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부지 치솟는 서울 아파트 값과 전세가를 잡겠다고 정부가 내놓은 이른바 ‘8.4 부동산대책’이 난관에 부딪혔다. 정책의 핵심인 공공재건축(공공참여형 고밀도 재건축)이 당사자인 재건축단지 주민들의 반응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규제에 묶여 주거 환경이 열악한 단지들에서조차, 염원이던 용적률 상향까지 해준다는데도 왜 분위기가 좋지 않을까. 한마디로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만큼 공공주택을 넣으면 추가 분담금이 발생할 수 있고 초과이익환수제도 여전하다. 게다가 인구 과밀로 교통 체증이 심해질 수 있는 등 반대이유는 숱하다.
이처럼 모든 문제를 다 '공공(公共)'이라는 틀 속에 우겨넣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악화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자유시장경제의 기본적 전제인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재건축단지 주민들의 반발에도 여당 당국자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게 당의 입장'이라면서 '이제 주택은 공공재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토록 양보할 수 없다는 ‘공공재’의 개념이 무엇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이용하는 포털 사이트 지식백과 사전에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공공재(public goods, 公共財)는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재화 또는 서비스로, 그 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더라도 소비 혜택에서 배제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진다.' 공공재의 예로서는 국방·치안·소방·도로·공원 등이 거론된다.
공공재의 특징으로 무대가성·비배제성(보편성)·비경합성(한사람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효용을 감소시키지 못한다)을 들 수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유재산이 금지된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 이상 왜 주택이 공공재인지 이해가 안된다.
가장 큰 특징인 무대가성(無代價性)의 경우, 국민들이 공공재를 향유하기 위해 대가를 전혀 지불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조세 등으로 간접 지불된다), 개인이 부담하는 직접적인 비용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주택이 공공재라면 집을 살 때 지불한 돈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전월세 비용은? 비경합성도 마찬가지다.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 강남아파트의 경우 수요는 폭발적이지만 공급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데, 이는 도리어 경합성(競合性)이 아주 큰 재화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눈치 챘겠지만 필자는 의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즉 정부나 사회 일각에서 자꾸 고장 난 녹음기처럼 반복되는 ‘의료는 공공재다’라는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 같은 소린지 말이다.
공공재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의료
의료 역시 공공재로 보기 힘들다.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항목의 경우 비배제성(보편성)이 일정 부분 적용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보험료 납부하지 못하는 경우 등 국민건강보험의 사각지대 또한 존재하고 있다. 또 건강보험 급여가 되지 않는 비급여의 경우 시장 원리에 따르므로 소득에 따른 서비스의 격차가 생기기 마련이다.
의료를 경제학적으로 굳이 분류한다면 공공재⦁사유재(私有財) 개념과 관점은 좀 다르지만, ‘필수재’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알다시피 필수재(necessary, 必須材)는 가격변화로 수요량이 크게 바뀌지 않는 재화다. 즉 생활하는데 필수적인 것이어서 수요가 가격 변화에 둔감한(비탄력적인) 재화를 말한다. 흔히 볼 수 있는 필수재는 쌀, 석유, 전기 등이 있다. 물론 필수재도 국민 생활에 직결된 것이어서 어느 정도 시장의 관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필수재가 공공재로 되려면 그 재화의 생산, 유통, 소비까지 국가가 거의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예컨대 쌀이 공공재가 되려면 국유지에서 공공 근로를 통해 쌀이 생산되든지 아니면 사유지에서 생산된 쌀을 국가가 전량 수매하여 국민들에게 똑같이 배급되어야 한다. 따라서 일부 교조적인 사회주의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필수재가 공공재로 되는 경우는 없다.
의료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들에게 필수적인 서비스이므로 필수재이긴 하지만, 공공재의 특징(무대가성, 비배제성, 비경합성)을 거의 갖추고 있지 못하므로 공공재로 불려서는 안 된다. 기초생활수급자나 국가유공자 등에게 조세와 지자체예산으로 제공하는 의료급여도 대개 민간의료기관을 통해서 제공되므로 공공재로 보기 어렵다. 국가가 의사를 양성하고 국영의료기관을 통해 대가 없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국식 NHS정도는 되어야 그나마 '준공공재'로 칭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가 20년 전 처음 의원을 개원할 당시 세무서에서 사업자등록증을 받아오는데 ‘면세사업자’라고 되어 있어서 잠시나마 즐거웠던 적이 있었다. ‘아, 국민 건강을 위해서 일하는 사업이고 또 의료보험 수가가 낮아서 세금이라도 면제해주는구나’ 하고. 그러나 이듬해 나온 세금 고지서를 보고 그건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세금 매기는 공공재 봤나
다시 부동산으로 돌아가 본다. 최근 들어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자산에 대한 세금이 크게 오르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열심히 일해서 아파트 하나 마련하여 살고 있는데 왜 이리 세금을 많이 뜯어 가는지 말이다. 1가구 1주택의 경우 집에서 거주하고 있을 뿐 팔기 전에는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나온 것이 ‘세금의 역설(逆說)’이다. 정부여당의 주장대로 주택이 공공재라면 세금을 매겨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단지 소유하고 있을 뿐인 사유재산에 대해서 공공재라고 하면서 재산의 구입·사용·처분 등을 제한한다면, 당연히 과세(課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의료 역시 마찬가지다. 의료를 공공재로 보려면 먼저 의대 교육 및 수련 과정을 국가가 책임지고 무료로 해야 하며, 모든 의료기관들을 국가가 설립 운영하면서(기존의 의료기관들은 시가로 인수하고) 종사자들을 공무원으로 채용하여 신분을 보장해줘야 한다. 의료분쟁에 대한 책임 역시 국가가 져야한다. 요컨대 의료를 공공재로 부르려면 그에 맞는 요건을 갖추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국민의 사유재산을 함부로 이용하거나 직업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는 일이다.
최근 Covid-19 방역사태로 자주 거론되고 있는 이른바 공공의료(公共醫療) 또한 마찬가지다(공공의료라는 단어가 타당한 것인지는 일단 논외로 하자). 민간의료만으로 부족한 경우, 예컨대 방역이나 중증외상, 분만 등에 있어 공공성을 도입하고 싶다면 정부는 공공재라는 정의에 맞는 투자를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공공재’로서 의료를 제공하고 있는 영국의 NHS처럼 조세를 통해 국가적 의료 인프라 자체를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 단적인 예로 만약 정부가 중증외상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공공재로 국민에게 제공하고 싶다면, 각 지역별 국영 외상센터를 설립하고 의료진을 공무원으로 채용하며 무료로 진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생색내기 지원금이나 규제 압박으로 적자 덩어리인 외상센터를 민간병원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운영하게 한다거나, 공공의대를 설립하여 졸업생들을 억지로 의무복무하게 하는 방식은 비효율적일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과 더욱 멀어지게 된다. 한 마디로 ‘공공(公共)’이라는 단어는 뭔가 정의롭고 달콤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엄청난 비용이 드는 방식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결국 부동산이든 병의원이든, 국민의 사유재산을 공공재라고 부르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외형의 자산뿐만 아니라 전문 직업인의 지식이나 기술 등 무형적 자산 또한 공공재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더욱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의료를 함부로 다루다가 파국을 맞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허울 좋은 공공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의료에 있어 공공성을 높이고 싶다면 의사들의 동의를 얻어 현실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