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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료사고 잘 피하는 것도 실력이다"

메디칼타임즈
발행날짜: 2017-12-27 10:36:52

해성산부인과 박혜성 원장의 '따뜻한 의사로 살아남는 법'(37)

해성산부인과 박혜성 원장의 '따뜻한 의사로 살아남는 법'(37)

산부인과를 선택하려면 의대에서 전교 10등 안에는 들어야 한다는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산부인과로 개업 하면 1~2년 안에 건물을 지었을 정도로 호시절이 있었다.

나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수련을 받으면서 석사자격을 따고 서울대에서 내분비 전임의 수료를 했다. 그리고도 잘 나가는 개인 산부인과에 취직을 해서 하루에 외래환자를 100명 가까이 진료 하고 분만과 수술도 열심히 하면서 개원 준비를 했다.

나름대로 완벽하게 환자를 본다고 자부 했고, 국가가 원하는 모든 훈련을 받았다. 개원해서도 틈틈이 공부를 해서 박사학위를 땄고, 학회에 참가 해서 레지던트 트레이닝 후에 새로운 학문이 무엇이 있는지 항상 공부 했다. 환자를 진료할 때는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개원하고 있는 중에도 전국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산모와 아이가 사망 하고, 법적으로 소송 중이라는 소문을 계속 들었다. 산부인과는 건강한 산모와 건강해 보이는 아이가 분만 후 갑자기 사망하거나 뇌성마비 진단을 받게 되는 과다. 모든 산모는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고 분만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의사가 최선을 다하더라도, 결과가 안 좋을 수 있다. 같은 토양에, 같은 조건으로 똑같이 씨를 뿌려도 열매가 다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산모와 아이의 안 좋은 결과는 산부인과 의사의 탓이라고만 생각 한다. 임신 중 자궁 속에서 산모나 태아가 감염이 되었을 수도 있고 산모의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많아서 우울증이나 불면증 때문에 태아가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위해환경에 노출되었을 수도 있고, 산모의 지병으로 태아에게 가는 혈류량이 적었을 수도 있는데 모든 결과는 분만을 담당한 산부인과 의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 문화이고 분위기이다.

특히 매스컴에 노출이라도 되면 그 산부인과는 문을 닫아야 하고, 그 의사는 법적 책임까지 져야 할 수도 있다.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 어떤 이유든 만들 수 있다. 산모가 입원해서 분만할 때까지 중환자처럼 관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설명이 소홀했다거나, 1~2시간 관찰이 소홀한 것도 이제는 면허정지의 사유가 되는 분위기가 되었다. 원인이나 과정보다는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앞으로 어떤 산부인과 의사가 감옥을 갈 각오를 하고 분만을 하려고 할까?

일명 '신해철법'이 통과되면서 의사는 보호가 안 되는 직업이 되어 버렸다. 의료사고가 나면 민형사상의 책임을 의사가 당연히 져야 하는 구조가 되어 가고 있다. 자동차를 산 날 자동차보험을 가입하듯이 모든 의사가 의사면허증을 따면 배상보험에 가입하면 좋겠다. 그리고 의사와 국가가 의료사고가 나면 같이 공동대응을 해 주면 좋겠다.

객관적으로 판결이 나올 때까지 그 병원과 의사는 국가에서 보호해 주었으면 좋겠다. 합당한 수준으로 모든 사람이 이해할 정도로 해결되어서 국민도 보호하고 전문 인력, 즉 국가의 인적자원도 보호해 주기를 바란다. 현재는 의료사고를 해결할 합리적인 방법이 부족하고, 더 큰 소리를 내고 여론에 호소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배상의 정도가 개인 병의원 의사가 환자를 정상적으로 진료를 해서 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의사가 일부러 사고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행동하는 의사는 아주아주 드물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옛날과 달리 이제는 의료사고가 나는 과를 선택하면 안 된다. 혹은 의료사고가 나는 아이템을 하면 안 된다.

물론 모든 일에는 'No risk, No money', 'No pains, No gains'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의료법에는 거의 대부분의 경제적, 도의적인 책임을 의사 개인이 져야 한다. 그리고도 벌은 3중, 4중 가중처벌이다. 의사면허 정지, 업무정지, 벌금, 그리고 보상금까지 의사가 져야 한다.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여러 방식으로 벌을 내리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는 의사에게만 해당하는 일인 것 같다.

수술 후에 계속 민원을 내고 직접 찾아오거나 전화로 악담을 해서 괴로워서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의사도 꽤 많다. 지방흡입술로 환자가 사망하게 되면서 감옥에 가고, 폐업하고 파산한 의사도 있다. 그동안 쌓아온 노력이나 재산이 모두 사라지고, 의사로서의 인생도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경우도 꽤 된다. 앞으로 이런 일들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본다.

진료를 하다보면 반드시 폭탄이 있다. 그 폭탄은 그 시기에 만지면 반드시 터지게 되어 있다. 누가 그 폭탄을 만지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르겠지만 내가 될 수도 있다. 대장암이 있는 사람에게 대장 내시경을 하다보면 대장이 파열될 수 있고, 심장이 안 좋은 사람이 내시경을 하면서 수면마취를 하다가 못 깰 수도 있다. 그것을 어떤 의사가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조심한다고 피할 수 있을까. 그런 경우가 개인의원이라고 하면 그 개인의원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종합병원으로 전원 보낸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거나, 배 밭에서 갓끈을 매거나 오이 밭에서 신발 끈을 매지 않으려고 노력 한다. 즉 분쟁에 휘말리고 말고, 분쟁을 피해가야 한다. 환자를 너무 많이 종합병원에 전원 시켜도 자신이 볼 환자가 적어지지만, 환자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어도 사고를 치게 된다.

최고의 명의는 병의 진행상 병이 다 나을만할 때 환자가 찾아와서 낫게 해 주는 것이지만 의료 분쟁의 원인은 환자가 안 좋을 때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운명이고 운이겠지만 안 좋은 상황을 잘 피하는 것도 실력이다.

나는 매일 기도한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게 해 주십시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