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환자를 이송해온 경찰은 '하루만 잘 봐주세요'라고 얘기하고 떠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환자가 퇴원하면서 '저 결핵있어요'라고 한마디 남기고 떠나면 병원은 뒤집어진다. 일개 정신병원이 감당하기 어렵다."
오승준 새하늘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은 지난 11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이사장 권준수)가 춘계학술대회를 맞아 마련한 '국내 정신응급진료체계 개선을 위한 공청회'에서 일선 정신병원의 고충을 토로했다.
이날 공청회의 쟁점은 신체적 질환을 동반한 응급정신질환자를 어떻게 적절하게 치료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했다.
먼저 신경정신의학회 홍정완 법사위원회 간사(익산병원)는 정신응급진료체계 확립을 위한 현재까지 논의 진행상황을 밝히며 응급의료체계 내에서 응급정신질환자 관리 체계를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응급정신질환자 상당수가 정신적질환 이외 신체적 질환을 동반하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즉, 자살을 시도한 응급정신질환자의 경우 출혈 등 신체적으로 응급처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내과, 외과 등 응급의료 인프라를 갖춘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을 수 있어야한다는 취지다.
일선 정신의료기관 의료진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며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촉구했다.
정신과 전문병원 입장에서 토론에 나선 오승준 병원장은 "응급정신질환자의 경우 급하게 조치를 하다보면 결핵, 부정맥 등 신체적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뒤늦게 전염병 여부를 확인하면 난감한 경우가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응급입원을 받으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야간에 응급정신질환자 한명이 오면 당직 근무하는 간호사 1~2명이 총동원되는데 그 시간에 다른 환자가 소홀해지는 것은 누가 책임지겠느냐"라며 현실적 고민을 털어놨다.
오 병원장은 대안으로 정신병원을 급성기병동과 만성요양병동으로 구분하고 수가 및 인력기준 또한 구분할 것을 제시했다.
그는 "대만은 90년대부터 급성기병동과 만성요양병동을 구분해서 수가 또한 4배 격차를 두고 있으며 일본 또한 3배 차이를 두고 있다"며 "한국도 현실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료원 이해우 과장(정신건강의학과) 또한 신체적 손상이 있는 응급정신질환자를 치료하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에 따르면 서울의료원은 응급실 내 경찰이 상주하고 있으며 보호병동 30병상 확보하고 있다. 또 조만간 권역응급센터로 지정을 준비할 정도로 응급의료 인프라를 갖췄다. 그럼에도 신체적 질환을 동반한 응급정신질환자의 입원은 상당한 부담이라고 했다.
그는 "1년에 한두번씩 CPR상황이 벌어지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물론 전공의, 간호사의 업무 로딩이 극심하다"며 "타 병원으로 전원이 어려울 뿐더러 의료진 사이에서도 다툼이 발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응급정신질환자 상당수가 경찰 등에 의해 강제적으로 병원에 내원하다보니 치료에 비협조적이고 의료진 등 병원 직원과 마찰을 빚으면서 의료진 사이에서도 기피 대상이 된 것이다.
이 과장은 "서울의료원은 그나마 공공의료기관이라 운영하지만 민간 병원에서는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는 필수의료 차원으로 접근하고 해당 병원에 인센티브 방안을 고민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홍정익 과장은 정신과 환자의 응급입원에 대해 정부가 비용을 부담해야한다는 것에는 일부 동의하면서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의 역량 강화를 주문했다.
그는 "현행 응급의료체계에 이미 정신과 응급의료체계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면 가능하다"면서도 "일선 정신병원도 24시간 응급정신질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신체적질환을 배제한 정신질환 치료에 집중했지만 그 경계를 두지 않았으면 한다"며 "정신과 의사도 신체적 질환을 동반한 경우 이를 진단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개원가에서도 정신과 문턱을 낮추기 위해 정신과 질환 이외 감기, 혈압 등 내과적 질환 진료로 두루 하면서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확인해 치료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정신건강의학과는 독립된 섬이 되기 보다는 진료영역을 두루 열어두고 환자를 진료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