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철강, 자동차 같은 국가 기간산업처럼 의료도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간 의료를 만들어야 한다"며 "미용 성형처럼 수요가 많다고 국가에서 장려 하는 것도 좋지만 생명을 다루는 흉부외과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병원 자체적으로 시술과 수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제주도 한 흉부외과 의사는 "미국은 사전에 병원마다 특정 질환은 가급적이면 수술을 하고, 어떤 병변에서는 시술을 하자고 프로토콜을 만들어두고 있다. 기준에 벗어나면 심도 있게 논의를 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과와 외과의 공감대가 필요하다"며 "단위 병원별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견이 있으면 통합진료를 했다는 증거를 남기고 근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