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학회, IPF 치료제 급여 기준 재설정 의견서 제출…"최근 연구 반영해 환자 제한·범위 기준 완화해야"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의 엄격한 급여 기준이 중증 이상 환자에게 치료 기회를 박탈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임상 현장에서는 초기~중등도 환자로 제한된 보험 기준이 과거 임상을 기준으로 설정된 까닭에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반영한 보험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 현 급여의 문제점과 개선안, 그리고 보험 확대의 근거가 될 최근의 연구 결과를 짚었다. -편집자 주
<상> 과거 임상에 발목 잡힌 피르페니돈 급여 기준 <하> 피르페니돈 치료제, 합리적 급여 기준 변경안은
특발성 폐섬유증(idiopathic pulmonary fibrosis, IPF) 치료제는 크게 두 가지다. 일동제약이 수입해서 파는 피레스파(성분명 피르페니돈)와 베링거인겔하임의 오페브(성분명 닌테다닙에실산염)다.
오페브는 비급여 품목으로 한달에 약값만 200~300만원 선. 환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피레스파 역시 한달 약제비가 200만원 선을 넘는 고가 약제였지만 2015년 환급형 위험분담제 적용으로 환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금액은 10만원 대로 낮아졌다.
작년엔 영진약품 파이브로정을 포함해 피레스파의 복제약(제네릭) 3개 품목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오리지널 피레스파 대비 약제비 부담이 더욱 줄었다.
과연 환자의 삶은 나아졌을까. 낮아진 가격에도 불구하고 치료제 사용은 급여 기준을 충족한 이후의 이야기. 임상 현장에선 다른 이야기가 들린다.
▲"급여 기준 바꿀 때 됐다."
현재 보험이 적용된 유일한 특발성폐섬유증 치료제는 피르페니돈 성분이다. 보험 급여는 '경증~중등도'를 대상으로 한다.
폐기능검사 상 노력성 폐활량(forced vital capacity, FVC) 50% 이상 / 일산화탄소확산능력(Carbon monoxide diffusing capacity, DLco) 35%이상 / 6분 보행검사 시 150m 이상 보행 가능을 모두 충족한 경우 보험이 적용된다.
세 기준 중 폐활량이 특히 나쁘거나, 150m를 걷지 못할 정도의 상태 등 환자가 한 가지 조건이라도 기준보다 악화된 상태면 보험에서 배제된다. 쉽게 말해 해당 질병으로 가장 고통받는 환자들이 보험을 적용받기 가장 어려운 대상이라는 뜻. IPF의 보험 적용 기준이 역설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게 된 것은 급여 설정 당시의 임상 근거 때문이다. 현 급여 기준은 '경-중등도' 환자를 대상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시행된 CAPACITY와 ASCEND 연구를 기반으로 설정됐다.
분당서울대 박종선 교수는 "정부가 급여 기준을 만들 때 비용-효과성을 따지게 된다"며 "급여 설정 당시 인용된 임상이 중증 이상을 빼고 설계됐기 때문에 기준이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최근 초기나 중증 이상의 환자에 피르페니돈 성분을 사용해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며 "현재 급여 기준이 예전 데이터를 근거로 했다면, 이제 새로운 임상이 나온 만큼 새로운 기준 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험 적용 대상이 제한적이라는 문제도 거론된다.
폐쇄성 기도질환(혹은 폐기종)을 동반 환자의 경우, 기도폐쇄로 폐섬유증이 진행되더라도 노력성 폐활량 수치가 실제 질병 진행을 반영하지 못해 실제보다 변화량이 감소한다. 이에 CAPACITY와 ASCEND 연구는 이러한 환자들은 제외기준으로 분류했고, 폐이식 대기자 역시 기증자가 나타나면 언제든 임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제외 대상으로 설정했다. 폐이식을 받아야 할 정도로 중증의 환자가 보험에서 도리어 제외됐다는 뜻.
제갈양진 간질성폐질환연구회 총무이사(울산대병원)는 "보험은 3상 임상의 적응증/제외 기준을 적용해 경중등도의 환자만을 대상으로 했고, 임상에서 폐이식 대기 환자의 수술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들을 제외한 것도 그대로 제한 규정으로 받아들였다"며 "이는 실제 진료현장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환자들의 치료 기회를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상 현장에서 보면 IPF로 진단받은 환자 중 급여에서 제시된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환자는 절반에 그친다"며 "병원에 찾아올 정도면 병세가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인데, IPF로 진단받고도 약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고 밝혔다.
▲합리적인 급여 기준안은?
Noble 등의 ASCEND 와 CAPAITY 자료를 활용한 후행 연구에서는 노력성 폐활량을 80%로 나눠 비교했지만 피르페니돈의 효과는 동일했고, 일산화탄소확산능력도 50% 로 나눠 비교했지만 동일한 결과가 나타났다. 6분 보행거리도 450m 세 군에서 효과가 같았다. 초기나 중증 이상의 환자들에게 피르페니돈 치료제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후행 연구에서 새로운 기준 적용의 당위성이 제시되면서 관련 학회도 문제를 인식, 급여 확대를 위해 심사평가원과 접촉하고 있다.
간질성폐질환연구회는 의견서를 통해 "IPF 환자의 약 70-80% 는 흡연자로 폐쇄성 기도질환(폐기종)을 동반한 환자가 많고(25-30%), 국내의 경우 외국에 비해 경중등도의 환자외에도 건강검진을 통해 확인되는 초기 환자나 인식 부족으로 진단시 이미 진행된 환자도 드물지 않다"며 "이러한 환자들이 유일한 치료제인 피르페니돈의 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증세가 진행된 경우 폐이식을 고려하게 되는데, 현재의 기준은 폐이식 등록시 급여기준에서 제외돼 이식 등록 후 효과적인 치료없이 지내야 한다"며 "외국에 비해 국내 폐이식은 활성화 돼 있지 못해 장기간 대기 중 질병 진행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꼬집었다.
세 가지 항목에 걸친 각각 기준의 완화뿐 아니라 적용 대상도 폐이식 대기 환자와 폐쇄성 기도질환자 등으로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간질성폐질환연구회는 최근 연구 결과들은 반영,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개정안은 다음과 같다.
-FVC 90% 이하이거나 DLco 80% 이하
-FVC 90% 초과하면서 DLco 80% 초과한 환자 중 ▲폐기능 저하: 연간 Predicted FVC 감소량이 10% 이상 이거나 연간 Predicted FVC 200ml 이상 감소 ▲임상증상 악화 ▲흉부영상 악화 소견 두 가지 이상에 해당되는 경우
경증 및 중등도 환자 및 FVC 50% 이상, DLco 35% 이상으로 상한선을 설정한 현 기준과 달리 개정안은 FVC 90% 이하이거나 DLco 80% 이하로 하한선을 설정했다. 또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했던 것과 달리 두 가지 기준에 해당하는 경우로 완화했다.
제갈양진 간질성폐질환연구회 총무이사는 "최근의 연구 데이터를 종합해 심사평가원에 보험 확대 적용을 위한 의견서를 제출했다"며 "심평원도 기준 완화 내지 포괄적 적용의 필요성에 동감했다"고 말했다.
약가 문턱을 낮춘 제약사도 급여 기준 변경에 목소리를 보탰다.
영진약품 안태혁 PM은 "피르페니돈 200mg 기준 오리지널 품목 대비 37% 가격을 낮춘 파이브로정을 출시했다"며 "피르페니돈 치료제는 1회 200mg을 2~3정, 하루 세 번 복용해야 하지만 파이브로정은 처음으로 400mg, 600mg 고용량을 출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파이브로정 600mg 기준 가격이 4800원에 불과해 3406원 가격의 200mg 품목 대비 복용편의성은 물론 가격 경쟁력까지 갖췄다"며 "이익보다는 환자의 약 접근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현재 보험 기준 시스템에선 치료제의 원활한 사용이 쉽지 않아 아쉬운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