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의학발전 뒤에는 실험동물들의 희생이 있었다.
몇년 전부터 의료계에서는 쇠철망에 갇혀 동물실험 대상이 되는 그들의 혼을 기리기 위한 위령제를 여는가 하면 실험동물의 복지에 신경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서울대병원 전임상실험부 동물실험지원팀 실험동물기술원 이학영 씨가 바로 그 역할을 맡고 있다.
"실험동물 복지까지 챙기는게 내 역할"
이 씨의 하루 일과는 실험동물(신세계 원숭이 16마리, 구세계 원숭이 32마리 총 48마리)의 상태를 살피는 것으로 시작한다.
동물실험 전후로 동물들 상태부터 식욕부진, 온도 및 습도, 소독 상태 등을 확인하고 이를 연구팀은 물론 수의사 등과 공유한다.
그가 최근 집중하는 부분은 실험동물의 복지. 특히 인간에 가까운 영장류를 맡으면서 PRT(Posotive Reinforcement Training,긍정강화교육)가 더 중요해졌다.
PRT란 동물행동심리를 기반으로 한 이론으로, 동물실험 분야에서는 동물과 기술원과 친밀감을 형성하고 안정감을 느낄수록 동물실험에서의 고통을 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PRT 즉, 긍정강화훈련은 동물들에게 굉장히 중요해요. 실험에 의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최소화 하는 역할을 해요. 동물의 복지를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구세계 원숭이라도 5Kg에 그치는 수준으로, 갑자기 성인 남성이 강압적으로 힘으로 제압해 주사를 놓거나 수혈을 하는 행위에 공포감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같은 행위라도 이들과 충분히 교류하고 친밀감을 쌓은 기술원이 하는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요즘에는 밀웜(식용곤충)을 주거나 얼음을 얼려서 놀면서 먹을 수 있는 장남감을 만들어 줍니다. 이런 걸 준비해주면 동물들 표정이 밝아지는 걸 느끼죠. 갇혀있지만 그 공간에서라도 즐거움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실험동물과 친밀감 중요하지만 늘 일정한 거리를 둡니다"
사실 생명응용과학부를 전공한 이 씨는 처음부터 실험동물을 다루는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대학 시절에는 막연히 제약사에 취업할 생각이었죠. 실험 경력을 쌓고자 식약처 산하 국립독성연구원 동물실험실에 취업했는데 이를 계기로 실험동물의학 석사까지 이수하게 됐죠."
그 또한 실험을 위해 동물을 이용하고 실험을 종료하면 해당 개체도 종료(사망을 뜻함)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물실험을 통해 좋은 약을 개발, 의학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개념을 이해하면서 업으로 삼게 됐다.
"연구에 동물실험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죠. 이를 안할 순 없으니 오히려 실험에 희생되는 동물의 고통을 줄이고 작게 나마 복지를 챙길 수 있는 방안을 늘 고민해요."
이 씨의 노력은 동물실험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해외 다수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심리적으로 안정된 동물이 연구결과에서도 좋은 결과를 낸다는 보고가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동물로 연구를 하면 평상시와 다른 행태를 보이기 때문에 동물실험 결과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학영 기술원은 이들 동물에게 공식적으로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 이름을 짓고 부르는 순간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 실험이 종료되면 그 또한 심리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각 개체를 혼동하지 않기 위해 호칭을 두긴 하지만 일부러라도 이름을 짓지 않아요. 친밀감을 쌓고 교류를 하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해요."
이 씨는 동물실험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자신과 같은 역할을 하는 실험동물기술원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구의 성과는 물론 동물의 복지를 위해서다.
미국 등 의료 선진국에서는 민간자격증이 정착한 반면 한국은 지난 1996년 실험동물기술원협회가 창립하고 최근 관련 학회도 생겼지만 여전히 민간자격증화 단계에 이르지 못한 실정.
"실험동물 케어에도 노하우가 있어 이를 공유하고 활성화하려고 해도 교류가 제한적이다 보니 확산이 잘 안 되는 게 사실이에요. 어서 민간자격증으로 인정받아 실험동물 복지를 챙길 수 있는 더 많은 기술원을 양성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