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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침 쇼크 환자 구하다 소송 당한 의사, 판단의 전말은?

박양명
발행날짜: 2020-03-04 05:45:55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 적용 "과실 있었더라도 책임 없다"
쇼크 인지 즉시 에피네프린 투여, 심폐소생술까지

봉침을 맞고 쇼크에 빠진 환자를 구하기 위해 옆 한의원으로 달려간 가정의학과 의사.

법원은 이 의사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봤다. 심지어 설사 환자를 살리기 위한 과정에서 과실이 있었더라도 민사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했다. 일명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인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의 2를 적용한 것이다.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제2민사부(재판장 노태헌)는 최근 한의원에서 봉침을 맞다 쇼크에 빠져 사망에 이른 환자의 유족이 봉침 시술을 한 한의사, 응급조치를 한 의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한의사의 의료과실만을 인정하며 유족측에 4억7148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한의사뿐만 아니라 환자를 살리기 위해 나섰던 의사도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하는 위기에 몰리자 의료계는 선한 의도로 의료 행위를 하는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현실에 분노했다. 그런 만큼 법원의 결정에 의료계 관심은 클 수밖에 없었다.

자료 이미지. 봉침 주사 모습.
봉침 사건의 전말, 의사는 어떤 응급조치했나

일명 봉침 사건은 2018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허리 통증으로 경기도 부천시 Y한의원을 찾은 30대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요추의 염좌 및 긴장' 진단을 받고 봉약침을 맞았다.

A씨는 봉약침(SBV, Sweet Bee Venom, 기존 봉약침에서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효소를 제거한 봉약침) 0.4ml를 맞은 후 약 10분 뒤 발열, 두통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한의사는 환자가 증상을 호소한 지 약 20분이 지나서야 같은 층에 있는 가정의학과의원 C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C원장은 환자 상태를 확인한 후 아나필락시스(쇼크)라고 판단, 0.4mg의 에피네프린과 덱사메타손(스테로이드), 푸라콩(항히스타민)을 투여했다. 응급 주사약이 빨리 들어갈 수 있도록 생리식염수 250ml와 정맥주사 링거를 준비했다.

환자에게 심정지가 발생하자 119구급대가 올 때까지 에피네프린을 재차 투입하며 심폐소생술을 했다. 119구급대가 도착하고도 에프네프린을 거듭 정맥주사하는 등 응급조치를 했다.

하지만 환자는 혼수상태에 빠졌고 약 20일 만에 사망에 이르렀다. 유족은 한의사뿐만 아니라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응급처치에 임한 가정의학과 의사한테까지 민사적 책임을 물었다.

의사는 한의사에게 협진 요청을 받고도 응급조치가 미비했다는 게 유족의 주장이었다. 아나필락시스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즉시 에프네프린 투여, 응급심폐소생술, 119지원요청 등을 취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 판단은? 응급의료법 적용 "민사책임 없다"

법원은 한의사가 봉침 시술에 따른 쇼크 발생에 대비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며 의료과실을 인정했다.

한의사가 에피네프린 같은 전문약을 처방할 수 없다면 미리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협진 의료체계를 마련해둬야 했었다는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 조항.
한의사는 면허 범위를 불문하고 아나필락시스 발생에 대비해 필요한 준비를 갖추고 있지도 않았고, 즉시 응급조치를 시행할 수 있는 병원과 협진체계를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봉침시술을 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이 한의사는 환자가 아나필락시스에 빠진 것을 인지하고서도 옆 의원으로 걸어들어가 도움을 요청했고, 119 신고도 늦었다.

반면 재판부는 옆집 한의사의 요청에 달려와 적극적으로 응급조치에 나선 의사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C원장도 한의사의 협진 요청을 받고 할 수 있는 모든 응급조치를 다했다고 항변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의 2항, 일명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적용한 것.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해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에 대해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않으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환자 A씨는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였다. C원장이 환자에게 한 응급의료나 응급처치 때문에 환자가 사망했다고 하더라도 C원장에게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C원장은 민사책임을 지지 않는다"라며 "유족 측이 낸 증거만으로는 C원장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