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의대 의학과 2학년 김미성|작년 8월 대만, 저는 세계 방방곡곡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 합류했습니다. 모로코, 파키스탄, 스위스, 영국, 독일, 폴란드, 그 외에 발음하기 어려운 나라들까지. 다양한 나라만큼 다양한 의견, 다양한 수업 방식, 다양한 면허 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저는 Standing Committee of Human Rights and Peace라는 상임위원회 세션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시작은 Law of war, 전시에만 적용되는 법칙, 싸우기를 포기한 사람을 해치지 않는, 전시에만 적용되는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짧은 영상이었습니다.
뒷 좌석에 중상을 입고 피를 흘리고 있는 딸아이를 태운 아버지가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딸을 안고 달래 주고 싶은 지 연신 뒤를 돌아보지만, 운전대를 잡은 손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는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새된 울음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총을 든 사람들을 잔뜩 태운 차가 아이와 아버지가 탄 차를 지나쳐 갑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결국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좋아하던 노래를 불러 주며 아이를 깨우려 애쓰지만 아이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합니다. 한참이 지나 애써 도착한 병원, 차를 세우고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아버지는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웬일인지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안은 채로 망연자실합니다. 병원이 폭탄을 맞고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병원을 파괴하는 행위는 국제적으로 금지된 행위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비인간적이지요. 이어 우리는 전쟁에서 의료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마주치게 될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 제가 사는 나라는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군인들은 이웃 나라에 가서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 예정입니다. 정부에서는 저에게, 군인들이 생화학 무기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Premedication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몇 해가 지나,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돌아왔습니다. 정부는 PTSD를 심하게 겪고 있는 군인들을 다시 전쟁으로 내보낼 수 있도록, PTSD가 아니라 정상으로 진단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저는 지금 전쟁터에 있습니다. 제 눈앞에는 환자가 두 명 있습니다. 한 사람은 팔을 살짝 긁혔고, 다른 사람은 심각한 중상을 입었습니다. 저는 지금 머리에 총구가 겨누어 진 채로 팔이 긁힌 사람을 치료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답이 없는 문제를 가지고 한참 동안 씨름해 보았습니다. 사실, 전쟁이란 것을 겪어보지 않은 저는 대답을 할 때 그리 길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는 오히려 풀기 쉬운 법이니까요. 생각하던 대로, 옳다고 느끼는 대로.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를 조금 더 가까이 가져와서, 각자의 나라에서 느끼고 있는 Healthcare in Danger에 대한 예시를 나누어 보기로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환자에게 고소당하는 의사, 칼에 찔린 의사, 폐암 환자가 병원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지적하자 환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결국 사망한 의사, 총에 맞은 의사, 의사는 돈을 많이 벌어서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말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스위스에서 온 친구였습니다.
그 어떤 친구도 자기 나라는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정말 괜찮아도 그 자리에서 우리나라는 괜찮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단점은 눈에 잘 띄고 말하기 쉬워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선거를 치르며, 의료 정책과 더불어 의사를 바라보는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해 주변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USMLE, JSMLE를 이야기하며 이 나라를, 이 사회를 떠나면 이 문제를 마주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의사에 대한 차가운 시선과 편견, 고정관념은 전 세계적입니다. 언제부터 시작했을지도 저는 감히 추측하기 어렵습니다. 생각나는 모든 이유를 한 곳에 적는다 하더라도, 어딘가 빠진 게 있을 것 같은, 오래되고 무거운 색안경입니다. 이 색안경은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을 볼 때도 으레 씌워지곤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한낱 인간입니다. 무릎이 늘어난 추리닝을 입고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 헐레벌떡 아침에 학교로 뛰어가는 가는 한 학생입니다.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라는 책을 얼마 전에 한 간호사 선생님께서 써 주셨지요. 예, 간호사도, 의사도 그저 사람입니다. 어쩌면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저 조금 오지랖이 더 넓은 사람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합니다.
그리고 실은, 아주 다정하고, 섬세하고,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밤을 새우고, 밥을 굶고, 내 즐거움을 포기하더라도, 담당 환자가 건강하게 나아서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하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에 힘들었던 게 다 잊혀집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 사랑이 짝사랑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