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손목시계형 심부전 관리기기 사용 '규제없음'으로 해석 의료계 "사실상 원격의료사업 허용"...전원안내 놓고도 이견 엇갈려
코로나19 사태로 급부상한 비대면의료로 명명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사업이 의료체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비대면의료 사업 활성화 발언으로 고조된 전화상담 및 전화처방 그리고 의원급 원격의료 모형 국책사업까지 의료 생태계가 새로운 변화의 기로의 서 있다.
의료계가 반대해온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사업화 첫 단추는 어디일까.
과학기술정통부가 지난 3월 12일 배포한 '의료 데이터를 통한 의사 내원 안내 서비스 본격화' 제목의 보도자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과학기술정통부는 지난 2월 "보건복지부의 적극적 유권해석으로 실증특례 1호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관리 서비스'(휴이노)가 본격 사업화에 돌입했다"고 발표했다.
더불어 동일한 내용인 서울대병원과 LG전자의 '부정맥 데이터를 통한 의사 내원 안내서비스' 역시 규제 없음으로 실증특례를 인정했다.
기존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측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가 환자에게 원격으로 내원을 안내하는 것은 현행 의료법상(제34조) 불분명했다. 다시 말하면 의료법 위법에 해당했다.
하지만 복지부가 지난 2월 '해당 규제 없음'이라는 유권해석을 과기정통부에 전달하면서 실증특례 없이도 휴이노와 고대안암병원의 임상시험이 가능해진 것이다.
과기정통부는 한 발 더 나아가 4월 12일 'ICT 규제 샌드박스, 2020년 1분기 주요 성과 발표' 보도자료를 통해 휴이노와 고대안암병원의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관리서비스 등 21건의 신기술 서비스가 시장 출시됐다고 홍보했다.
주기적인 병원 진료가 불편한 (수술)환자들에게 편의성을 제고하고 향후 스마트 의료 분야 등 국내외 시장 진출 기획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해외 수출을 사실상 명문화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복지부의 유권해석이다. 지난 1년 가까이 보류한 휴이노건인 의사-환자 간 전원안내를 왜 ‘규제 없음’으로 해석했느냐는 것이다.
복지부 유권해석은 보건산업정책국 소속 의료정보정책과에서 작성했다.
의료정보정책과 측은 "휴이노건 실증특례 당시부터 현재까지 복지부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전제하고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 및 심전도 측정에 따른 원격모니터링은 허용되나, 문제는 환자의 전원안내였다. 의사가 심장수술 환자의 심전도 측정 결과를 토대로 단순히 전원안내를 하는 것은 의료법에 접촉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행 의료법에 의거해 전원안내만 할 뿐 환자에게 의학적 설명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손목시계형 심정도 측정 결과의 문제점이 발견돼 고대안암병원 의사가 해당 환자에게 인근 병원 내원을 안내할 수 있을 뿐 내원 이유는 설명할 수 없다는 의미다.
휴이노와 고대안암병원 흉부외과팀은 얼마 전 심장수술 환자를 대상으로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 및 심전도 측정 임상시험에 착수한 상태이다.
심장 수술 환자들의 심전도는 손목시계형 장치를 통해 휴이노 서버를 통해 축적된 후 해당 의료진에게 전달된다.
의사는 휴이노에 전달된 환자 정보를 확인해 이상이 있다고 판단되면 병원 내원을 안내하는 방식이다.
서울대병원과 LG전자는 '패치형 심전도(ECG) 측정기'로 고대안암병원과 휴이노와 동일한 방식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복지부 유권해석과 문정부의 비대면 의료 사업화 간 관련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복지부와 과기정통부 모두 휴이노건 규제 폐지는 청와대와 무관하다며 부인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디지털 신산업제도과 관계자는 "지난 2월 복지부의 적극적 유권해석으로 휴이노와 고대안암병원 실증특례 규제가 사실상 필요 없게 됐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복지부와 논의한 내용으로 청와대에서 지시한 내용도 사실도 없다"고 일축했다.
복지부 역시 동일한 입장을 표명했다.
복지부는 유권해석 근거를 지난해 공지한 헬스클럽 등에 해당하는 건강관리서비스 안내서에 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건강관리서비스 중 대상자의 상태에 따른 진단 및 처방, 처치를 묻는 답변 내용에 '대상자의 건강상태 등을 확인해 특정한 병명과 병상 등을 확인해 주려는 의도가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면서 "이때 확인은 확정적인 가능성을 의미하며, 잠정적인 가능성을 언급하며 의료기관 내원을 통해 명확한 진료를 받아볼 것을 권유하는 행위는 (의료행위에)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복지부 임인택 보건산업국장은 "건강관리서비스 질의응답 내용에 대상자의 건강상태를 확인해 의료기관 내원을 안내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에 아니므로 이를 휴이노건에 동일 적용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과연 오비이락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14일 영상 국무회의를 통해 "급부상하고 있는 비대면 의료서비스와 재택근무, 원격교육 등 디지털 기반 비대면 사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할 것"이라며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의사-환자 원격의료 당위성을 공표했다.
복지부 전 공무원은 "의료계 반대가 분명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적극적 유권해석으로 규제를 없앴다는 점은 납득하기 힘들다. 과거 복지부 사례에 비춰볼 때 청와대 등 윗선의 지시가 없이 이뤄지기 힘들다"고 귀띔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병원 전원안내는 가능하나, 환자에게 전원 해야 할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 의학적 판단을 전제로 병원 내원을 권고하는 것이 아니냐“면서 ”문제 발생 시 업체와 의사, 정부 중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복지부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에 신중한 입장이다.
김강립 차관은 지난 4월 29일 중대본 정례브리핑에서 "한시적으로 진행 중인 비대면진료는 코로나19 감염 관련 의료인과 의료기관 보호조치이며 만성질환자 보호 그리고 일반환자의 의료기관 방문 보장 등을 위해 취해진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화상담 및 전화처방 등 원격의료 지속 가능성에 대해 "의료계를 포함한 전문가들의 충분한 논의와 의견수렴이 필요하다. 필요할 경우 법 개정을 통한 논의가 진행된다면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통해 이뤄져야 하고, 또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다가올 21대 국회에서 의료법 개정안 논의를 시사했다.
김강립 차관은 공교롭게도 전임 정부에서 보건의료정책관과 보건의료정책실장 재임 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 의료법 개정을 위해 시도의사회 릴레이 방문 등 의료계 설득에 나선 바 있다.
복지부의 적극적 유권해석 덕분에 휴이노건으로 시작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사업이 이미 해외수출 근거 마련을 위한 임상시험 등 부지불식간에 의료생태계로 스며들고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