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맥판막치환술 재평가 앞두고 협진 시스템 개선 요구↑ "수술 불가 고위험 환자에 보험 확대 적용해야"
심장이 몸의 엔진이라면 심장판막은 '심장의 문'이다. 심장판막은 혈액이 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하는데 하루 10만번 이상 열리고 닫힌다. 그 문이 고장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판막이 잘 닫히지 않는 경우 미세한 틈을 통해 혈액이 역류한다. 보통 흉통이나 호흡 곤란을 겪다가 역류 양이 늘어날 경우 폐쇄부전증, 판막이 망가져 혈액이 흐름이 원활하지 않을 때 협착증으로 귀결된다.
판막에 염증이 생기는 심내막염의 경우 치료를 하지 않으면 심부전이나 부정맥과 같은 합병증도 가능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심장판막도 나이를 먹는다. 사용 연한, 즉 고령화에 따라 내구성이 약해진다는 뜻이다. 사회 전체가 노령화되면서 심장판막증 환자가 늘어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심장판막이 고장나는 경우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수술적인 방법을 통해 가슴을 열고 병변판막을 절제해서 인공판막으로 교체하는 방법이 있고, 경피적대동맥판막치환술로 불리는 타비(TAVI) 시술도 고려할 수 있다.
인공판막으로 교체한다는 점은 같지만 타비는 혈관을 통해 교체한다는 점에서 수술이 어려운 고위험군 환자에 적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행 보험급여 기준으로는 수술적인 방법은 보험이 가능하다. 타비의 경우는 선별급여를 통해 20%만 보험이 된다. 80%는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뜻.
문제는 타비 비용은 보통 3500만원 안팎으로 80%를 부담하기 어려운 환자들은 위험을 무릎쓰고 수술방식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수술적 방법을 시행하는 흉부외과와 타비를 주로하는 심장내과 사이의 의견일치가 쉽지 않아 치료 방식을 두고도 이견이 엇갈리기도 한다.
▲5년된 타비 보험급여 규정, 문제는 '기계적 협진'
타비의 급여 적용은 2015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3개 병원에서 선별급여 20%로 시행된 타비는 당초 시술 대상 환자도 협진을 통해 결정하게 설계되면서 각 과별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심장통합진료'에는 순환기내과 세부전문의 2인 이상(한국심장초음파학회에서 인증 받은 심장초음파전문의 1인 포함), 흉부외과 전문의 2인 이상,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1인 이상, 영상의학과 전문의 1인 이상 참여해야 한다.
흉부외과가 수술적 방법을, 심장내과에서 타비를 주도하다 보니 협진을 통해 치료방법을 결정하기 보다는 평행선을 달리는 경우가 빈번했다. 전원이 의견 일치를 보는 경우에만 타비 시술이 가능하다고 제한한 것도 장애물로 남았다.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모 교수는 "각 과별 교수간 소위 말하는 입김이 다르고 병원마다 사정도 달라 협진을 통해 의견 일치가 쉽게 되지는 않는다"며 "타비가 도입된지 오래되진 않았기 때문에 이런 걸 갈등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정착되는 단계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연히 흉부 쪽과 내과 쪽은 각자 환자를 바라보는 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새로운 술기를 빨리 도입하려는 의사도 있고, 보다 근거가 쌓이길 바라는 보수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계적인 협진'을 명시했어도 토론과 논의 과정을 거쳐 결론에 이르는 것은 아니라는 게 그의 판단.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과정이 지속되고 있어 타비 적용환자를 둘러싼 반박하기 어려울 만큼의 근거가 쌓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규정(2019년 10월)은 심장통합진료에 참여한 전문의 전원의 동의하에 결정함을 '권고'한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제제 근거가 없어 부작용은 여전한 상황이다.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홍그루 교수는 "본 병원의 경우는 위원회를 만들어 협진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병원이 대다수"라며 "다른 병원에선 먼저 환자를 보는 의사가 수술/시술 여부를 결정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차피 전원 일치된 의견이 도출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흉부외과에서 처음 환자를 보게되면 수술로, 심장내과 쪽에서 환자를 보면 타비로 하게된다"며 "타비도 수술 대비 완벽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에 맞는 적정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술에 따르는 혜택보다는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되는 환자에게는 무엇보다 타비 시술이 진행돼야 하지만 현재의 협진 제도 및 선별급여 제도가 걸림돌이 된다는 게 그의 판단.
홍 교수는 "수술이 어려운 환자는 보통 고연령층이 많아 3500만원 안팎의 타비 시술 비용 중 80%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며 "적어도 수술이 어려운 고위험군 환자에 한해서는 의료진의 선택으로 타비 시술의 80% 이상은 급여로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제안했다.
▲원점에서 재논의하는 타비 재평가, 바람직한 방향은
문제는 재정이다. 건강보험의 급여우선 순위가 비용-효과성으로 설계된 까닭에 무턱대고 재정 투입을 요구하긴 어렵다. 특히 타비 시술이 3000만원 대의 고가 수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300~500만원(환자 부담 5~10%)에 불과한 수술적 요법은 차선에 가깝다. 타비의 전면적인 보험급여화는 무분별한 시술 환자 증가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홍그루 교수는 "경등이나 중등도 환자에게 수술과 시술 중 결정권을 주면 십중팔구 시술을 선택한다"며 "재정이 한정돼 있어 이런 방식은 심장내과 쪽도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흉부외과와 심장내과 모두 동의할 만한 객관적인 고위험군 환자 지표를 만들어 수술이 어려운 사람을 가려내야 한다"며 "이런 환자를 대상으로만 80% 이상 선별급여를 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증의 고위험군 환자에는 타비의 예후가 더 좋다는 근거들이 쌓이고 있는 만큼, 일부 환자군을 대상으로 타비의 급여 확대 정책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고령의 심장판막증 환자 중 특히 합병증을 동반한 경우는 타비가 효율적일 수 있다.
일면적으로 '값싸' 보이는 수술 방식 역시 회복 기간에 따른 입원 비용 등 부대비용을 감안하면 최대 3000만원에 이르러 타비 비용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도 부각된다.
홍 교수는 "보험을 적용해도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3000만원에 이르는데 타비는 시술 방식이라 입원 기간과 회복이 짧다"며 "수술 방식 역시 전신 마취와 입원 기간 등 비용을 다 합치면 총 비용은 타비와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따라서 재정을 이유로 타비의 급여 확대를 제한하는 것은 옳은 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정부에서 진행한 타비 제도 연구 용역 결과에서도 학술적인 이유보다는 무분별한 시술 남발을 이유로 협진 제도 강화로 결론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올해 타비의 재평가를 앞두고 의료계에서 급여 기준 변경 목소리가 나오면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의견 수렴에 나섰다.
심평원 관계자는 "의료계에서 나오는 불만 사항을 잘 알고 있다"며 "전문가 자문가 회의를 거쳐 심장학회, 흉부외과 학회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별 급여 확대 이야기가 있지만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구체적인 윤곽은 올해 중반기가 지나야 나올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