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종별가산제→기능가산제로 전환 제안 상급병원-동네병의원간 네트워크 기반 '의료 공동체' 제시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가 미국 다트머스 대학에서의 6개월 연수를 마치고 돌아왔다.
연수기간 중 미국의 의료이용지도를 공부한 그는 최근 복지부가 발표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과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 기준을 어떻게 평가할까. 17일 그를 만나 직접 들어봤다.
김윤 교수는 복지부의 의료전달체계 개선책을 두고 "정교하지 못하다"고 평가하며 의료기관별 '기능'을 분화와 지역 내 종별간 네트워크를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주문했다. 먼저 의료기관의 '기능' 중심으로 가려면 현재 '종별가산'에서 '기능가산'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즉, 의료기관이 제 기능에 맞게 환자를 진료했을 때 가산을 지급하는 식이다.
또한 그는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리는 환자를 동네병의원을 먼저 찾도록 하기 위한 방안으로 1,2,3차 의료기관간 새로운 개념의 협력병원 시스템을 제안하기도 했다.
현재 협력병원은 병원간 네트워크가 느슨한 구조라면 김 교수가 제안한 협력병원 시스템은 상급종합병원이 1,2차 협력병의원을 적극적으로 리드하고 관리하면 환자 의뢰, 회송체계가 보다 긴밀하게 작동할 것이라고 봤다.
끝으로 그는 상급종합병원 지정에서 가장 중요한 진료권역 세분화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환자의 선택권을 무조건 차단하는 식의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김윤 교수와의 일문 일답 내용이다.
Q: 앞서 연구용역을 맡아 진행한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와 관련해 복지부가 최근 기준안을 발표했다. 입원전담전문의 등 일부 항목은 예비지표로 빠지는 등 변화가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A: 글쎄, 사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진료권역 세분화라고 본다. 상급종합병원의 갯수를 늘리자는 게 아니라 지역별로 2시간 이내에 접근가능하도록 균등배치 하자는 것이다.
마산, 창원에 사는 환자는 부산과 서울 중에 고민할 수 있다. 하지만 인근에 상급종합병원이 있다면 그 고민을 덜 수 있지 않겠나. 서울로 오는 모든 환자를 막을 순 없어도 상당수 합리적인 의료이용 행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Q: 진료권역 얘기가 나왔으니 의료전달체계 개선대책에서 지역 환자는 해당 지역내 상급종합병원 이용을 적극 권장하는, 사실상 지역별 환자이동을 차단하는 정책이 제시됐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A: 중국 고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홍수가 나서 물길을 막았지만 비가 쉴새없이 오니 둑이 무너져내려 무용지물이 됐다. 그래서 다음에는 물길을 넓혔더니 탈이 없더라.
즉, 서울로 가고 싶은 환자를 강제로 차단해서는 설득력있는 정책은 아니다. 특히 지역간 의료질 격차가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본다. 오히려 빅5병원과 지방 상급종병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게 합리적이라고 본다.
Q: 알겠다. 다시 상급종합병원 지정기준 얘기로 돌아와보자. 정부는 중증입원환자는 44% 이상, 경증외래환자는 4.5%이하를 유지할 경우 10점 만점의 가산을 적용한다는 기준을 발표했다. 이 정책이 환자쏠림을 개선할 것이라고 보나.
A: 아마도 정부의 의도는 경증환자 비율을 줄여서 중증환자 비율을 높이는데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중증환자 수는 정해진 것으로 억지로 늘릴 수 있지 않으니까. 문제는 의료기관들은 질병코드를 중증으로 바꾸는 등의 편법으로 기준을 맞출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중증, 경증 환자의 비율만 조절한다고 환자의 진료체계를 바꿀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정교하지 못한 정책이다.
Q: 그럼 어떻게 해야 상급종합병원 환자쏠림을 해소할 수 있다고 보나. 묘책이 있나.
A: 사견이지만, 앞서 언급한 진료권역 세분화와 의료기관간 네트워크 구축이 패키지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진료권역 세분화는 알겠는데 의료기관간 네트워크 구축은 뭔가.
A: 일단 환자쏠림 개선에 핵심은 2가지라고 본다. 그중 하나는 의료기관의 '기능'을 분화하는 것. 다시말해 각자 자기역할을 명확하게 하고 의료의 질을 높이는 게 핵심이다. 지금 의료생태계를 보면 무한경쟁에 의료기관마다 역할도 불분명하다. 일단 외형만 키워놓고 보자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종별가산금'이라고 하는 것을 '기능가산금'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규모에 맞는 기능을 맡기고 그에 맞게 진료했을 때만 가산금을 지급하자는 얘기다. 그래야 앞서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에서 논의했듯 '기능중심'의 의료전달체계가 잡히지 않겠나.
Q: 종별가산 대신 기능가산을 지급하자는 의견은 굉장히 새롭다. 이어서 환자쏠림 개선 핵심요인 두번째는 뭔가.
A: 두번째는 지역단위 의료기관간 네트워크다. 국내에선 시도해본 적 없어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상급종합병원이 자신들의 환자를 회송할 만한 수준을 갖춘 지역내 병의원에 대한 검증을 거쳐 협력병원으로 체결해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때 해당 상급종합병원이 협력병원을 맺을 동네병의원을 직접 찾아가 감염, 환자안전 등 의료 질을 보장할 수 있는 의료기관인지 판단하고 혹시 부족하다면 교육을 통해 의료 질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물론 정부가 교육, 평가에 들어가는 시드머니를 지원해야 가능한 일이다.
Q: 가령, 서울대병원이 협력병원 맺을 곳을 지정하고 부족한 경우는 직접 간호사, 의료기사 교육도 시켜주라는 얘기인가.
A: 그렇다. 수도권 환자쏠림으로 지역 내 의료기관이 텅 비면 그 비어지는 병원에서는 또 다른 불필요한 의료이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결국 전체 의료비를 높여 국가적으로도 손해다. 그런 측면에서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최소화하고 의료 질을 높일 수 있다면 정부가 예산을 써야한다고 본다.
사실, 동네병의원에서 감염관리, 약물안전관리 등 잘 하기 어렵고 어떻게 시스템을 구축해야하는지 막연할 수 있다. 이미 능력을 갖춘 상급종합병원이 협력병원으로 이끌어 준다면 강력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환자입장에서도 OO대학병원의 협력병원이라는 것을 보고 1,2차에 믿고 진료를 받을 수 있고 또 필요한 경우 의뢰, 회송이 유연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Q: 지금의 협력병원과는 확실히 다른 개념같다. 지역별 의료기관간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게 새롭다.
A: 국내에선 새롭지만 사실 전 세계적으로 의료기관간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환자관리의 질을 높여나가는 것은 전반적인 추세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전 세계 인구가 고령화 되고 노인환자의 만성질환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Q: 그럼 지역 내 의료기관 네트워크를 구축, 운영하는 것은 누가 맡아서 진행하나.
A: 지역 내 상급종합병원이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지역의사회 혹은 지역 내 의사들의 협의체를 구성해 맡을 수도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나서 네트워크의 디테일을 만들고 작동하도록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의료현장에 있는 의료전문가들이 역할을 해야한다.
그런 점에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정부 정책, 제도가 정부가 주도하고 의료계는 끌려가고, 그 과정에서 정부와 반목하고 동료 의료기관간 경쟁하는 굴레에서 벗어나야한다. 대신 정부에 오히려 역할을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환자쏠림은 단순히 수가를 올린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