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치료제 도네페질의 혈관성 치매에 대한 적응증이 삭제되면서 7월 처방 대란 가능성이 제기된다.
적응증 삭제로 치료제가 사라진 까닭에 3만 7천여명에 달하는 환자들의 치료제 사용이 사실상 막힌 셈. 일부 의료진들의 경우 알츠하이머와 같은 진단 코드명 변경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내달 도네페질 적응증 삭제를 앞두고 코드 변경 등 다양한 대응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임상 재평가에 따라 도네페질의 혈관성 치매 적응증을, 아세틸엘카르니틴 성분의 일차적 퇴행성 질환 적응증을 삭제키로 했다.
혈관성 치매는 뇌혈관 질환으로 인해 뇌조직의 손상으로 나타나는 치매다. 보통 뇌혈관 질환이 반복해서 발생함으로써 혈관성 치매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2017년 기준 도네페질 복용 환자는 58만명인데 이중 혈관성 치매로 도네페질을 복용한 환자는 3만 6862명이었다. 문제는 그간 혈관성 치매 치료제가 도네페질이 유일했다는 점.
보통 치매 환자 중 혈관성 치매 환자 유병률은 전체의 6~10%대로 파악된다. 2018년 65세 이상 추정 치매환자 수가 70만명을 돌파한 것을 감안하면 혈관성 치매 치료제 복용 환자군은 적어도 4만 명 대에 근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달부터 4만 명에 달하는 환자들이 받을 수 있는 혈관성 치매 약이 없어진 셈이다.
▲의료계 집단 반발…코드 변경으로 응수하나
의료계는 이번 판단이 기계적이라는 데 입을 모은다. 완치 개념의 치매 치료제가 없는 상황을 고려하면 '부분적인 개선'을 효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임상 재평가에선 그런 부분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약제 재평가에서 도네페질은 전반적 임상평가(CIBIC-plus)와 간이정신상태검사(MMSE)에서는 효과를 입증했지만 인지기능평가검사(ADAS-cog)에서는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
의료계가 반발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3가지 평가 지표 중 일부 개선 효과를 입증했고, 치매가 비가역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비용 대비 효과성을 고려할 때 굳이 도네페질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게 핵심이다.
대한치매학회 관계자는 "정부 방침은 사실상 혈관성 치매 환자를 방치하라는 말과 같다"며 "의료진으로서 이런 방침에 동조할 의사들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고 밝혔다.
그는 "대다수의 의사들이 알츠하이머로 진단명을 바꿔 도네페질을 처방받던 환자들에게 그대로 처방을 유지할 것 같다"며 "만일 약을 투약받던 환자에게 정부 방침으로 더 이상 처방이 불가하다고 설명하면 납득할 환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고대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도네페질은 혈관성 치매에서 부분적으로 효과가 확인된 약물인데 식약처가 협의의 의미로 효과를 판단한 것 같다"며 "적응증 삭제 이후 코드 변경을 통한 처방 유지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영상 촬영을 통해 혈관성 치매를 확인해도 이를 그대로 기입하지 않고 알츠하이머 코드로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렇게 되면 결국 알츠하이머 유병률 증가처럼 건강보험 데이터 왜곡 및 착시 현상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반대 탄원서를 제출한 신경과의사회 등 유관 학회들은 방침 변경이 없다면 7월부터 처방 코드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거론하고 있다.
▲식약처의 적응증 삭제 이유는? "모든 검토 거쳤다"
유관 단체의 항명에도 불구하고 식약처는 적응증 삭제를 고수한다는 방침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료계의 의견서도 검토했지만 특이 사항은 없었다"며 "7월부터 적응증 삭제는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식약처는 허가 기관이기 때문에 판단 기준은 효과 유무가 될 수밖에 없다"며 "약의 보장성과 접근성을 보호해 주는 것과 효과 없는 약을 그냥 쓰게 풀어주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식약처로서는 충분한 기회를 줬다"며 "문헌 재평가도 거쳤고, 실제 임상 재평가를 거쳤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다수의 국가에서 도네페질의 혈관성 치매 적응증이 인정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적응증 삭제는 결코 국내에 한정된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
문헌 재평가에서 여러 나라의 허가 사항이 반영됐고, 의료진이 포함된 실제 임상에서도 효과를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적응증 삭제는 당연한 귀결이라는 뜻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임상 과정에서 당연히 의료진이 포함돼 있고, 보통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도 전문 분과로 의료진이 포함된다"며 "전문가들의 동의를 거친 적법하고 합법적인 결론을 여론으로 뒤집을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다만 제약사가 향후 변경 허가를 신청할 수는 있다"며 "임상을 재설계로 효용성을 입증하거나 새로운 문헌 제출로 효능을 증명해야만 허가 사항에 반영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