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입맛대로 결정되는 건강보험 관련 최고 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위원 구성과 결정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도높게 제기됐다.
공급자와 가입자 모두 건정심 의사 결정 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공익 위원의 공정한 선임을 주장했으나, 정부는 현 공익위원의 합리성을 고수했다.
자유한국당 이명수 의원(보건복지위원장) 주최 대한의사협회 주관으로 7일 국회 의원회관 제2 세미나실에서 '합리적 의사결정 구조 마련을 위한 건정심 개편방안 모색 정책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이평수 전 차의과대학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현 건정심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건정심은 2000년 건강보험법상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에서 2002년 재정건전화특별법에 의한 심의 의결기구인 건정심으로 이어 2007년 건강보험법상 건정심으로 역할과 기능이 조정됐다.
이평수 전 교수는 "감사원이 2004년 재정건전화특별법상 건정심 구성과 운영의 부적정성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했지만 거의 달라진 게 없다. 당시 감사원은 공익위원의 편향성 등을 지적했다"면서 "건정심은 지금도 근거에 의한 타협보다 힘에 의한 다수결 결정과정 등 정부의 면피성 위원회 성격이 강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과거 재정안전에서 보장성 강화와 의료 질 향상으로 환경이 변화된 만큼 건정심 구조와 과정도 개선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공익위원을 공급자와 가입자 추천 동수 위원을 위촉 그리고 결정기능과 조정기능을 분리해야 한다. 요양급여비용(수가) 협상 결렬 시 근거없는 패널티보다 건정심과 별도의 조정기구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의료단체와 시민단체 모두 건정심 구조의 문제점에 공감했다.
병원협회 서진수 보험위원장은 "현 건정심 구조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공익위원들이 가입자 단체 눈치를 보며 개인 소신과 다른 반대의견을 피력하지 쉽지 않다. 의사협회의 건정심 불참으로 25명 위원 중 의사는 병협 1명 뿐 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위원 모두 간호사인 부분도 구성에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서진수 위원장은 "복지부의 건정심 보고사항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반대 의견을 제시해도 부결 기능이 없다. 공급자단체의 수가계약 결렬 시 건정심 패널티 부과와 가입자 위원들의 전문성 결여 등도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대표는 "70조원 규모의 건강보험 재정을 보건복지부 주도 의사결정 구조로 하는 나라는 없다. 견제와 균형이 건정심 핵심이나 지금은 공급자 단체의 파이 다툼으로 국민과 무관한 그들만의 리그"라고 주장했다.
김준현 대표는 "건정심 위원 구성 개선도 중요하나, 기능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근거있는 의사결정 개선은 어렵다. 국회 추천인사에 의한 공익 위원 선출과 공익위원 중 위원장 선출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년 넘게 건정심 공익위원으로 활동한 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선임연구위원은 "공익 위원을 정부의 꼭두각시로 지적한 부분은 다년간 공익위원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고 전하고 "공단 이사장이 수가 결정에서 가입자 대표인 대리협상인 상황에서 건정심에선 공익위원이다. 공단을 가입자 대표로 하고, 공급자 위원은 요양급여협의회에서 추천하는 형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영석 선임연구위원은 "보험수가는 상대가치점수와 환산지수로 이뤄진 만큼 매년 원가 조사를 통해 현실을 냉철히 직시해야 한다. 건정심 별도 사무국도 마련해야 한다"고 답했다.
복지부는 위원 구성의 중립성과 절차 지적은 수용하면서도 정부 편향적 구조라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보험정책과 정경실 과장은 "건정심 현 형태는 당시 시대적 요구의 산물로 적합하다고 본다. 복지부가 지난 15년 이상 가입자와 공급자, 공익 등 균형 있는 참여로 공정한 결정을 위해 노력했다"면서 "건정심은 치열한 논의를 거쳐 결정한다. 공급자와 가입자 입장이 다를 때 공익위원들의 노력도 도외시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정경실 과장은 다만, "건정심 위원 구성의 중립성과 절차, 투명성 지적은 일면 타당성이 있으나, 위원 구성 논의의 장이 어디냐에 따라 의견이 달라진다. 국책기관 등 특정 개인보다 공익 대표에 대한 일방적 공격은 문제 있다"며 "건정심 투명성 관련 억울한 부분도 있지만 가급적 최대한 공개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청중 질의에서 "위헌적 의견이 있는 강제지정제를 전제로 건정심을 건강보험 정책의 합리적 의사결정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건강보험 60조원 중 의료가 절대적이나 공급자 위원 중 의사가 3명인 것은 문제가 있다. 의사협회는 올해 건정심 구조개편을 핵심과제 중 하나로 정하고 사활적 노력을 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평수 전 교수는 "건정심 합리성 관련, 가입자와 공급자, 정부 입장이 모두 다르다, 서로 자기 입장에서 합리적인 결론 도출은 어렵다"면서 "지금도 정부가 갑인 상태에서 을인 공급자들의 몸부림이다. 공급자들이 건정심 구조를 이해하고 강약을 조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미나 좌장을 맡은 연세대 박은철 교수는 마무리 멘트를 통해 "건정심이 어느 위원회보다 치열한 것은 사실이다. 논의 범위를 좁혀 건강보험법 제4조 개정과 공익 위원 선임 개선으로 국한할 필요가 있다. 전문성 보강 차원에서 상시 직원 시스템인 건정심 사무국 설치도 필요하다"며 의료계의 합리적 전략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