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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관세청 조사’ 설설설…뒤숭숭한 의료기기업계

정희석
발행날짜: 2019-01-28 00:06:24

국내 심혈관 스텐트 공급 다국적기업 ‘소문·제보’ 무성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는 한국애보트가 일부 심혈관 전문의를 대상으로 해외학술대회·교육훈련 지원을 빙자한 관광접대 등 불법·편법 영업행위 정황을 보도했다. 해당 이미지는 뉴스타파 보도내용에서 발췌했다.
의료기기업계가 심상치 않다.

구체적으로는 다국적기업들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는 의미다.

정확히 말하자면 심혈관 스텐트를 공급하는 ‘한국애보트·보스톤사이언티픽코리아·메드트로닉코리아’가 그렇다.

한국애보트는 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은 것은 물론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를 통해 일부 심혈관 전문의를 대상으로 해외학술대회·교육훈련 지원을 빙자한 관광접대 등 불법·편법행위 의혹이 제기되고 그 정황까지 상세히 보도되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공정위는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확보한 한국애보트 비리 관련 공익신고 자료들을 토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국적기업 한 임원은 “2013년 공정위 조사하고는 수준 자체가 달랐을 것”이라며 “공정위가 확실한 자료를 기반으로 훨씬 더 기술적이고 타이트하게 조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애보트는 앞서 2014년에도 부당 영업행위로 공정위 시정조치 명령을 받은 만큼 이번 조사결과를 더욱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의료기기업계 일각에서는 공정위 조사가 한국애보트에 이어 보스톤사이언티픽코리아·메드트로닉코리아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는 2013년 심혈관 스텐트를 공급하는 이들 다국적기업 3개사를 조사하고 이듬해 한국애보트·보스톤사이언티픽코리아에 ‘시정조치’ 명령을, 메드트로닉코리아에 ‘혐의 없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보스톤사이언티픽코리아·메드트로닉코리아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근거 없는 소문과 추측성 제보까지 난무하고 있다.

기자에게도 지난 일주일 동안 여러 제보들이 전해졌다.

그 중 하나가 관세청이 지난 24일 보스톤사이언티픽코리아에서 현장조사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해당 제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25일 오전 해외 워크숍으로 베트남 다낭에 있는 보스톤사이언티픽코리아 언론담당 임원 김설아 상무와 어렵게 통화가 닿았다.

김 상무는 “제보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연말 5년에 한번 실시되는 관세청 정기조사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이어 “현재 관세청이 조사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하는 마무리 단계로 일부 누락된 내용들을 추가로 작성하기 위한 과정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일각에서 제기되는 공정위 조사 가능성 대해서는 “한국애보트 공정위 조사와 언론보도 이후 회사 내부적으로도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사실”이라고 짧게 언급했다.

팩트 체크 결과 관세청의 보스톤사이언티픽코리아 조사는 잘못된 제보로 판명됐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제보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정부가 다국적기업들의 불법 로비·영업행위와 함께 치료재료의 국내 수입 과정에서 편법적인 거래를 통한 가격 산정 및 백마진 여부 등을 공정위·관세청 등을 통해 ‘핀셋조사’를 시작했다는 업계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관세청 조사 제보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그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기업이 모회사 등 국외 특수관계자와 거래를 하면서 그 거래가격을 정상가격보다 높거나 낮게 적용해 과세소득이 감소되는 경우 과세당국은 그 거래에 대해 정상가격을 기준으로 과세소득금액을 다시 계산해 조세를 부과한다.

다시 말해 보스톤사이언티픽코리아가 본사로부터 치료재료를 수입하면서 가격을 과다하게 책정해 이윤을 축소한 건 아닌지, 즉 ‘관세법 위반’ 여부를 관세청이 조사했다는 게 관련 제보가 나온 배경으로 추정된다.

메드트로닉코리아 또한 소문의 중심에 있기는 마찬가지.

의료기기업체 대관업무 임원은 25일 기자에게 “상당히 신뢰할 수 있는 정보”라며 “공정위가 곧 보스톤사이언티픽코리아·메드트로닉코리아 현장조사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제보했다.

관련해 메드트로닉코리아 언론담당 임원 이선영 상무는 “공정위가 조사를 통보하는 것도 아니고 언론보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관련 내용을 접하고 있다”며 “현재 상황은 (공정위 조사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정도”라고 밝혔다.

그는 “2014년에도 공정위로부터 협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며 “매년 임직원을 대상으로 윤리서약을 받고 의료기기 공정경쟁규약 교육을 엄격하게 진행하는 등 윤리경영에 충실했기 때문에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재차 설명했다.

한편, 공정위 조사와 언론보도를 통해 다국적기업들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이 커진 가운데 그 불똥이 해외워크숍으로 튄 모양새다.

최근 몇 년 사이 상당수 다국적기업들은 해외워크숍을 정례화하고 있다.

다국적기업 대리점 관계자는 다국적기업들의 해외워크숍을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잔치를 벌이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심혈관 스텐트와 같이 보험급여를 받는 치료재료의 경우 마진율이 높기 때문에 불법 영업행위를 하는 것 아니겠냐”며 “이렇게 벌어들인 이윤은 결국 국민들의 건강보험료에서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다국적기업들이 해외워크숍을 나가는 이유 중 하나는 비용처리를 통해 어차피 내야 할 세금을 덜 내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련해 다국적기업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지난 23일부터 27일까지 베트남 다낭으로 해외워크숍을 갔다 온 보스톤사이언티픽코리아 김설아 상무는 25일 기자와의 통화 당시 “이번 워크숍은 지난해부터 계획된 행사였다”며 “직원들을 격려하고 올해 회사 사업방향을 수립하기 위한 퀵오프 미팅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기적으로 한국애보트에 대한 공정위 조사와 언론보도 때문에 업계가 어수선하지만 이 때문에 전체 직원들과 중요한 비즈니스 플랜을 수립하는데 지장을 받는 건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다국적기업 한 관계자는 세금을 덜 내기 위한 꼼수로 해외워크숍을 간다는 주장에 대해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다국적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이유는 개별기업 운영 전략이자 선택의 문제”라며 “실적에 따라 해외로 워크숍을 나가든 국내에서 진행하든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불법·편법 영업행위 바로잡아야…다국적기업 도매급 취급 우려”

그간 의료기기업체의 불법 행위는 제약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의료기기 시장규모 자체가 작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치료재료들이 존재하고 그 유통과정 또한 복잡하다보니 의사들과의 유착관계를 밝혀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익위와 언론을 통해 다국적기업들의 해외학술대회·교육훈련 지원을 명목으로 불법·편법 행위를 저지른 정황이 드러나면서 업계 내부적으로도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국적기업 한 임원은 “터질 것이 터졌다”고 운을 뗀 뒤 “이번 기회에 불법·편법 영업행위를 하는 의료기기업체들을 철저히 조사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업계 스스로도 의료기기 공정경쟁규약 개정과 자율준수를 강화하는 등 자정노력이 필요하지만 의사들의 인식 개선이 없다면 실효성을 거둘 수 없다”며 “업계와 의사의 불법적인 유착관계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다만 “일부에 국한된 불법 행위로 인해 의료기기업계 전체가 마치 부도덕하고 비리를 일삼는 집단인 것처럼 오해받을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다국적기업 관계자 역시 “많은 다국적기업들이 공정경쟁규약을 통한 해외학술대회 참가와 교육훈련 등을 지원해 의사들의 의료기기 신기술 습득과 술기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학 발전은 그 혜택이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라며 “일부 기업의 문제 때문에 공정경쟁규약 규정을 준수하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의사들을 지원해온 대다수 다국적기업들까지 도매급으로 취급받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