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학회, 춘계 국제 학술대회서 혈압약 사용 지침 점검 "조기 개입해야 질병 진행↓"vs"약물 사용시 혜택 증거 없어"
고혈압 직전을 의미하는 '고혈압 전단계(Prehypertension)'은 정상치 보다 혈압이 살짝 높은 상태다.
방치했을 경우 대부분 고혈압으로 이행되기 때문에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질환도 아닌 고혈압 전단계부터 항혈압약물을 사용해야 하는걸까.
고혈압 전단계에 대한 약물 사용 여부를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한쪽에서는 예방적 차원의 약물 사용이 질병의로의 진행을 더디게 하거나 향후 예후에 도움이 된다며 찬성한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국내에서 심혈관 질환에 대한 위험이 다소 과장돼 있고, 혜택에 대한 뚜렷한 증거도 없다고 신중론을 펼쳤다.
7일 대한고혈압학회는 부산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제52회 춘계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고혈압 전단계 약물 사용에 대한 이해 득실을 점검했다.
고혈압 전단계라는 용어는 2003년 첫 등장했다. 미국 NIH 산하 고혈압 합동위원 회의 제7차 보고서(JNC)에서 고혈압의 새로운 진단 카테고리로 'Prehypertension'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JNC는 과거 정상 범주로 분류되던 120~129/80~84(SBP/DBP mmHg)와 경계 라인인 130~139/85~89를 고혈압 전단계로 분류했다.
2013년 대한고혈압학회도 이를 반영한 진료지침을 작성했다가 2018년 다시 130~139/80~89를 기준으로 혈압을 분류했다.
문제의 발단은 고혈압 전단계에 대한 고혈압학회의 치료지침이 위험인자별로 ▲생활요법 ▲생활요법 또는 약물치료로 나뉜다는 것.
이날 학회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위험인자에 대한 가중치 부여에 따라 약물 사용 등으로 적극 개입해야 한다거나, 생활습관 개선 정도로 충분하다는 식으로 입장이 엇갈렸다.
먼저 김현진 한양의대 교수와 박용현 부산의대 교수는 약물 사용에 손을 들어줬다. 생활습관 교정이 환자들에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다가 고혈압 전단계가 이후 실제 고혈압으로 이행되는 비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2001년 프래밍험 연구에 따르면 혈압이 다소 높은 사람들의 1년 고혈압 전환율은 35~64세가 11%, 65~94세는 15%지만, 4년 전환율은 각각 37%, 49%로 훌쩍 뛴다.
시간의 경과 및 혈압 수준에 따라 심혈관 질환 발생률에서도 극심한 편차를 보이는 것도 약물 개입의 근거로 작용한다.
박용현 교수는 "처음엔 심혈관 질환 발생률이 비슷하게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격차가 벌어진다"며 "여성을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에서 고혈압 전단계와 120/80mmHg 이하 군의 12년차 CV 질환 발생률은 각각 8%, 1% 정도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혈압에 따른 허혈성 심질환 사망률, 뇌졸중 사망률 등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보이는 만큼 굳이 약물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
미국의 사례를 보면 1900년부터 비만, 과체중 인구가 증가하며 심혈관 질환, 심질환, 관동맥성심장병이 증가 추세를 그린다.
반면 항고혈압 약제가 개발돼 널리 투약된 1950년대를 기점으로 질환은 급감 추세를 나타낸다. 비만, 과체중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심혈관 질환자의 감소는 곧 적극적인 약물 투약의 효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초기의 적극적인 개입은 향후 비슷한 경향성이 지속되는 레거시(legacy) 효과로도 이어졌다.
칸데살탄과 위약간 새로운 고혈압 발병률을 비교한 TROPHY 연구에서 초기 투약 2년째 칸데사르탄 군의 발병 위험도는 13.6%, 위약군은 40.4%로 나타난다. 이와같은 위험도 저하 효과는 투약 중단후 2년 째에도 각각 53.2%, 63%로 나타났다.
박용현 교수는 "약을 썼을 때와 안썼을 때의 이득과 손실을 따져야 하는데, 칸데살탄은 안전하고 내약성도 우수하다"며 "TROPHY 연구에서 심각한 이상 반응은 오히려 칸데살탄 투약군이 3.5%, 위약군이 5.9%로 위약군이 더 나쁜 결과를 나타냈다"고 지적했다.
SPRINT 연구에서도 강화된 혈압 강하 치료가 표준치료 대비 CV 결과를 25%까지 낮출 수 있었다.
▲약제 사용시의 이점있나? "증거 불분명"
반대 목소리도 나왔다. 아직 고혈압 전단계에 대한 약제 사용을 혜택으로 볼만한 강력한 증거가 없고, 생활습관 교정으로 충분하다는 게 주요 이유다.
김대희 울산의대 교수는 "심혈관질환의 위험도 평가도구로 사용되는 미국심장협회·심장학회의 PCE(pooled cohort equation)가 과대평가됐다는 의견이 있다"며 "특히 한국인으로 한정할 때 고혈압 전단계에서의 ASCVD 위험은 그리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인종 간 차이, 생활습관, 식습관의 차이를 무시하고 해외의 근거 자료들을 가져와 한국인의 치료 지침으로 활용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 하다는 것. 게다가 약물의 부작용 이슈도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김 교수는 "초기 칸데살탄으로 12개월까지 적극적으로 혈압을 관리해도 투약없이 추적관찰 기간에 들어가면 위약군과 혈압 차이는 거의 없어진다"며 "SPRINT 임상에서 약물 투약 후 나타난 심각한 이상 반응도 주의깊게 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표준 치료군 대비 적극적으로 혈압을 관리한 약물투약군을 비교하면 오히려 적극관리군에서 저혈압 발생이 67% 높게 나타났다"며 "이외 실신은 33%, 전해질 이상은 35%, 급성 신장 손상이나 신부전은 66%나 높게 나타났다"고 경고했다.
정혜문 경희의대 교수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정 교수는 "다양한 연구들을 보면 고혈압 전단계와 CVD 사망률간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고혈압 전단계는 모든 원인 사망과는 관련성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그간 진행된 어떤 연구에서도 약물 치료의 혜택이 생활 습관 교정보다 우위에 있다는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칸데살탄과 위약군의 심각한 이상 반응 발생률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는 "칸데살탄과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 병용군과 위약을 비교한 연구에서 병용군의 SBP가 낮게 나오지만 7년까지의 심혈관 원인 사망 및 심부전, 스트로크, 심근경색증, 관상동맥재개통 등 다양한 지표에서 둘 간의 통계적 유의성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어 "고혈압 전단계에 대한 약물치료가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낮춘다는 어떤 RCT 연구도 없다"며 "따라서 항고혈압 약제의 사용은 제한적이고 고위험 인자를 가진 환자들로 제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