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대 정원을 10년간 총 4000명을 늘려서 의사수를 늘리겠다고 발표한 후 정부와 의사집단의 충돌이 극심한 가운데 있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유일한 근거는 OECD 데이터상 인구 천명당 2.4명으로 꼴찌 수준이라는 것이고, 국무총리와 복지부 장관은 대국민 담화 때마다 이 데이터를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OECD 데이터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정부는 인구당 의사수가 적기 때문에 마치 우리나라 의료 수준이 낮고 그렇기 때문에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럼, 정부의 논리처럼 한 나라의 의료 수준을 평가할 때 인구당 의사수가 가장 핵심적인 지표일까? 그렇다면 인구당 의사수와 국가의 의료수준은 비례해야 한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료 수준은 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인구당 의사수를 가지고 있으므로 일본의 의료 수준도 꼴찌 수준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우리나라 또는 일본의 의료수준이 낮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이는 한 국가의 의료수준과 인구 천명당 의사수는 관련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 실제 한 국가의 의료수준을 나타낼 수 있는 지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내가 집을 나서서 병원의 의사를 만나기까지의 시간과 의사의 실력 및 병원의 수준이 중요할 것이다. 먼저 내가 집을 나서서 병원의 의사를 만나기까지의 시간을 나타낼 수 있는 지표에는 인구당 의사수가 아니라, 인구당 병원수가 중요하다. 현대의 의료는 의사가 청진기 들고 맨 땅에 헤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병원이라는 갖추어진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인구당 병원수가 인구당 의사수보다 더 의미있는 지표인데, 한국의 인구당 병원수는 OECD 부동의 1위이다.
또 의사수를 따진다면 인구당 의사수가 아니라, 인구밀도를 고려한 의사수, 즉 의사밀집도가 좀 더 적절한 지표이며, 이를 나타낼 수 있는 국토 면적당 의사수는 우리나라가 OECD 3위이다. 우리나라에 병원이 많고, 의사도 많다는 것은 국민들도 체감할 것이다. 필자는 외국을 갈 때 항상 거리에서 병원을 찾아보는데, 그 때마다 느끼는 것은 병원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필자는 지방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병원의 정문을 나서서 조금 걷다 보면 다른 병원과 의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오히려 햄버거 가게를 찾을 수 없어서 몇 달째 햄버거를 못먹고 있는 형편이다.
그 다음 의사의 실력 및 병원의 시스템의 지표를 살펴보자. 먼저 의사의 실력에 대한 OECD 지표로는 전문의 비율을 들 수 있겠다. 우리나라 전체 의사 가운데 전문의 비율은 73%로 OECD 평균 65% 보다 매우 높다. 병원 시스템을 나타낼 수 있는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인구당 병상수는 OECD 2위이고, MRI/CT 보유 대수는 OECD 평균보다 높다. 의료시스템의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기대수명은 OECD 평균보다 높고, 주요 질환의 사망률은 OECD 평균보다 낮다. 이번 코로나19 방역 성적 또한 OECD 중 1위이다.
이렇게 OECD 지표에는 한 국가의 의료수준을 나타낼 수 있는 더 중요한 지표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왜 정부는 국가의 의료수준과는 관계가 낮은 지표 하나만을 마치 고장난 라디오처럼 반복하고 있을까? 국민 수준을 '앉아' 하면 앉고, '오른손' 하면 오른손을 내놓는 댕댕이 수준으로 보고 있는게 아닐까? 참고로 필자는 개와 고양이들의 랜선 집사로서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들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명예를 훼손할 마음은 전혀 없음을 밝혀둔다.
터널시야 현상이라는게 있다. 눈앞의 상황에만 집중하느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파악하는 능력이 저하되는 현상이다. 한 심리학자는 잘못된 판단의 원인에 대해서 압박과 권력이라고 했다. 압박을 느끼면 논리적 추론이 안되고,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뻔한 신호들을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누구의 압박을 받고 있는가, 아니면 전문가 집단을 무시해도 될 만큼의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가(그것은 권력이 아니라 폭력일 것이지만), 아니면 둘 다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