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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나…그들은 날 PA라 부른다"

발행날짜: 2018-09-19 06:00:58

특별기획-PA 필요악으로 포장된 비자발적 범법자 "나도 직장인일 뿐"

|특별기획-의료제도 사생아 PA|

보건복지부가 강원대병원 사태를 계기로 PA에 칼끝을 겨누면서 병원계는 물론 간호계도 술렁이고 있다. 비정상적 수련 체제속에서 필요악으로 굳어버린 PA. 하얀거탑속에 감춰진 그들의 고민과 한숨을 통해 PA의 현 주소를 짚어본다.|편집자주|

<상>불법과 합법 담장 위를 걷는 PA "우리도 피해자"
<하>"간호계 아닌 의료제도 전체의 문제 거대 담론 필요"
출근하자 마자 수술복을 입는다. 수술방 어레인지(사용 예약)를 마치고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수술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진행한다.

하지만 행여 보호자가 "그런데요 교수님" 이라고 질문을 한다거나 "레지던트이신가 봐요?"라는 질문을 하면 나는 잔뜩 움츠러든채 말끝을 흐린다. "아... 네에... 음... 방금 설명드린 건... "하면서.

의사의 일을 하고 있지만 의사는 아니고 간호사이기는 하지만 간호부에는 속해 있지 않은 내 타이틀은 PA(Physician Assistant)다.

누군가는 나를 필수 인력이라 칭하고 누군가는 나를 범법자 취급하는... 그렇게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방항하고 있는 나. 어쩌면 PA라는 호칭조차 내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의사와 간호사의 경계선…자기 합리화와 불안감 공존

졸업반이던 4학년 4년 내내 입사를 꿈꿨던 병원에 실습을 오게 된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커다랗고 번쩍이는 건물. 수천명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의료진들.

왠지 모르게 멋져 보이는 가운을 입은 선배들을 보며 그들이 서 있는 그 곳으로 가겠다고 의지를 다지는 날들이 쌓여갔다.

누군가는 모교에 남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지만 지방에서 상경한 나에게 그 커다란 건물과 그 안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풍경들은 쉬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 꿈이 이뤄지던 날. 처음 ID카드를 받아들고는 벅찬 마음에 눈물까지 배어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부모님의 자랑스런 딸이었고 동기들에게 부러움을 받는 속칭 잘나가는 예비 간호사였다.

물론 태움도 있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병원의 주류가 아니었기에 애써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의연하게 이겨냈다.

듀티가 꼬여도 웃으며 받아들였고 휴일 근무도 일부러 자청했다. 내가 더 열심히, 성실히 임하면 모두가 나를 알아줄 것이라고 믿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마음은 너덜너덜해졌지만 그렇게 1년을 버티며 언젠가 완전히 병원의 일원이 되는 날을 꿈꾸고 있을때 쯤 새로운 제안이 찾아왔다.

"PA자리가 하나 비는데 그동안 내가 봐온 걸로는 자기가 딱인 것 같아. 자기한테도 좋은 기회가 될꺼야. 우선 3교대가 없고 뭐 많진 않지만 수당도 있고. 자기 커리어에도 도움이 될꺼야."

몸과 마음이 지쳤을때여서 였을까. 그 제안은 제법 솔깃했다. 무엇에 끌렸던 것일까. 남들이 출근할때 출근하고 퇴근할때 퇴근할 수 있다는 것. 무언가 조직의 아주 작은 조각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생긴다는 것.

가장 크게 마음을 움직인 것은 저기 한참 위에나 있는 대선배가 나를 알아봐주고 나에게 무언가를 제안했다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PA라는 이름으로 수술방에 섰다. 2~3주는 우선 지켜보며 지시 사항만 들으라는 말에 약간 자존심도 상했다. 나도 의료인인데 말이다. 하지만 근무 첫 날 나는 처음으로 내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곳은 병동과는 완전히 다른 구역이었다. 나에게 단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들이 던져졌고 대학 4년 내내 단 한번도 배우지 못한 일이 대다수였다.

그렇게 수많은 일들이 나에게 던져지던 때에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마구 쏟아지는 일들을 해내야 한다는 막연한 사명감과 책임감이 가득 차 있었을 뿐이다.

이제 일이 손에 붙을 때쯤 그때서야 지금까지 정신없이 미뤄놓았던 고민들이 찾아들어왔다. '이걸 내가 해도 되는건가?'라는 근본적 의문부터 '이거 잘못되면 내가 책임지는 건가?'라는 현실적 불안감까지.

수술실 어레인지와 검사 의뢰 등은 그나마 약과였다. 애써 합리화를 시키자면 '그래 이 정도는 내가 해도 되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만큼 무뎌진 것도 있었다.

수술동의서를 받으러 갈때도 그랬다. '이거 내가 해도 되는건가?'라는 의구심은 수차례 반복되는 업무속에서 무뎌져만 갔다.

아마도 그래서 였을까. 계속되는 버발 오더(구두 지시)를 정리하는 일도 마치 내 일처럼 익숙해졌다. EMR에 척척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넣고 능숙하게 모든 일들을 처리해 나갔다.

하지만 그 근본적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현재 진행형이랄까. 답답한 마음에 동기, 선후배와 상담도 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들은 더 충격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 정도면 정말 시스템 잘 돼 있는거 아니냐? 그게 문제인가? 우리 병원에서는 PA가 마무리 다 하는데. 봉합 못하면 PA 취급도 못받아."

"야 오더 정리가 일이냐? 난 회진 도는 PA도 봤다. 처방도 거의 자기들이 내던데."

그제서야 나는 애써 미뤄놓았던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PA를 다시 생각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의사도 아닌 간호사도 아닌 우린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맞는 건가?"

하지만 그 의문과 자문도 오래가진 않았다. 나는 그 날도 또 현장속에 있었고 그렇게 또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소속감도 업무도 모호한 중간자 "나도 직장인일 뿐"

그러던 어느 날. 여느때와 같이 일을 준비하고 있을때 갑자기 전화기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단체 카톡방에 뉴스가 마구 링크되기 시작했고 쉴새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내용은 그랬다. 보건복지부가 PA를 불법 의료행위로 정의하고 엄벌에 처한다고.

여기 저기 흩어져 PA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는 SA(Surgery Assistant)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는 NP(Nurse Practitioner)로 활동중인 우리 간호사들은 동요했다.

그동안 PA를 두고 수많은 말들이 많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그때마다 우리 또한 고민과 의문이 많았지만 밀려드는 업무에 다시 사그라들길 수차례였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정부가 직접 PA를 다 들춰내겠다고 엄포를 놨다. 거기다 면허 취소라니. 누가 들어도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나마 우리 병원은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어찌 보면 합법과 불법, 편법의 교묘한 선에 놓여져 있었달까. '분명 불법인거 같은데...'라는 생각은 들어도 '아니게 보면 아닐 수도 있나?'하는 그런 것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전공의 주당 80시간 근무제. 간호사들에게는 지옥도가 열린 바로 그 사건 때문이다.

그나마 예전에는 전공의가 PA인지. PA가 전공의인지 모르게 우리는 함께였다. 하지만 80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모든 상황은 변해버린지 오래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책임 문제다. 전공의가 늘 함께 하던 시간에는 책임을 나눠질 수 있었다. 혹여 문제가 발생해도, ID를 활용해도 전공의가 '내가 했다'하면 문제될 소지가 적었다.

우리에게는 그나마 방패막이랄까. 그런 것들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다. 혹여 80시간 근무에 문제가 될까 전공의가 막아주던 방패를 모두 거둬가버렸다.

당직을 서지 않으니 당직시 책임을 나눠질수도 퇴근 후에는 EMR 접속이 원천적으로 금지되니 그 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온전히 우리의 책임이 될 확률이 높아졌다.

그나마 합법과 불법, 편법의 교묘한 선에 서있는 우리가 이 정도이니 다른 병원은 오죽할까.

하지만 더욱 큰 충격은 그 후에 이어졌다. 혹여 모를 불안감에 믿고 따르던 선배를 찾아가 들은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내가 PA가 되는 순간 나는 간호사이지만 간호본부가 아닌 의국 소속으로 배정돼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간호사이지만 의국의 인사발령을 받는 사람이 됐다는 의미다.

그 말에 나는 동요했다. 혹여 문제가 있어도 간호본부, 나아가 병원에서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PA를 시작할때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이라던 조언은 어떻게 되는거지. 나는 다시 병동으로 돌아갈 수 없는건가. 수많은 의문들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간호본부장 면담을 신청했다.

"지금 고민을 안다. 나도 병원에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 병원 간호사 후배 누구라도 감옥에 가는 일은 없을꺼다. 곧 조치해주겠다. 행여 병원 나갈 생각은 말로 믿고 기다려라."

강한 의지가 보이는 그의 말을 들었지만 지금도 나는 하루에도 수백번의 고민을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릴적 꿈인 간호사가 됐고 너무나도 꿈꾸던 병원에 들어왔는데. 좋은 간호사가 되고 싶어 열심히 노력한 것 뿐인데. 왜 나는 범법자가 되어 내 면허증을 뺏길가 걱정하며 잠을 설쳐야 하는 걸까.

대통령, 여야당 대표, 보건복지부 장관, 우리 병원 원장님. 누군가가 듣고 있다면 소리치고 싶다.

"나도 직장인이에요. 나도 좋은 간호사 되고 싶다고요. PA를 안하면 실업자가 되고 PA로 남으면 면허증을 뺏어간다니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말입니까."

*이 기사는 취재 결과를 바탕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건을 1인칭 에피소드로 재구성한 것으로 특정 병원이나 인물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