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케어에 반대하는 의사 총궐기대회 이후 의료계와 정부 협의가 조심스럽게 전망되면서 향후 논의과정 변수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2일 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와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을 비롯한 대정부 요구사항을 중심으로 대화 채널 가동에 공감했다.
복지부는 보장성 강화 세부계획 발표 연기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대화에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의협 비대위도 대화에 공감하나 대정부 요구사항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의사결정 과정 공론화를 전제로 협의에 나설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는 형식적인 협의체 구성으로 정부에 끌려가는 모양새를 차단하고, 논의과정을 비대위원과 의사 회원들에게 알려 절차와 결과 투명성과 추진력을 담보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앞서 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서울 대한문과 청와대 앞에서 3만명(주최측 추산)이 참석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비급여의 급여화 및 예비급여 원점 재검토 등 16개항의 대정부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급여 정상화:수가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 로드맵 설정, 공정한 수가협상 구조 마련 및 협상 결렬 시 합리적 인상기전 마련, 일차의료 살리기를 위한 요양기관 종별 가산료 재조정 ▲비급여 급여화 및 예비급여 원점 재검토:의료계와 협의하에 우선순위 따른 보장성 강화, 중증의료 및 필수의료, 취약계층 보장성 강화, 급여전환위원회 신설 및 급여평가위원회 의협 참여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불가:의료법상 면허종별 의료행위 규정과 복지부 내 의사결정 투명화, 의과 및 한의과 건강보험 분리와 한의약정책과 폐지, 한약 포함한 한방행위 과학중심 기반 검증 및 한약 성분 공개, 처방전 의무화 등이 포함됐다.
또한 ▲소신진료 위한 심사평가체계 및 건보공단 개혁:건보공단과 심사평가원 예산편성에 공급자 참여 예산심의위원회 신설, 급여기준 및 심사기준 전면 수정, 신포괄수가제 확대 정책 폐기, 중앙심사조정위원회 개방적 운영으로 투명성 확보, 심사실명제, 의료기관 현지조사 제도개선, 임의적 건보공단 현지확인 근절 등도 담겨있다.
의료계는 문재인 케어 분노 표출을 계기로 그동안 누적된 의료현안 개선을 요구한 셈이다.
의-정 모두 대화에 공감한 만큼 어떤 방식이든 협의 채널이 예상된다.
문제는 첫 단추인 논의 방식과 일정 등 타임 스케줄을 어떻게 정하느냐다.
복지부는 의협 비대위 16개 요구안 중 문재인 케어 전면 재논의를 필두로 단기과제와 중장기 과제로 분리해 의료계와 밀고 당기는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의사들의 대규모 집회를 의식해 의료계 협조를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의사들의 염려에 대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함께 의료수가 체계도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의료계가 앞장서서 주장해왔던 것이니만큼 의료계에서도 지혜를 모아달라"고 말했다.
대통령까지 나선 상황에서 복지부는 대화 물꼬를 트기 위해 12월말 보장성 강화 세부계획 발표 연기까지 시사했지만 기한없이 무작정 늘어진 논의를 기대하긴 어렵다.
12월 중 의-정 대화 채널이 가동되면 통상적으로 50일 내외에서 논의를 마치고 합의 형식으로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이는 과거 의사협회 노환규 집행부에서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 허용 갈등 국면에서 의-정 협의체를 구성, 논의해 합의문을 도출한 학습효과가 작용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가 과거와 다른 투명한 논의절차와 성과를 표방하고 있어 협의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의-정 간 논의과정에서 돌발변수도 존재한다.
먼저, 내년 3월로 예정된 의사협회 신임 회장 선거다.
의료계 대규모 집회가 마무리된 만큼 잠룡으로 불리는 의사협회 회장 후보군들이 이달 중 선거캠프를 공표하고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의-정 협의 진행과정을 놓고 후보군과 선거캠프의 이슈 파이팅 등이 의료계 여론에 예기치 못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의협 비대위가 절차 투명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자칫 전권을 부여받은 의협 비대위 내부 이견으로 회장 선거에 휘말려 분열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다른 변수는 복지부 정기인사다.
통상적으로 매년 2월 정기 승진 인사가 진행되는 만큼 현 보건의료 및 건강보험 부서 주요 국과장 교체 가능성도 상존한다.
의-정 협의에서 핵심 실무역할을 담당할 보건의료 및 건강보험 부서 국과장 중 1년 6개월 이상 된 간부들과 해외파견 복귀 국과장의 교체 가능성이 관측된다.
하지만 의-정 협의 핵심 인사인 강도태 보건의료정책실장과 이기일 보건의료정책관 그리고 손영래 예비급여팀장은 인사 발령된 지 몇 달 안 된 만큼 인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인사이동에 따른 여파는 미비하다.
대통령이 표방한 보장성 강화 대책의 무게감을 감안할 때 복지부 현 핵심라인이 의료계와 협의를 어떻게 끌고가느냐에 따라 해당 공무원들의 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이다.
청와대 이진석 비서관과 건강보험공단 김용익 이사장 내정자가 문재인 케어 시행을 뒷받침하는 주축돌인 점도 의-정 협의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측된다.
여기에 내년 초 한의사협회 신임 회장 선출 후 재개될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허용 관련 협의체 구성도 간과할 수 없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의-한-정 협의체 구성을 전제로 법안 심의를 연기한 만큼 의-정 간 문재인 케어 협의과정에서 맞부딪칠 수밖에 없는 현안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다. 의사협회도 복지부도 조심스런 상황이나 결국 대화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다. 양측 모두 국민들과 의료계에 어떤 성과를 보일 것이냐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면서 "비급여 급여화 선결조건인 적정수가와 소신진료 가르마를 어떻게 타느냐에 의료계 총의를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의협 비대위 상황을 보면, 협상하면 배신자라는 이상한 논리가 내재된 것 같다. 여론을 형성하고 추진하는 힘이 부족하다"고 전하고 "비대위는 추운 한파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상경한 의사들의 외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심해야 한다. 의사들이 비대위를 믿고 기다리는 시간은 한달 정도이다"라며 비대위의 적극적인 모습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