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에 초청된 대만 의사가 한국의 간염 관리 실태를 듣더니 정말이냐고 두번이나 묻더군요. 정부는 무얼 하고 있느냐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8억원만 더 주면 제대로 해볼 수 있는데."
오는 9월 C형 간염 조기 진단 시범사업을 앞두고 의학회 임원이 한숨을 쉬며 털어놓은 하소연이다.
실제로 의학계가 그토록 바라던 C형 간염 조기 진단 시범사업이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학계는 물론이고 일선 전문가들의 표정에서는 희비가 교차하는 모습이다.
그나마 수년간 끝없이 제언했던 조기 검진이 시범사업 성격으로나마 다시 시작된 것은 환영할만 하지만 성과를 내기에는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이유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시범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은 8억여원 정도다. 현재 시범사업 대상은 56세 이상 국가건강검진 수진자. 이 인원은 약 85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현재 C형 간염 항체 검사 비용이 4천원이라는 점에서 이 인원 전체를 대상으로 할 경우 최소 350억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 시범사업인 만큼 10%만 대상으로 해도 35억원이다.
문제는 또 있다. C형 간염은 항체 검사로만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항체 검사를 진행한 뒤 바이러스 보유 여부를 파악해 유전자(RNA) 검사를 받은 후에야 확진이 가능하다. 현재 C형 간염 유전자 검사 비용은 3만 5천원에서 4만원 선이다.
결국 C형 간염 환자 한명의 확진을 위해서 적어도 4만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의미. 현재 책정된 8억여원의 예산으로 이렇게 검사를 이어나가면 단순 계산으로 2만명 정도 외에는 검사를 진행하기 힘든 상황이다.
우리나라 C형 간염 환자가 최소한으로 추산해도 30만명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할때 불과 10%도 조기 검진을 진행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된다.
사실 이러한 문제가 제기된 것은 비단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C형 간염 조기 검진 시범사업은 이미 2017년에 진행된 바가 있다. 오히려 당시에 다나의원 사태 등으로 사회적 관심까지 모아졌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부족한 예산으로 제대로된 전국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고 결론적으로 국가 검진 항목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과를 맞았기 때문이다. 당시 문제가 됐던 부분은 비용 대비 효과성. 절대적으로 모수가 부족한데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이번 시범사업을 앞두고 전문가들의 우려가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다시 예산 부족으로 인한 부실한 사업으로 같은 결과지를 받아들게 될까 걱정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도돌이표를 그리고 있을때 다른 국가들은 발빠르게 C형 간염 퇴치에 나서고 있다.
이집트의 경우 불과 1년만에 성인 6250만명을 대상으로 전국적 조기 검진에 나서 환자를 발굴한 뒤 99%에 가까운 완치율을 보인 끝에 유병률을 0.5% 이하로 줄이며 C형 간염 퇴치 국가로 거듭났다. 이집트의 1인당 국민 소득은 2500달러에 불과하다.
대만도 아예 정부에 C형 간염 퇴치 부서를 별도로 설정하고 이미 10만명 이상의 감염자를 발굴해 99% 이상 치료율을 끌어 올렸다.
물론 이러한 정책이 진행되는데는 막대한 자원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대만의 경우 5년간 투입되는 예산이 2조원을 넘어선다. 하지만 이를 통해 대만은 2040년까지 C형 간염으로 인한 사망자를 5만 6천명 이상 줄이며 사실상 퇴치 국가를 선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이정도의 범 국가적 총력전은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다. 단지 이들이 원하는 것은 적어도 국내 현황만이라도 제대로 파악해 전략을 짤 수 있도록 최소한의 예산을 투입해 달라는 호소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가 K-방역 홍보를 위해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준비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이들이 바라는 예산은 8억원이다. K-방역 홍보 예산의 1%도 안되는 금액으로 이들은 C형 간염을 막아보겠다고 읍소하고 있다.
사실상 퇴치가 가능한 감염병인 C형 간염을 외면한 채 막대한 예산을 들여 K-방역을 자화자찬 하는 것을 세계에서 어떻게 바라볼까. 대만의 전문가가 한국의 간염 관리 실태를 듣고 놀란 이유에서 그 답은 이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