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코펜하겐에 본사를 두고 신경정신계(CNS) 분야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다국적 제약기업 룬드벡의 얘기다.
1940년부터 CNS 전문 제약사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시작한 룬드벡은, 현재 글로벌 매출액 3조원 규모로 전 세계 약 5000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여기서 2002년에 국내 진출한 한국룬드벡은 올해로 출범 18년차를 맞았다.
최근 만난 한국룬드벡 오필수 사장은 "국내 제약사와 공동 판매를 진행하는 작은 전문 제약사로 첫 발을 뗐지만 이제는 전 거래처를 직접 커버하는 CNS 전문 제약사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장의 배경엔 우리 회사가 가진 비전과 미션이 명확하다는데 있다"며 "혁신성을 앞세워 앞으로도 신경정신계 분야에 글로벌 리더 자리를 이어가는 것이 주된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기업 이념은 회사의 경영구조와도 관련 깊어 보인다. 룬드벡의 설립자인 한스 룬드벡 사후 전 재산은 '룬드벡 재단'에 기증됐다.
글로벌 룬드벡의 경영에 있어 회사 주식의 70%를 재단이 보유하고 있어, 매년 매출 증감에 큰 영향없이 장기적인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 사장은 "실제 매출액의 15~20% 정도를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자하고 기초 과학 연구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가능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국내 우울증약 시장에서도 매출 점유율은 상당한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작년 3분기 기준 항우울제 시장에서 한국룬드벡 항우울제 두 개 품목의 시장 점유율은 18% 정도로 집계되는 것.
오 사장은 "우리나라 환자 다섯 명 중 한 명이 룬드벡의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최근엔 항우울제 시장에서 선도적인 기업으로써 자살 방지와 관련해 사회적 책임도 크게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8년간 국내 시장에서 한국룬드벡의 성과는 이렇게 정리했다.
그러던 중 "2010년부터 아시아 리젼이 아닌 직접 본사에 보고를 진행할 만큼 성장을 이뤘고 2015년부터 주요 11개국에 포함됐다"면서 "여기서 아시아국가로는 일본, 중국, 한국, 호주 정도만이 속한다"고 언급했다.
2013년부터 지난 5년간 한국룬드벡의 평균 성장률은 약 17%로, 다국적 제약사들의 평균 성장률을 상회하는 실적을 보였다.
때문에 "작년부터는 전 직원이 자살예방 게이트키퍼 과정을 이수하고 생명존중 자살예방 선도 기업 제1호로 선정되기도 했다"며 "전 직원이 자살 위험이 있는 동료나 이웃을 먼저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자격증까지 취득한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한국룬드벡은 우수한 항우울제 공급이라는 제약회사의 기본적인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활동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실패 잦은 CNS 신약 개발…"생명존중 자살예방 선도기업 미션 명확해"
거슬러 올라가면 룬드벡이 처음부터 CNS 질환에만 집중했던 것은 아니었다. 1950년대 삼환계 항우울제(TCA) 개발 과정에서 CNS 질환 관련 경험을 축적한 뒤 1989년 SSRI 선발품목인 시탈로프람(citalopram)을 개발해 덴마크에서 첫 신약 승인을 받은 게 주요한 계기가 됐다.
그 과정에서 신경정신과 질환 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노하우와 역량을 쌓고 기타 질환 사업부를 과감히 정리해낸 것.
오필수 사장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제약사에서 신경정신계 치료제를 갖고 있었다"며 "하지만 워낙 개발이 어렵다보다 대규모 투자를 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고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기존에 나와있는 치료제들을 뛰어넘는 신약 개발은 쉽지 않다고 판단해 개발을 중단한 회사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어 "중추신경계 관련 질환들이 소위 선진국병으로 과거에는 다른 질환들에 비해 국내에서의 관심도가 높지 않았지만 이미 전세계적으로 유병율이 높아 전반적인 기능 장애를 유발하는 주요 요인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최근들어 국내에서도 우울증을 비롯한 치매 등을 중심으로 해당 질환들에 대한 관심도가 급증하고 있다.
오 사장은 "신약 개발 실패는 실망스러운 일이지만 신경정신과 치료제 개발은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로 선도 기업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이어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현재 회사측은 실패한 알츠하이머병 및 조현병 3상임상 외에도 임상1상이나 2상에 진입해 있는 또 다른 신약후보물질 연구를 준비하는 상황이다.
"신경 정신계 신약 등장 어려운 이유? 혁신성 가치 평가 재고해야"
CNS 계열 신약들의 약제 가치 산정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도 밝혔다. 오 사장은 "해당 분야는 혁신에 대한 보상이 적은 측면이 있다"고 운을 뗐다.
이를테면 "항우울제의 효능은 채혈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를 통해 평가하다 보니 환자나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어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임상 개발 과정에서 더 많은 환자수를 요구하게 되고 이에 따라 효과를 입증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정신 신경계 질환 신약 개발이 성공하기 힘든 부분이 있고 결과적으로 혁신이 어렵다는 분석.
그는 "조그마한 발전이 나중에 혁신으로 바뀔 수 있다. 치료 영역에 따라 상대적으로 많은 약물들이 비교적 최근에 개발되어 비교약제 가중평균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분야도 많다"며 "그런데 항우울제 같은 경우에는 워낙 전반적으로 약가 자체가 낮기 때문에 가중평균가도 낮아서 들어오지 못하는 신약들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기업에게도 불리한 일이지만, 약으로 분명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자까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안타까운 실정이라고 속내를 전했다.
실제 도입 3년차가 된 '브린텔릭스' 론칭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브린텔릭스 도입 당시, 기대했던 약가가 매우 낮게 책정되면서 본사의 승인이 나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비슷한 시기에 타사에서도 준비하던 신약이 약가에서 좌절하며 국내 론칭에 실패했기 때문.
오 사장은 "브린텔릭스의 도입을 본사로부터 승인 받은 이유는 그동안 '렉사프로'를 국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는 성과를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끝으로 개인적인 경영 철학에서 인재 육성과 성과에 대한 보상을 중요하게 꼽았다.
오 사장은 "한국룬드벡이 독자적으로 R&D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사에서 신약 허가를 위한 글로벌 임상을 진행할 때 한국이 포함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래야 선진국과 비슷한 타임라인으로 신약을 국내에 출시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국내 환자들이 우수한 신약의 혜택을 빨리 접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결국엔 경험이 많고 본사와 잘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인재가 필요한 이유로, 임직원의 능력 개발을 지원하고 성과에 대해 보상하는 것이 대표의 의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