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검진 대상 항목에 폐암 확대 두고 학술적 이견차 NELSON / NLST 인용 두고서도 근거 확실-불충분 대립
연구는 같은데 해석은 두 가지가 나온다면 어느쪽을 믿어야할까?
폐암검진 효과를 둘러싼 근거를 놓고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NELSON과 미국국가폐암검진(National Lung Screening Trial, NLST) 연구가 주인공인데 대한가정의학회와 대한폐암학회가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어 사뭇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복지부는 2017년 2월부터 2년간 CT검사를 통한 폐암 검진 시범사업을 실시, 올해 7월부터 국가 검진 대상에 폐암을 포함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가정의학회다. 가정의학회는 10월 '폐암 국가검진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진행하며 검진 무용론에 불을 지폈다.
이날 인용된 연구는 폐암 검진의 효과를 살핀 NELSON과 NLST다. 2000년 이후 폐암 조기검진과 사망률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기 위한 대규모 연구가 이뤄졌는데 미국의 NLST와 유럽의 NELSON 연구가 대표적이다.
▲5만 여 명 대상 NLST 연구, 해석 엇갈린 이유는?
폐암학회는 폐암 검진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 NLST를 근거로 끌어들였다.
NLST는 5만3454 명의 참가자가 무작위로 배정돼 저용량 CT 또는 방사선 엑스레이 촬영으로 연간 3회의 선별 검사를 진행했다. 연구 프로토콜은 각 33개의 선별 센터에서 진행됐다.
NLST는 방사선 엑스레이 촬영과 비교해 3회 저용량 CT로 검진했을 때 폐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2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승훈 홍보이사는 "저선량 흉부CT(LDCT)에 의한 폐암 사망률의 감소 효과는 NLST 연구에서 확인됐다"며 "흉부 엑스레이 대신 저선량 CT를 찍었을 때 사망 위험비(Hazard ratio)가 20% 감소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가톨릭대학교 가정의학과 이재호 교수는 정반대 입장이다.
그는 "NLST 결과는 저선량CT를 통한 폐암 조기검진 환자의 사망률이 20% 줄었지만 미국 가정의학회는 NLST 결과가 지역사회 여건에서 재현되지 않았다"며 검진 권고하기에는 불충분한 자료로 봤다.
그는 "NLST를 진행한 곳은 미국의 유명 첨단 대학병원급 시설을 갖춘 기관이었다"며 "이런 곳에서 나온 결과를 바로 지역기반 시설에 인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신 기기를 갖춘 의료기관에서 나타난 결과를 일반 개원가나 병원급 진단장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는 것은 안일한 판단"이라며 "동네 의료기관 CT에서 어떻게 효과가 나타날지, 판독의 까다로움은 없는지 판단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가정의학회는 NLST 연구 결과를 두고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평가절하했다.
미국 가정의학회는 2013년 LDCT 검진을 권장하거나 반대하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결론내렸다. NLST은 엄격한 후속 조치 프로토콜을 갖춘 주요 의료 센터에서 진행돼 이와같은 유의미한 결과는 커뮤니티 환경에서 재현되지 않았다는 게 학회 측 입장.
학회는 이어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의사 결정은 폐암 검진의 이점과 잠재적 피해에 대해 충분히 논의된 후 뒤따라야 한다"며 "최대 용량 CT 스캔으로 인한 방사선 노출의 장기적인 피해는 알려져 있지 않다"고 우려했다.
이재호 교수의 주장대로 주요 의료 센터에 시행된 NLST 연구와 지역 기반 의료기관의 시설이 동일하지 않아 이를 근거로 검진을 시행해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될 지는 미지수라는 것.
쉽게 말해 NLST 연구에서 제시한 사망률 20% 감소를 두고 해석이 엇갈린 게 아니라, 사망률 감소가 재현될 수 있는지 여부에 불확실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폐암학회 관계자는 "폐암검진은 CT 촬영과 판독, 수검자에게 설명 등 검진에 필요한 전문적인 인적, 물적 인프라가 구비된 의료기관에서 수행돼야 한다"며 "미국 NLST 연구도 그랬고, 우리나라 국가폐암검진도 질적 요소가 인정된 의료기관에서 시행되고 있다"고 일축했다.
그는 "다만 동네 병원에서는 관련 연구가 시행된 바 없으니 동네병원에서 사망률 감소 효과가 재현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NELSON 연구 인용할 수 있나?
폐암학회는 1만5000 여 명이 참여한 NELSON 연구도 근거로 인용했다.
무작위 폐암 선별 시험인 NELSON 연구는 고위험 대상체에서 저용량 CT에 의한 폐암 검진이 폐암 사망률의 감소로 이어지는지 조사했다. 2003년 NELSON 연구가 시작된 이래 7557명의 참가자가 1년, 2년, 4년 및 6년에 CT 선별 검사를 받았다.
결과를 보면 LDCT 검진군 중 남성의 10년 시점의 사망 위험비는 0.74로 26% 가량 위험이 낮아졌고, 여성은 0.61로 39% 가량 위험도가 떨어졌다.
폐암학회 장승훈 이사는 "NELSON 연구에서 저선량 흉부 CT의 효용성이 드러났다"며 "이탈리아에서 진행된 장기간의 MILD 연구에서도 LDCT검진군이 비 검진군 대비 10년 시점의 사망률이 10만명당 173명 대 247명으로 낮아졌다"고 강조했다.
반면 NELSON을 인용하기에 시기상조라는 우려도 나온다.
가톨릭대학교 가정의학과 이재호 교수는 "해당 연구는 문헌으로 아직 등재가 안됐다"며 "따라서 공식적인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인용하기에는 이르다"고 선을 그었다.
반면 폐암학회는 다른 입장이다.
폐암학회 관계자는 "해당 연구는 언젠가 논문으로 발표할 것으로 본다"며 "본인 역시 데이터를 다 만들어 놓고 바빠서 못 쓰다가 몇 년 지나서 논문 쓴 적 많다"고 말했다. 논문이 늦게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연구 진실성을 의심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과잉진단예방연구회 모 회원은 "많은 분들이 폐암 검진을 둘러싸고 특정 과나 건강보험 재정을 둘러싼 기관간의 갈등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며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이 검진의 특수성이 있다는 걸 간과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 검진 항목 중에도 과학적 근거가 미진한 부분도 존재한다"며 "하물며 실제 검진센터에서는 비즈니스 차원으로 항목을 늘려 검진을 남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의료선진국에서 진행하거나 과학적 근거가 확실한 항목이라면 검진 대상의 확대가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않은 확대시행은 선심성 행정에 그친다는 것. 비용-효과성 역시 검진으로 예방할 수 있는 기대 효용 대비 실제 소요 비용은 막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유럽,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전세계에 폐암 검진을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 과다한 건강검진이 과다 치료로 이어지는 어처구는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학술적 근거를 가지고 이에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폐암 검진이 유례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폐암학회는 "중국은 2015년 국가기관의 명에 따라 폐암검진권고 제정위원회가 설치되어 폐암검진 권고안을 국가 검진 권고안의 이름으로 발표한다"며 "다만 중국은 우리나라처럼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국가가 아니어서 국가 권고안만 발표하고 국민들에게 비용 지원을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은 각 나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폐암검진에 대한 적절한 근거가 있으므로 유럽국가들에서 다른 정책들보다 지금 당장, 우선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며 "폐암 검진 정착을 위해서 과학적, 정책적, 민중 계몽적 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천명했다"고 말했다.
국가마다 각자 방식대로 폐암 검진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표현이 맞기 때문에 각국 사례를 들어 검진 도입을 반대할 수는 없다는 게 학회 측 입장.
검진의 비용-효과성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1000명이 폐암검진을 받으면 351명이 '가짜 암환자'(위양성)로 진단된다. 위양성으로 검진된 환자중 3명은 후속검사로 인한 합병증을, 1명은 침습적 추적검사로 사망한다. 검진이 되레 재검사 및 합병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같은 논쟁도 미국에서 한번 다뤄졌다.
미국 가정의학회는 "NLST 시험에서 한 번의 폐암 사망을 예방하기 위해 5년동안 3번의 스크리닝을 거쳐 312명이 스크리닝(재검사)된다"며 "선별 환자의 40%는 추적 관찰, CT 스캔이 필요하지만, 일부는 기관지 검사 또는 흉강경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가정의학회는 NLST에 기반해 연간 추가 삶당 소요되는 스크리닝 비용을 5만2000달러(약 6060만원)로 추산했다. 또 해당 환자에서 삶의 질을 보정한 기대여명의 증가(Quality Adjusted Life Years, QALY)는 8만1000달러(약 9440만원)로 추산했다.
검진이 60~69 세의 환자에게는 비용 대비 효율적이었지만 55~59 세 및 70~74 세의 환자에게는 효과가 떨어졌다. 특정 나이대에 따른 효용성 및 재검사, 사망에 드는 총 비용 추산없이 사망률의 감소만으로 폐암 검진의 효용을 따지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뜻.
폐암학회 관계자는 "국내 연구에서는 폐암검진을 실시하지 않는 경우에 비해 폐암검진을 실시함으로써 추가 소요되는 비용을 추계하면 수명 1년 연장의 추가 소요 비용은 약 2600만원이고, 건강수명 1년 연장에 추가 소용 비용은 2800만원으로 비용,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과잉진단예방연구회 모 회원은 "검진 후 추가 검사에 따르는 비용, 합병증, 사망, 사망률 저하의 재현 가능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며 "공무원 치적 사업에 국민건강권을 내맡긴다는 말이 나오지 않으려면 이같은 선결 과제의 해결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