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 초 복막염 증상을 호소하던 60대 여성 A씨는 소위 빅5병원이라는 S대학병원 응급실로 내원했다. S대학병원 응급실은 물론 중환자실은 이미 포화상태 더 이상의 응급수술이 불가능했다. 수차례 전원 요청 끝에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E대학병원 응급실로 전원, 응급수술을 실시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A씨의 병명은 농 자궁증(pyometra). 농 세척만 잘 하고 항생제를 쓰면 생존율이 높은 비교적 간단한 질환이다. E대학병원 한 의료진은 "외과적으로 간단한 수술로 전원하느라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면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S대학병원과 E대학병원 사이, 권역응급센터는 물론 S대학병원을 제외한 나머지 4개의 빅5병원이 있었다. 하지만 A씨의 응급수술 전원 요청을 받은 곳은 없었다. E대학병원 의료진은 "간단한 수술이라 차라리 인근 중소병원 응급실을 내원했더라면 살았을텐데…"라며 한숨을 지었다.
#2. 수도권에 위치한 B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외래 내원한 환자 중 입원이 필요한 경우 응급실을 통해 입원시키고 있다. 물론 편법적인 방법이고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을 고려하면 응급실 과밀화 지수를 낮춰야 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병동이 풀가동 중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
당장 응급의학과 교수의 볼멘 소리가 터져나오고 마비지경인 병동 상황이 눈앞에 그려졌지만, 응급으로 이어질 것이 불보듯 뻔한 환자를 그대로 돌려보낼 순 없었다.
내과 교수는 "바로 인근에 중소병원 병상은 텅텅 비어서 고민하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난리인가"라며 한탄했다.
정부의 보장성 강화 즉, 문 케어 도입 2년째. 빅5병원을 중심으로 상급종합병원 의료진이 "환자가 위험하다"고 입을 모아 경고하고 있다.
풀가동으로 운영 중인 병동과 중환자실. 정부의 강력한 규제 정책에도 높아지는 응급실 과밀화 지수. 응급수술을 끼워넣을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짜여진 수술 스케줄 등.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의 눈에는 위험천만 요인 투성이다.
의료진들의 우려를 단순한 푸념으로 간과하기에는 의료현장의 실태는 심각하다. 중앙응급의료센터가 발간하는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 통계연보에 따르면 문케어 이전인 지난 2015년 대비 2018년 병실, 중환자실 부족으로 인한 전원은 물론 응급수술 처치 불가로 인한 전원이 급증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5년 병실부족에 의한 전원 환자수는 6418명, 중환자실 부족으로 인한 전원은 3513명, 응급수술 처치 불가로 인한 전원은 6656명이었다.
하지만 2018년 병실부족에 의한 전원 환자수는 상반기에만 이미 7326명으로 2015년도 1년치 기록을 넘겼다. 매년 전원환자 증가율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가파른 상승세다.
중환자실 부족으로 인한 전원 환자 수도 상반기 기준 2657명으로 1년치로 환산하면 4314명으로 2015년 대비 훨씬 늘어난 수치다. 응급수술 처치불가로 인한 전원 또한 2018년 상반기 기준 5227명으로 1년치로 환산하면 1만454명에 달한다.
CT·MRI 대기 급증에 환자, 직원, 교수 모두 불만…병원 분위기 악화
일선 의료진들은 지금의 비정상적인 의료 생태계는 상급종합병원의 역할 연구와 교육, 그리고 중증환자 치료를 어렵게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빅5병원 S대학병원 정형외과 무릎인공관절 수술 대기 기간은 1년. 무한대로 길어지는 수술대기를 줄이고자 수술 스케줄을 최대한 촘촘하게 잡으면서 외상환자 수술이 어려워졌다. 실제로 S대학병원은 연골파열, 십자인대파열로 내원한 환자 상당수를 인근 병원으로 전원조치하고 있다.
S대학병원 한 의료진은 "응급수술을 할 수 없는 것도 문제지만 전공의 수련에도 문제가 있다"며 "인공관절 수술만 배워나가게 할 순 없지 않느냐"고 했다.
더 씁쓸한 것은 이런 의료시스템에서 승자는 없이 악순환만 초래할 뿐이라는 점이다. 상급종합병원 한 보직자는 지금의 의료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강하게 우려했다.
그는 "외래에서 의료진이 CT, MRI 검사를 의뢰하면 한달이상 대기한다. 마음이 급한 중증환자들은 검사를 앞당기기 위해 병원 직원들과 고성이 오간다. 의료진도 언성이 높아진다. 병원 분위기는 점점 더 험악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심상치 않다는 분위기는 중소병원 의료진들 사이에서도 공감하는 바. C중소병원장은 "상급종합병원 병상이 부족하다보니 암 수술 환자 재원기간을 단축하는데 최근들어 수술후 2~3일까지 짧아지면서 중증도 높은 환자 케어에 어려움이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암 환자 수술후 2~3일은 아직 수술후 부작용 등을 지켜봐야하는 시기인데 무리한 전원은 수술 환자 케어에 구멍이 생기는 게 아닌가 염려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의료계 내부 위기감은 정부와 온도차가 있다. 복지부 손영래 예비급여과장은 몇일 전 국회 토론회에서 의료전달체계 개선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상급종합병원 진료비 25% 증가는 통계적 오류라며 쏠림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봤다.
의료현장에서 매일 환자와 씨름하는 의료진들은 또 한번 한탄한다. 상급종병 한 내과 교수는 "문케어를 총괄하는 정부 관계자는 착시현상이라고 얘기하는데 도대체 진실이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이는 상급종병이 아니라 환자가 고갈되고 있는 중소병원에서 답을 찾아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디선가 문제가 생겼다. 중소병원에 많던 그 환자들은 어디로 갔나. 상급종병은 해결할 수 있는 진료량을 넘어섰다. 의사는 피곤에 절었고 간호사는 사직이 늘었다. 사람을 무한대로 채용해도 해결할 수 없는 지경"고 언성을 높였다.
이에 대해 복지부 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의료전달체계 및 환자 쏠힘으로 환자가 위험할 지경이라는 주장은 극히 일부 의료기관의 사례로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며 "대형 대학병원에 대한 환자 선호도가 높은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CT, MRI급여화 이후 상급종합병원 검사량이 급증했다는 우려와 관련해서도 예비급여과에서 모니터링 현황을 보면 전반적인 상승세로 상급종병만 쏠리는 것은 아니다. 기존에 워낙 풀가동이다보니 체감도가 높을 순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현재 의료이용 행태가 적절하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 개선방안을 준비 중"이라며 "의료계 의견을 수렴하고 다듬어서 대책은 조속히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