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가 도네페질(donepezil) 성분의 혈관성 치매 적응증 삭제를 예고하자 의료계가 집단 행동까지 불사하며 결사 항전의 뜻을 보이고 있다.
의사로서 혈관성 치매에 쓸 수 있는 유일한 약을 없애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이로 인해 신경과의사회 등 유관학회들을 중심으로 반대 탄원서를 모아 제출하겠다는 방침이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신경과의사회를 중심으로 대한치매학회 등 유관 학회들이 회원들을 대상으로 도네페질 적응증 삭제를 반대하는 탄원서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이들 학회들은 각 전문과목 학회와 의사회들은 물론 대한의사협회 등에도 협조 공문을 보내 최대한 많은 탄원서가 모일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는 7월 적응증 삭제가 예고된 만큼 최대한 빠르게 의사들의 공통된 의견을 전달하겠다는 의지. 의사들이 직접 나서 약제를 보호하고 나선 셈이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오는 7월 도네페질의 적응증 중 혈관성 치매를 삭제하겠다고 예고했다. 앞서 이뤄진 약제 재평가에서 혈관성 치매에 대한 효과를 규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다.
실제로 약제 재평가에서 도네페질은 전반적 임상평가(CIBIC-plus)와 간이정신상태검사(MMSE)에서는 효과를 입증했으나 인지기능평가검사(ADAS-cog)에서는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
의료계가 이에 대해 집단적으로 의견을 내는 것도 여기에 있다. 3가지 평가 지표 중 2가지가 좋아진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했는데 단 하나의 지표때문에 이를 쓸 수 없게 만드냐는 지적이다.
특히 현재 혈관성 치매에 쓸 수 있는 약이 도네페질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의사들이 나서 적응증 삭제를 막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대한신경과의사회 관계자는 "3가지 중 2가지가 좋아졌는데 1가지의 이유로 약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명줄율이 떨어진다고 전장에서 총을 쏘지 못하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지금까지 도네페질로 혈관성 치매를 막고 있던 환자들을 치료할 방법 자체가 없는데 무작정 적응증을 삭제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아우성이다.
2017년 기준 혈관성 치매로 도네페질을 처방받은 환자는 약 24만 3875명으로 전체 치매 환자중의 8.8%를 차지하고 있다. 도네페질의 적응증을 삭제하면 이들 모두가 방치된다는 것이 의료계의 공통된 의견.
이로 인해 만약 전문가들의 집단 탄원서를 받고도 식약처가 적응증 삭제를 돌이키지 않는다면 진단 변경 등을 고민할 수 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경과의사회 관계자는 "어떻게든 7월 안에 식약처의 방침을 돌리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며 "그럼에도 식약처가 이를 강행한다면 어쩔 수 없이 혈관성 치매 환자를 알츠하이머 치매로 진단을 바꿔 도네페질을 처방하는 방법외에는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