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세미나, 주말 학회 일정 등 시간 외 근무가 많은 제약사의 영업 환경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시간 외 근무에 대한 사전 보고와 승인 요구, 출퇴근 시간 보고 조정이 나타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영업 실적에 따라 추가 근무가 '자발적'인 근무로 둔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내달 주 52시간 근무제를 앞두고 근무 시간, 보고 체계 등을 조정한 제약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7월부터 시행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핵심은 1주일을 7일로 규정,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일 기본 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단축했다는 점이다.
300 이상 사업장 및 공공기관은 오는 7월부터 적용되는데 제약업계 40곳이 개정된 근로기준법의 영향권에 놓이게 됐다.
문제는 일 8시간으로 정해진 근무 기준과 현재 제약사 영업 환경이 상충된다는 것. 제약사들도 내부 근무 환경과 관련 내부 지침을 만들고 있다.
A 제약사 관계자는 "보통 출근을 8시 30분에 하고 퇴근은 거래처 접대나 제품 세미나 여부에 따라 가변적"이라며 "실제 일 8시간 근무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현재 근무 환경은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그는 "원래는 사무소에 출근해서 미팅 후 영업 현장으로 갔지만 최근 지침 변경으로 9시까지 현장으로 바로 출근하게 됐다"며 "출근 시간이 바뀌었지만 아직 퇴근 시간에 대한 정확한 지침은 없다"고 밝혔다.
B 제약사 관계자는 "보통 8시 30분 이전에 출근했지만 내부 지침으로 9시에 맞춰 출근하기로 했다"며 "(기록으로 남을 수 있는) 퇴근 보고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영업직군의 경우 접대와 야근, 주말 심포지엄 등 시간 외 근무가 많은데 이에 대한 정확한 지침은 없다"며 "시간외 법인카드 사용을 자제하거나 사전 승인을 받으라는 말만 있었다"고 귀띔했다.
C 제약사는 시간 외 근무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정에 들어갔다.
C 제약사 CP 관련 담당자는 "현실적으로 근로기준법을 지키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어디까지를 근무 시간으로 볼 지 애매한 부분이 있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며 "영업직과 사무직 모두의 의견을 종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전 승인된 내역에 대해서만 시간 외 근무와 법인카드 사용을 허가하는 쪽으로 구상하고 있다"며 "영업 실적이 부족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근무하는 것을 회사가 막을 수는 없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이 실질적인 근무 환경 변화 대신 눈가리고 아웅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D 제약사 영업사원은 "영업 실적으로 평가받는 영업직군은 평일 거래처 원장과의 술 자리뿐 아니라 주말 취미 활동도 같이 한다"며 "겉으로 하지 말라고 해도 실적으로 압박하면 어쩔 수 없이 시간 외 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회사가 실적 압박을 가하면서 시간 외 근무를 하지 말라고 하는 건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밖에는 안 된다"며 "달성 목표와 실적치는 그대로 인데 근무 시간만 조정하는 건 퇴근 후 집에서 일하라는 것과 똑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