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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의사는 신이 아니다

발행날짜: 2018-11-08 12:00:01
평소 알고 지내던 한 흉부외과 의사가 전공의 시절의 일이다. 20대 초반의 여성환자였는데 수술 후 며칠 밤을 새어가며 환자 곁을 지켰지만 결국 사망했다. 사망하던 날 환자의 오빠는 당직실에 들이닥쳐 다짜고자 당시 전공의였던 그에게 주먹을 갈겼다. 그 순간 온몸을 던져 막은 사람이 있었다. 동료 전공의가 아니었다. 환자의 아버지였다. 그가 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밤잠을 안자며 지킨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그걸로 이미 족했던 것이다.

지난 7일 오전 10시, 의사협회 임시회관 앞에서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의료사고로 자식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아버지, 어머니들이 직접 자신의 사연을 꺼내놓는 자리였다. 서로의 사연에 자신들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의 사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최신 술기가 필요한 어려운 수술도 희귀한 질환도 아니었다. 단순한 약물 투여 오류 혹은 마취사고에 의한 사망이었다. 자식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는 현실보다 왜 사망에 이르렀는지 원인을 규명할 수 없는 현실이 그들을 더 괴롭히는 듯 보였다.

또 이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의사는 신이 아닌 걸 안다고. 최선을 다했지만 실력이 부족해서 죄송하다고 말한다면 용서할 준비가 돼있다고. 그걸로 됐다고.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의사 혹은 병원으로부터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들 유가족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환자가 진료받기 안전한 환경' 즉 '의사가 진료하기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그런 환경을 만드는데 힘을 쏟겠다고 했다.

의사가 피곤에 절어 약물 투여 오류를 최소화할 수있는 환경. 살인적인 진료 스케줄로 의사 대신 전공의 혹은 간호사가 대신 수술칼을 잡지 않아도 되는 환경. 누구보다 의사가 원하던 바 아닐까.

하지만 같은 시간 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이 실시한 기자회견은 환자단체가 기자회견문에 '살인면허'라는 표현을 두고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왜 (예방가능한)의료사고가 끊임 없이 발생하는지.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의사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진료하려면 어떤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당장 방어적으로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찾는데 바빠보였다.

만약 의사협회가 기자회견에서 '의사가 진료하기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나섰다면 어땠을까. 환자들의 신뢰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표심에 밝은 국회의원들이 서로 돕겠다고 나서지않았을까. 당장 11월 11일 궐기대회를 오히려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분위기라면 의사회원들이 의료현장에서 불안에 떨고있을까.

의사에게 진료거부권을 요구하는 것과 의사가 진료하기 안전한 진료환경을 요구하는 것은 다른 얘기다.

적어도 기자회견에 나섰던 유가족들은 알고 있었다. 의사는 신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모든 의사가 명의가 될 수 없다는 현실도. 그들이 바라는 것은 주어진 현실속에서 최선의 진료였다. 또 부득이 실수를 했을 때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해달라는 것. 그게 전부였다.

여전히 의료현장에는 환자를 위해 기꺼이 밤잠 안자고 끼니를 거르는 의사가 많다. 그리고 그런 의사를 만났을 때 환자는 고개를 숙인다. 온몸을 던져 자신의 딸의 생명을 마지막까지 살리려고 한 의사를 보호했던 아버지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의협 최대집 회장도 말한다. 의사와 환자는 갑을관계가 아니라 협력관계라고. 그런 점에서 이날 의협의 기자회견은 많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