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학장, 반드시 절대평가 제도를 중단시켜야 하네. 성적을 매기지 않고 어떻게 학생들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할 수 있겠나."
연세의대 송시영 학장(61)은 취임 직후 자신을 찾아온 노 교수들이 건넨 당부가 생생하다. 이처럼 절대평가 제도는 시행 이후로도 의대교수 내부의 반대가 팽배했다는 게 그의 설명.
2018년도 절대평가 도입 이후 첫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이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제기된 우려는 사실상 종결됐다.
경쟁에서 벗어난 학생들은 자율성이 살아난 반면 의사국시 합격률은 98.6%를 기록하는 등 기본기를 갖춘 학생을 배출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일부 교수들의 우려를 시원하게 날려버린 셈이다.
연세의대가 절대평가 제도 시행 4년에 대한 성과를 발표한 지 보름 째, 송시영 학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제도를 여기까지 추진하기까지 내부 검증에 더 신경을 써야할 정도로 교수들의 반대가 상당했다"면서 "다행스럽게도 첫 졸업생들의 국시 성적이 우수하고 연구성과도 긍정적 평가를 받으면서 반대 여론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송 학장은 절대평가를 도입한 이후로도 계속해서 반신반의한 시선을 보내던 교수들이 최근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후 상당히 수그러들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학생들에겐 어떤 변화가 나타났을까.
상대평가 체제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느라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던 학생들에게도 큰 변화가 있었다.
송 학장은 "단적인 변화로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이 늘어 창업동아리가 생겼는가 하면 특허를 내기도 했다"면서 "학생들이 참여하는 SCI급 논문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과거 A학점부터 F학점까지 성적을 매기던 것을 통과(Pass, P)와 통과 못함(Non Pass, NP)으로 나누면서 매일 시험준비로 밤샘하던 학생들이 시험 이외의 것에도 관심을 갖게된 것이다.
또 P와 NP이외 최상위 수준을 의미하는 H(Honor)평가를 둠으로써 학생들에게 또 다른 동기를 부여했다.
송 학장은 "성적만이 아니라 탑클래스의 학생을 의미하는 어너(Honor,H)등급을 둠으로써 새로운 동력을 가질 것"이라며 " 절대평가 때문에 하향평준화되기 보다는 학생들 각자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찾고 자신만의 특성을 찾아가기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생각해봐라. 의과대학에 입학해서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 약 13년간 성적 줄세우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스템하에서 어떻게 창의력과 융통성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라며 "놀때는 친구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적이라는 인식을 버리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의대에서 성적이 좋아야 인턴을 잘 들어갈 수 있고 또 우수한 성적을 받아야 원하는 병원에 전공의가 되고, 또 펠로우로 갈 수도 있다. 즉, 30대 중반까지 친구를 이겨야만 자신이 생존할 수 있는 게 현재 의사 양성 시스템.
송 학장은 이처럼 과거의 의과대학 교육으로는 의료에 AI가 접목되는 미래의학 시대에 맞는 의사를 키울 수 없다고 봤다.
이미 교육에서는 플립러닝(Flipped learning, 수업에 앞서 영상을 미리 학습하고 강의실에서는 토론이나 과제풀이를 진행하는 형태의 수업방식) 등 세대 변화에 발맞춰 변화하는 게 세계적 추세.
그는 "미래의학은 AI의 발전으로 인간의 역할을 상당히 보완해나가면서 의사는 손 기술과 정서적 감정 공유 즉, 인간으로서의 의사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교육에 대한 즉각적인 변화와 투자를 강조했다.
또한 송 학장은 의과대학 교육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를 '융합 인재'에서 찾았다.
흔히 미래 먹거리를 '바이오헬스'분야에서 찾는데 이를 위해 의과대학 학생들도 의학 이외 경제, 법, 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해야한다는 게 그의 생각.
그는 "연대의대는 과감하게 필수 교양을 줄이고 대신 9학점 늘려서 경제, 법학 등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부전공을 이수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전공을 통해 법대에 가라는 취지가 아니라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다"라며 "융합인재에게 사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고 이를 위해선 다른 분야를 충분히 알고 이해해야 정확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송 학장은 "현재 의대 학생 중 10~15%는 환자 진료를 하지 않는 의사가 됐으면 한다"며 "가령 의대출신 변호사, 공무원, CEO, 공대교수 등으로 활로를 확대해 나갔으면 한다"고 거듭 다양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의과대학 졸업 이후 출구 즉, 취업할 때 이들의 다양성을 높게 평가하고 역량을 살려줄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의대에서 융합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단순히 의과대학을 넘어 보건의료 R&D연구를 한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하다고 봤다.
송 학장은 수년 간 연세의료원 산학협력단장에 이어 연세의료원 의과학연구처 산학융복합의료센터 소장으로 활동하며 융합연구에 매진하며 영역간 소통의 한계에 부딪쳤던 경험을 곱씹으며 '융합 교육'에서 답을 찾았다.
그에게 절대평가 제도는 단순히 평가 시스템의 변화라기 보다는 미래 인재에 대한 기준을 바꾸고 더 나아가 연구 문화를 바꾸는 일인 셈이다.
그는 "절대평가의 핵심은 융합이고 학생 각자의 창의력을 키우는 것"이라며 "특히 학생 개인간 경쟁이 아닌 그룹간 경쟁력으로 승화시키는 것을 배우는 데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