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나는 환자가 쓰고 있던 KF94 마스크를 내리고 목을 진찰한 의사가 있다. 나중에 이 환자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면, 의사도 격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 격리를 감수하고라도 마스크를 내리고 환자를 진료해야 할까?
10일 이비인후과 개원가에 따르면 위 질문은 이비인후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 중 하나다. 이비인후과는 코로나19 주요 증상인 발열,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를 특히 많이 보는 진료과목이다.
실제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홈페이지에서 운영되고 있는 익명게시판에는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왔을 때 격리를 감수하고서라도 마스크를 내리고 목을 진찰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질문이 심심찮게 올라오는 상황.
코로나19 환자가 거쳐가면 2주 격리라는 조치가 뒤따르는 상황에서 환자를 마냥 거부할 수도 없어 '러시안 룰렛', '폭탄돌리기' 등의 표현들도 나오고 있다.
경기도 Y이비인후과 원장은 "무증상 감염자가 있으니 단정할 수는 없지만 코로나19와 비슷한 호흡기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다"라며 "혹시라도 확진 환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오는 환자를 안 볼 수도 없는 것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의사가 환자 목 안을 직접 보고 안보고는 진단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환자가 마스크를 쓰고 있더라도 내릴 수밖에 없다"라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호흡기 증상이 아닌 어지럼증, 귀 질환 등 전형적인 이비인후과 질환자가 반갑다"라고 말했다.
서울 Y의원 원장도 "요즘 매일같이 보던 열나는 환자, 목 아프고 기침하는 환자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라며 "열나고 기침하는 환자를 보지 않으면 볼 수 있는 환자 수가 크게 줄지만 코로나19와 비슷한 증상만 있어도 선별진료소로 안내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기침과 열이 있더라도 단 1초만 환자 목을 들여다보면 진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마스크를 내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서울 O이비인후과 원장은 "이비인후과를 찾는 환자 상당수의 증상은 발열과 기침"이라며 "편도선염이나 인후염은 목 안만 봐도 딱 진단이 나오는데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선별진료소로 곧바로 안내하는 의사도 있다. 이비인후과 의사 입장에서는 딜레마"라고 털어놨다.
서울 비전이비인후과 문인희 원장은 개인 SNS를 통해 "1초 목 안을 들여다봤다고 마스크를 낀 상태로 진찰한 의사가 감염될 가능성은 너무 낮다"라며 "이비인후과 의사가 환자 목 안을 1초 보는 여부에 따라 치료방침은 차이가 크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의료인 격리 기준을 현실에 맞게 완화해야 하고 환자가 다녀간 곳이 마치 기피 지역처럼 여기는 국민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