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소극적 입장 피력 "개별 질병 단독 입법 기준 판단 어렵다" 대표발의 김세연 의원 "뇌전증 수술받을 곳 없는 현실…법 정비 고려"
특정 질환을 가진 환자만을 위한 법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국회는 공청회를 통해 법 제정의 타당성을 따졌고, 의료계는 법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2일 오후 '뇌전증 관리 및 뇌전증 환자 지원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진술인으로 대한뇌전증학회 홍승봉 편견대책위원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과 한국뇌전증협회 김흥동 회장(세브란스병원 소아신경과)이 참석했다.
해당 법안은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이 대표발의한 것으로 뇌전증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환자의 재활과 자립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뇌전증 관리법이 만들어지면 암, 치매, 심뇌혈관질환 관리법 다음으로 특정 질환자를 위한 법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만성콩팥병관리법안 등 질환 단위 단독법 제정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홍승봉 위원장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뇌전증 환자는 약 36만명으로 뇌졸중(60만명), 치매(70만명) 다음으로 많은 뇌질환으로 젊은 사람의 사망 원인 1위다. 뇌전중 환자의 급사율은 10배, 20~45세 젊은 뇌전증 환자의 급사율은 27배에 달한다.
지난 7월 국립중앙의료원 발표를 보면 난치성 뇌전증 환자가 12만명이고, 수술이 시급한 환자는 2만2000명이다. 하지만 수술 건수는 전국적으로 200건도 채 되지 않는 상황.
홍승봉 위원장은 "10세 이하와 65세 이상에 뇌전증 발생률이 가장 높다"며 "0~100세 전 연령층이 앓고 있는 뇌전증 환자를 국가가 돌보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전 국민 대상 계몽운동, 사회적 차별 예방, 병원마다 진료 수준을 동일하게 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제정 등을 위해서는 별도의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에서도 뇌전증 환자를 수술할 능력이 없다는 홍 위원장의 고백도 이어졌다.
그는 "뇌전증 수술 장비인 뇌자도나 로봇장비가 없어 서울대병원이나 세브란스병원도 뇌전증 수술 건수가 반토막 났다고 한다"며 "삼성서울병원도 장비가 없어 뇌전증 수술을 할 능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김흥동 회장도 "뇌전증 환자는 사회적 편견, 낙인, 차별이 매우 심해 환자들이 교육, 취업, 결혼, 대인관계 등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기 매우 어렵다"라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법률 제정이 시급하고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국회도 긍정적 "시대적으로 필요성 합의됐다"
국회도 전문가들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그동안 뇌전증은 대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다"며 "법은 시기적, 시대적으로 필요성이 합의가 되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냥 둬서는 안된다는 데에 대한 공감대가 있기는 했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도 "국회가 입법을 남발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법이 있음으로서 국민이 피해를 입는다면 없애거나 개정해야 하고, 없다면 제정해야 한다"며 "36만명의 뇌전증 환자와 가족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뇌전증 관리법안을 직접 발의한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 역시 법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의원은 "뇌전증 관리법은 사정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수술을 제대로 받을 수 없을 정도로 현실이 심각하다"며 "뇌전증을 개별법을 제정한 다음 질환 관리에 대한 체계가 잡힌 뒤 심뇌혈관질환 처럼 3대 뇌질환을 모아서 법으로 만드는 식의 입법 정비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복지부 "현행법 체계에서 뇌전증 지원 가능"
정부는 법 제정에 회의적인 반응을 이미 피력한 상황이다. 현행법체계 안에서도 뇌전증 환자 지원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복지부는 뇌전증 지원책을 묻는 남인순 의원 질의에 내년 26억원의 재정을 투입해 뇌전증 센터를 지정할 예정이다. 뇌전증 치료 약제는 건강보험 적용이 되고 있다.
복지부 윤태호 공공보건정책관은 "이미 사회경제적으로 10대 질병부담인 자살, 뇌졸중, 심혈관질환, 암, 치매 등에 대해서는 개별법을 통해서 관리를 하고 있다"며 "개별 질병에 대한 입법 기준을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기준을 애매하게 설정하면 질환의 형평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현실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뇌전증은 장애인법에 따라서 보호받을 수 있고 급여를 통해 보장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며 "공공의료법에 전문질환센터 설치 관련 조항도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