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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CSO 쓰려면 각오해야? 무책임한 무한 책임론

발행날짜: 2019-01-03 12:00:55
"(지출보고서와 관련해) 영업대행사에 대한 관리, 감독, 지도할 책임은 제약사에 있다."

최근 복지부가 경제적 이익 지출 보고서 시행 1년을 맞아 제약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시행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제도 정착 단계는 아니라는 게 복지부의 평. 복지부는 지난해 도매상을 활용한 영업대행(CSO)의 경우 지출보고서 작성은 커녕, 제도 인지조차 안 되고 있다며 누차 제약사의 책임론을 거론했다.

복지부는 지출보고서 관련 설문지를 제약업체에 배포했지만 가장 큰 비중은 엉뚱하게도 제약사의 CSO 활용 여부에 할애했다.

일부 문항을 제외하고는 영업 및 마케팅을 위탁하고 있는 경우에는 업체 위탁 내역도 지출보고서에 작성해야 함을 인지했는지 여부, 서면계약 체결 여부, 서면계약 체결 시 계약서에 지출보고서 정보 공유 의무가 명시돼 있는지 여부, 대행 업무 담당자 대상으로 불법 리베이트 예방 교육 실시 여부 등을 물었다.

심지어 전체 처방의약품 매출액 중 위탁 업체 매출액 비율과 거래 위탁 업체 수, 대행 업체명, 위탁 업체의 의약품도매업 허가 여부, 위탁 시점, 위탁 품목 수, 평균 대행 수수료율까지 작성할 것을 명시했다.

지출보고서 조사를 통해 CSO 활용시 도매상에 대한 관리, 감독, 지도의 책임이 제약사에 있다고 상기시킨 셈.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대행 수수료율까지 내놓으라고 하는 건 '수수료율'에 기반한 심증도 관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엄포에 다름 아니다.

CSO의 처지가 이렇게 된 건 CSO를 규정할 법적 근거도, 실체도 없는 사실상 방치 상태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이익 등 제공 내역에 관한 지출보고서 제출의 관련 법령에는 작성 주체로 의약품 도매상을 포함한 의약품공급자를 명시하고 있지만, 도매상이 직접 공급자가 아닌 '영업대행'을 하는 경우에는 작성 주체가 되지 않는다.

의약품공급자에 영업대행사를 포함시켜 제도권 안에서 관리하자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복지부의 선택은 제약사 책임론에 그친다. 영업대행사의 일탈을 (사전에) 관리, 감독, 지도할 책임이 제약사에 있는 만큼 영업대행사의 잘못은 제약사 책임으로 귀속된다는 뜻이다.

모 제약사 관계자는 "제약사와 CSO는 동등한 관계이지 누가 관리하고, 지도하는 그런 식이 아니다"며 "관리, 감독할 권한이나 능력도 없는데 모든 책임을 제약사에 지우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영란법, 쌍벌제, ISO37001, CP 강화까지 '윤리 경영'을 위한 수 많은 시스템들이 나왔지만 일탈은 늘 일어났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데 CSO에 대한 제약사 책임론 하나로 해결하기는 무리라는 말이다.

실질적인 관리, 감독 권한과 능력이 제약사에 있지 않을 뿐더러, 일탈 행위를 시스템적으로 막는다는 발상 자체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다수의 제약사들이 CSO 손절 절차에 돌입한 것은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영업대행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제도는 아니다. 해외에서도 아웃소싱 혹은 자원의 집중화 방안으로 CSO를 활용한다. 제도 자체는 특별한 것이 없지만 CSO를 둘러싼 환경이 국내 CSO를 특이한 제도로 만들고 있다. CSO 업체들로부터 제도와 규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제약사의 무한 책임론이야말로 무책임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