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의약품의 임상시험 중 발생하는 약물부작용 모니터링의 중요성과 식약처의부실한 실상에 대해서 말했다. 최근 아스트라제네카는 백신 임상시험에서 1예의 횡단척수염이 발생하자 임상시험을 보류했다가 재개했다. 인보사에 대해서도 FDA는 임상시험 보류와 재개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임상시험의 보류 및 재개는 FDA나 유럽에서는 매우 흔한 일이다. 안전이 우려되면 잠시 보류해서 안전에 대한 집중 검토 및 필요한 안전성 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우려가 해소되면 다시 재개하는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프로세스가 작동할까? 필자가 아는 한 식약처가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임상시험을 보류시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식약처의 임상시험 중 안전성 모니터링은 이와 같이 매우 부실하다. 그럼 시판 후 안전성 모니터링은 어떨까? 의약품은 임상시험을 통해 어느 정도의 안전성, 유효성을 입증한 후 허가되지만,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환자들의 지극히 제한된 조건으로 인해, 실제 시판 후 다양한 환자들에게 투여될 때에는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를 들어 FDA는 올해 로카세린이라는 비만 치료제가 암 발생율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로 판매 중지 및 회수 조치를 명령했다. 사실 이 약은 유럽에서는 동물실험자료상 종양 유발 위험성이 있어서 허가가 되지 않은 의약품인데 FDA는 허가를 했고, FDA가 허가를 했으니 당연히 우리나라도 허가를 해서 결국 이런 결과가 초래됐다. 식약처의 허가 심사 문제에 대해서도 다음에 다뤄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FDA에는 약물감시부서가 독립적으로 있으며, 안전성 정보 검토는 대부분 의사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유럽은 훨씬 더 안전성 검토에 적극적이고, 보수적인데, 유럽의약품청(EMA)의 산하기관인 약물감시 위해평가 위원회(Pharmacovigilance Risk Assessment Committee, PRAC)가 이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PRAC은 지난 8월 20일 8개의 의약품에 대해 안전성 조치를 권고했는데, 매월 이런 안전성 조치가 쏟아져 나온다. PRAC은 유럽연합의 각 국가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로서 PRAC의 권고에 따라 때로는 투여중지, 판매중지, 허가취소 등의 조치가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올해 2월 PRAC은 울리프리스탈의 간독성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평가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투여 중지를 권고했으며, 평가를 완료한 9월에는 허가 취소를 권고했다.
그럼 PRAC이나 FDA가 검토하는 주된 안전성 정보는 무엇일까? 다양한 안전성 정보가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정보는 제약회사가 시판 후 정기적으로 제출하는 PSUR(Periodic Safety Update Report)이다. PSUR에는 시판 후 보고된 모든 부작용 정보가 총망라돼 있다. 실제 제약회사는 PSUR을 비롯한 안전성 정보를 검토하고 이에 따른 조치를 취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지 못하다. 애쓰게 시판한 약의 공든 탑이 무너질까 안전성 정보를 축소하고, 저평가하기 쉽기 때문에 규제기관이 매의 눈으로 감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약사법에도 2015년부터 시판된 의약품의 PSUR을 정기적으로 식약처에 보고하도록 명시돼 있다. 그런데 이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제도였다. 식약처는 2016년 ICH(의약품국제조화회의) 정회원 가입을 위해 FDA와 EMA의 안전성관리시스템(GVP, Good Vigilance Practice)을 대거 약사법에 밀어 넣은 것이다. 그러면서 식약처는 2016년 당시 내부 직원 30명을 의약품부작용 감시 전문가로 키우겠다고 발표했는데, where are they?
DSUR 만큼이나 중요한 PSUR을 전혀 검토하지 않는 식약처에 PSUR 검토를 반드시 해야한다는 내용의 메일을 여러 차례 보내고, 구두로도 여러 차례 요청했었다. 식약처의 DSUR/PSUR 미검토는 필자의 식약처를 향한 1인 시위의 핵심이었다(이 2가지를 제대로 검토하려면 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1인 시위 다음날 식약처 고위 공무원은 필자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을 했다. "PSUR 미국이나 유럽에서 다 검토하는데, 우리가 또 검토할 필요가 있나?"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대답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허가한 약 왜 심사하십니까? 그대로 허가내주면 될 것을"
PSUR 검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식약처의 안전성 관련 조치는 거의 모두 FDA, EMA 등 선진규제기관에서 조치를 취하면 따라하는 식이 되고 있다. 반면 일본은 FDA, EMA와는 다른 창의적인 약물감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실상 약물감시 분야는 매우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분야이고, 정성적/임상적 평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제도를 기능적으로 따라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는 약물감시 전문가가 매우 희소하고, 또 PSUR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많은 의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항암제 개발을 주로 하는 한 다국적제약회사의 약물감시부서에는 600명이 넘는 의사가 일하고 있다고 한다. 식약처에 그 10%가 아니라 1%라도 있게 되기를 바란다.
P.S. 참, 작년 국정감사 때 식약처가 PSUR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변을 했던데 그것은 100% 뻥이었음을 밝힌다. 국회의원을 속일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과학자로서의 양심까지 버리지는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