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 환자 급증으로 의료인력이 부족해지면서 코로나 대응에 전공의를 동원, 전문의 시험을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자 당사자인 전공의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서울대병원 등 34개 수련병원 전공의협의회 대표자들은 14일, 성명서를 내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식 발상이라며 질타했다. 정부의 독단적이고 무책임한 전문의 시험 면제 방침에 반대한다는 게 이들 전공의들의 지적이다.
앞서 13일, 복지부는 정례브리핑에서 전문의 시험을 앞둔 3, 4년차 전공의를 활용하는 대신 전문의 시험 면제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의료현장의 전공의들은 의학수련과 환자진료라는 두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전공의' 신분에 대한 이해가 없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유감을 표한 것.
특히 시험을 치르지 않게 해주는 것을 마치 큰 수혜인 양 '당근'으로 내미는 비상식적인 행태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이들은 "급박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선 전공의들은 밤새워 고군분투하며 가장 먼저, 처절하게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며 "정부당국에서 의료진 확보를 원하는 심정도 이해가지만 동원령은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봤다.
먼저 전공의를 동원해 코로나 전선에 투입하더라고 총 의료인의 수에는 변화가 없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현재 각 전공의들은 이미 직간접적으로 코로나19 관련 의료행위에 종사 중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이들은 "전공의라는 신분의 특수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정부가 전문의 시험 면제라는 '혜택'을 주겠다고 언급한 것은 전공의 책무 중 하나인 '수련'을 도외시한 발언"이라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공공병상이 턱없이 부족한 의료현실에서 전공의를 동원한다는 것은 인력 운용에 대한 인건비는 별개로 하더라도 소속병원의 인사권과 진료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우려했다.
또한 이들은 전문의 시험 면제는 미래 의료의 질을 담보로 한 행보라는 점에서도 문제가 크다고 봤다.
전공의들은 제대로된 과정에서 수련을 받고 전문의가 되기를 원하며 정부의 의도에 맞춰 타협하고 거래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는 곧 환자와 국민들이 정당한 절차를 거쳐 검증된 전문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만약 정부의 의도대로 전공의 동원이 이뤄지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전문의 시험 면제를 운운하는 것은 수십년에 걸쳐 정착된 전문가 양성과정에 흠결이 생긴다고 봤다.
이들은 거듭 "전공의 동원 대책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여론에 휘둘리지 않는 현실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성명서 발표에는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이외에도 강남차병원, 강북삼성병원, 건국대학교병원, 고려대학교구로병원, 고려대학교안산병원, 고려대학교안암병원, 고신대학교병원, 구미차병원, 대전성모병원, 부산성모병원, 부천성모병원,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분당차병원, 상계백병원, 서울대학교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의료원,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성빈센트병원, 여의도성모병원, 연세대학교세브란스병원, 용인정신병원, 울산대학교병원, 원광대학교병원, 은평성모병원, 의정부성모병원, 인천성모병원, 전남대학교병원, 조선대학교병원, 중앙대학교병원, 창원파티마병원, 청주성모병원, 한양대학교병원, 화순전남대학교병원 등 전공의협의회가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