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에서 봉침 시술 후 쇼크 상태에 빠진 환자를 구하려다 송사에 휘말린 가정의학과 개원의를 두고 의료계가 공분하고 있다.
환자를 살리려고 애쓴 개원의가 환자의 유족으로부터 소송을 받아, 9억원의 민사소송 부담을 안게 된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의료계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29일 오후 '의료기관외 응급의료에 대한 소송제기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개원의가 환자를 위해 썼더라도 결과가 좋지 못해 소송을 제기한다면 어떤 의사가 환자 치료에 나설 수 있겠느냐"라며 소송 취하를 촉구했다.
의협이 파악한 이번 사건의 전말을 이렇다.
지난 5월 15일 30대 초등학교 교사 A씨는 부천 B한의원에서 봉침시술을 받고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쇼크로 뇌사 상태에 빠져 6월 6일 사망했다.
B한의원 한의사는 봉침 시술 후 환자 A씨의 상태가 나빠지자 같은 층에 있는 가정의학과의원 개원의에게 도움을 요청, 해당 개원의는 에피네프린을 투여,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시행했다.
해당 개원의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유족의 손해배상 소송이었다. 고인이 된 A씨의 유족이 한의사를 고소하면서 응급처치를 도운 개원의까지 고소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법률 대리인인 법률사무소 해울 신현호 변호사는 "가정의학과 의사가 '에피네프린'을 들고 가는 게 늦으면서 치료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며 개원의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적인 불법 행위자가 아니더라도 한의사를 도와주러 갔다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 해야한다는 게 신 변호사의 설명.
이를 두고 최대집 회장은 "응급의료가 필요한 상황은 불특정한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발생할 수 있고 일반인이라도 응급 구조활동을 펼쳐야 할 상황이지만 법적 책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이어 "응급환자가 사망한 경우 응급구조활동을 한 의사는 과실이 없음을 사실상 입증해야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민형사적 처벌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며 "응급구조를 위한 의료활동에 대해서는 고의가 없을 경우 면제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응급의료법 제63조의 허점을 지적했다.
형법상 '중대한 과실'은 사안에 따라 달리 판단될 수 있는데 '고의'가 아닌 '중대한 과실'이 없어야만 면책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응급의료 종사자의 응급의료 행위를 위축시킬 것이라는게 그의 설명.
특히 응급의료 상황에서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불가피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형벌 감경은 '임의적 감면'이 아닌 '필요적 면제'가 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최대집 회장은 "해당 개원의가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한 것으로 파악해 의협에선 변호사 선임 비용 지원을 검토 중"이라며 "이밖에도 의협 법률지원팀을 통해 해당 개원의와 긴밀하게 연계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와 같은 일이 재발했을 때 어떤 의사가 응급상황에서 나서려 하겠느냐"며 거듭 문제를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