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북부 의료서비스 판도가 바뀔 수 있다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가톨릭중앙의료원 은평성모병원'이 개원한 지 한 달을 맞은 가운데 핵심 주축인 승기배 교수가 돌연 휴가를 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은평성모병원은 지난 4월 1일부터 진료를 개시한 이후 병원 운영이 본궤도에 오르자 계획한 대로 오는 9일 정식 개관식 및 국제학술대회 등 대대적인 개원 행사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은평성모병원이 핵심으로 내세웠던 '심혈관병원'의 책임자는 현재 공석이다.
애초 가톨릭중앙의료원(이하 CMC)은 은평성모병원 개원을 준비하는 과정서부터 '심혈관병원' 운영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병원 내 병원' 형태인 심혈관병원을 통해 서울 서북부 지역 노인층 환자 잡기에 나선 것으로, 은평구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수 1위, 기초생활수급자수 3위 등 의료취약인구 비율이 높다는 점을 겨냥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에 걸맞게 CMC는 서울성모병원장을 거치며 심장 중재술 분야 최고 권위자로 불리는 승기배 교수(순환기내과·사진)를 은평성모병원 산하 심혈관병원장에 임명하면서 '병원의 얼굴'로 내세우는 방안을 계획했었다.
실제로 지난 2월 열린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300차 이사회에서 승기배 교수의 은평성모병원 심장혈관병원장 임용이 의결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은평성모병원 개원을 앞두고 공개된 주요 보직 인사에서는 승기배 교수의 이름은 빠진 채 발표됐다.
따라서 심혈관병원장은 은평성모병원이 개원 한 뒤 현재까지 공석으로 유지되는 한편, 서울성모병원에서 이동한 김범준 교수를 비롯해 서석민, 장민옥 교수 등이 책임지고 있다.
은평성모병원 측 관계자는 "심혈관병원장은 현재까지 공석인 상황"이라며 "당초 승기배 교수가 원장직을 맡는 것이 유력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는 아니다. 구체적인 원인은 밝히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은평성모 인사서 빠진 승기배 교수, 돌연 휴가
이 가운데 서울성모병원에 남기로 한 승기배 교수는 돌연 '2개월' 동안의 휴가를 내면서 사실상 진료활동을 접은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전까지 병원계 일각에서는 심혈관병원장 인사를 둘러싼 잡음으로 인해 2021년 2월 정년임에도 불구하고 '진료배제설' 마저 제기됐던 상황인데다가 은평성모병원 개원을 전·후로 갑작스럽게 장기간 휴가를 떠나자 궁금증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안식년이나 정기적인 휴가가 아닌 이상 갑작스럽게 2개월 넘게 장기간 휴가를 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이 CMC 내부 교수진들의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한 CMC 관계자는 "심혈관병원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은평성모병원 산하의 특성화 센터"라며 "야심차게 개원하는 시점에서 심혈관질환 분야를 주력하겠다는 의미의 인사지만 병원장 출신을 특성화 센터장 역할을 맡기기에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불편한 인사도 승 병원장의 행보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은평성모병원의 권순용 병원장은 지난 4년간 승기배 병원장 지휘아래 있었던 인물인데, 은평성모병원으로 오면서 위치가 뒤바뀐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평가다.
병원 관계자는 "더구나 의료계에는 선·후배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가 남아있다"며 "직접적인 계기라고 지목하기는 힘들지만 하나의 원인 아니겠나. 문제가 되다 보니 일단 휴가를 낸 것이라고 본다"고 내다봤다.
이밖에 승 병원장이 은평성모병원과 서울성모병원 심혈관센터 동시 지휘권을 놓고 윗선과 마찰을 빛었다는 설도 있어, 여러가지 가능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승기배 교수는 '개인적인 휴가'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심혈관병원장직은 본인이 거부했다는 입장이다.
승기배 교수는 메디칼타임즈와의 통화에서 "심혈관병원은 내가 가기 싫어서 안 간 것"이라며 "서울성모병원장직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휴가를 현재 쓰는 것이다. 특별한 사유는 없으며 2개월간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짧게 답했다.
하지만 그는 "전화통화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겨, 이번 인사에 말못할 사정이 포함돼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