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과정에서 신생아에게 치명적인 장애가 생겼더라도 의사의 과실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면 다른 출산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출산 후 신생아에게 장애가 나타나자 의료진과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항소심에서 신생아와 가족들의 요구를 모두 기각했다.
결과를 놓고 봤을때 일부 의료진들의 대처가 아쉬웠다해도 그 행위가 장애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라면 손해를 배상해야 할 정도의 책임이 있지는 않다는 판단이다.
14일 판결문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2013년 6월 임신을 알고 학교법인 A대학병원에 내원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산모는 자가임신반응이 양성으로 나오자 지속적으로 A대병원에서 진찰을 받아오던 중 39주 경 속옷을 적실 정도의 양수가 새어나오자 즉시 이 병원에 내원했다.
이에 따라 의료진은 산모에게 태아감시모니터를 부착하고 시간당 20cc의 양으로 옥시토신이 투여되도록 조치했지만 태아 심방동이 지속적으로 내려가 분당 60회 정도에 머무른 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간호사는 옥시토신 투여를 중단하고 수액을 주며 산소마스크를 씌운 뒤 의사를 호출했고 즉시 수술에 들어가 분만을 진행했지만 신생아는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산모와 그 가족들이 의료진의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기재했고 자궁 파열 위험에 대해 검토하지 않았으며 옥시토신을 투여하면서 주의의무를 기울이지 않았고 설명의무도 위반했다는 것이 그 골자다.
또한 제왕절개가 아닌 브이백 분만을 시행해 산모와 아이를 위험에 빠트린 것에 대한 책임도 물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진료기록을 보면 의사가 진료 당일 로그인했다가 며칠 후 반복적으로 다시 로그인 한 사실은 인정된다"며 "하지만 이 이유만으로 기록이 허위로 추가 기재되거나 수정됐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한 산모가 제왕수술 기왕력이 있는 만큼 브이백를 시도할때 최선의 주의의무를 기울여야 했다고 주장하나 자궁파열은 예견이 불가능하며 이 병원에는 이에 즉각 대기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있었다"며 "의사가 신중하게 의학적으로 검토하지 않았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경과관찰 등에 대해 의사의 책임을 물은 산모와 가족들의 주장도 재판부는 모두 기각했다. 이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NST 관찰은 분만실 외부에 있는 스테이션에서 이뤄지고 의사의 위임을 통해 간호사가 시행할 수 있는 업무"라며 "응급상황이 발생하고 의사가 오는데까지 일부 시간이 소요되기는 했지만 상황을 보고받은 의사가 분만실까지 오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결론내렸다.
다만, 재판부는 아무리 응급상황이라 해도 의사 대신 간호사가 분만 방법과 수술 등에 대해 설명을 진행한 것에 대해서는 일부 책임을 물었다.
재판부는 "간호사가 브이백 과정에서 자궁파열, 출혈이 발생할 수 있고 산모나 태아가 사망할 수 있다는 내용의 서명을 받기는 했지만 설명의무는 원칙적으로 담당 의사가 부담하는 것이 맞다"며 "이로 인해 환자가 구체적으로 심사숙고해 분만 방법을 선택할 기회를 보장받았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하지만 산모가 먼저 브이백 분만을 적극적으로 피력했고 분만 진행 경과와 의료진의 대처 등을 종합적으로 보면 설명의무 위반이 신생아 장애의 원인이 됐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이러한 상황을 보면 위자료 정도가 적정하며 아직 산모와 가족들이 병원에 납부해야할 진료비가 있는 만큼 이를 상계 처리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