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포커스발대식까지 하며 거창하게 출범했지만 성적표는 초라해 최대집 회장 정치적 성향도 총선기획단 활동에 영향 지적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일찌감치 '총선기획단'을 꾸린 대한의사협회. 발대식까지 실시하며 거창하게 출범을 알렸지만 총선을 하루 앞둔 현재, 초반의 기세는 사그라든지 오래라는 지적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적표가 초라하다. 정치권에 선제적으로 제기했던 보건의료 주요 정책은 총선 공약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의료계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비례대표 후보 배출도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총선기획단, 공약 선제 제시·약 1만명 정당 가입 성과
지난해 6월 출범한 의협 총선기획단은 이필수 부회장(전라남도의사회장)을 필두로 전국 각 시도의사회를 비롯해 의대생, 전공의 등 각 직역에서 총 29명의 위원이 참여해 약 10개월 동안 다양한 활동을 했다.
우선 총선기획단은 12개 항목에 대한 의견이 담긴 보건의료 정책공약집을 만들어 50여명의 여야 국회의원에게 전달했다. 더불어민주당, (당시)자유한국당, (당시)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 6개 정당에도 의협의 입장을 전했다.
▲실효성 있는 의료전달체계 정립을 위한 구체적 방안 마련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한 건강보험체계 개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및 건강보험종합계획 전면 재검토 ▲보건의료정책 의사결정과정 관련 위원회 개선 ▲안전한 환자 진료를 위해 전공의 수련에 대한 국가 지원 및 의사인력계획 전담 전문기구 설치 ▲의사면허관리기구 설립 및 자율징계권 확보 ▲의료기관 내 무면허 의료 행위 근절 ▲의료기관 내 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 마련 ▲진료환경 보호법 제정 ▲한의사의 불법 의료 행위 근절 ▲원격의료 규제자유특구 사업 중단 및 대면진료 보완 수단 지원 강화 ▲국민 조제선택 제도 시행 등이 구구절절이 담겨있다.
국회에서 '의사' 존재를 찾기 위한 노력도 했다. 지난해 말 보건의료정책에서 전문가로서 의사의 역할을 찾는다는 주제의 국회 토론회를 연달아 개최하기도 했다.
지역 단위로 총선기획단을 조직하면서 1인 1정당 가입 및 회원 1인당 가족 포함 3명의 권리당원/책임당원 가입하기 운동, 국회의원 1인 후원하기 등 정치적 역량 강화를 위한 물밑 활동도 꾸준히 진행했다. 그 영향으로 약 1만명의 의사가 권리당원/책임당원으로 가입한 것으로 총선기획단은 파악하고 있다.
총선기획단이 만든 공약 반영 제로, 코로나19 때문?
그러던 와중에 올해 초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모든 이슈를 잠식했다.
이필수 단장도 아쉬운 부분 중 하나라고 꼽았다.
그는 "주요 정당과 만남을 가지면서 정례적인 의료정책 협의체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고 정당 관계자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라며 "총선 시즌이 본격 시작되면 다시 한번 제안을 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모든 논의가 중단됐다"라고 말했다.
총선기획단이 내세운 공약도 이번 총선에서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주요 정당은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시키고 보건부 독립 또는 복수차관제 등을 앞으로 내세웠다. 감염병 관리 이외 공약 중 눈에 띄는 것은 의사 수 확대, 주치의제 도입 등이다. 이는 의협의 입장과는 반대되는 공약들이다.
이 때문에 총선기획단이 내세운 공약이 국회에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총선기획단 회의에 참여했던 한 위원은 "사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이라는 어젠다는 누구나 공감하는 것"이라며 "어젠다만 던질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개선책도 뒤따라야 한다. 국민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 같은 내용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의협 전 임원은 "국회의원 중 의사 출신이 아니더라도 친의료계 의견을 내는 사람을 만들어야 하는데 의협 공약을 반영하겠다는 국회의원을 못봤다"고 꼬집었다.
이필수 단장은 정책 제안이 하루아침에 통할 수는 없는 일인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제안을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단기간에 만든 총선 공약집이 반영으로까지 이어지기까지에는 한계가 있다"라며 "의협 주장이 채택되려면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국회와 꾸준히 접촉하고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책을 제안했을 때 정당 관계자들은 공감을 표시했다"라며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국회와 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시금석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최대집 회장 정치 성향, 총선기획단 움직임 제한했다"
이필수 단장은 선거에 뛰어든 각 정당의 의사출신 후보를 직접 만나면서 "국민과 의료계가 만족할 수 있는 올바른 보건의료정책을 만들어 달라"고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는 등 동분서주했다.
총선기획단은 현재 이번 총선에서 신현영 후보를 포함해 4명의 의사출신 국회의원이 나올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의료계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비례대표 후보를 배출함에 있어서 총선기획단의 역할론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있었다. 오히려 선거 관련 정보가 총선기획단으로 집중되지 않는 모습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더불어시민당 신현영 후보가 비례대표 1번을 받은 것도 총선기획단은 뒤늦게 인지했다.
의협 임원인 방상혁 상근부회장을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로 내는 과정에서도 총선기획단의 의견 반영은 이뤄지지 않았다. 의협은 총선기획단이 있음에도 자체적으로 방상혁 상근부회장의 정치 도전을 응원하는 성명서를 따로 발표하기도 했다.
의협 전 임원은 "회원의 눈으로 봤을 때 총선기획단의 활동을 평가하려면 의사출신 국회의원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할 것"이라며 "현재 상황에서는 20대 국회보다도 의사출신 국회의원 배출이 적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총선기획단 또 다른 위원은 국회가 의사의 중요성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은 "국가 보건의료정책 발전을 위해 의사 출신 비례대표가 중요한데 국회가 보건의료정책에서 의사 참여 중요성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라며 "코로나19라는 국가재난 상황에서 전문적인 시각이 필요한 만큼 의사를 적극적으로 스카우트해야 하는데 그런 마인드 자체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 최대집 회장의 뚜렷한 정치적 성향도 총선기획단 운신의 폭을 좁히는 데 한몫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실제로 총선기획단이 주요 정당에 공약집을 전달하며 만남을 가질 때 의협 집행부와 대척점에 있던 더불어민주당을 만나기가 여의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의협 전 임원은 "최대집 회장이 개인 성향을 보인 것 자체가 의협 회무의 최대 약점"이라며 "그동안 의협 집행부를 봤을 때 총선기획단이라고 해서 자유롭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의협 대의원회 한 대의원은 "총선기획단 출발은 좋았지만 의협 집행부가 특정 정당과의 관계를 부각시키면서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라며 "총선기획단의 움직임을 알게 모르게 제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