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표준안 마련 공포…대리점법 적용 담보 및 대금 지급, 지연 이자 명시 "유통 개선 기대"
의료기기 유통 구조 개선을 위한 숙원 사업이었던 표준계약서가 마침내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되면서 과연 갑질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가장 문제가 됐던 담보와 대급 지급 시기, 지연 이자 등이 명시된데다 현행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점에서 강제적인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 의료기기 표준계약서 발표…3년만의 성과
공정거래위원회는 6일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의료기기업종 표준 대리점 거래 계약서를 공식 발표했다.
일명 표준계약서로 통칭되는 이 서류는 의료기기 공급업자와 대리점 사이에 계약에 명시해야 할 내용을 기술하고 공통 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공급사에 따라 제각각으로 작성했던 계약서를 정비하고 반드시 들어가야 할 핵심적인 틀과 내용을 명시한 거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핵심 내용으로는 계약 기간과 납품 방법과 장소 등 계약서에 들어가야 할 기본적인 사항들이 명시됐다.
여기에 더해 공급 가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담보금을 명시했으며 대금에 대한 지급 시기와 수단은 물론 지연 이율을 명확하게 기재하도록 했다.
과거 이러한 부분들이 모호하게 작성돼 공급사들의 갑질에 대리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의료기기 공급 및 유통에 대한 갑질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고의로 대금 지급을 미루는 방법. 특히 일부에서는 대금 지급을 1년 이상 미루는 경우가 생겨나면서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법정 소송외에는 별다른 대응책이 없었다. 특히 소송에 들어가더라도 소송 기간동안 대금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이에 대한 피해 보상의 기준도 모호해 실제 구제로 이어지는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표준계약서에 대금 지급 시기와 수단, 지연 이율까지 명시되면서 앞으로는 이에 근거해 대금 지급을 요구할수 있게 됐다.
담보금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의료기기 유통에 있어 담보금의 개념이 매우 미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상 대부분의 계약에서 담보가 아예 없다시피 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이진휴 감사는 "지금까지 의료기기 유통에 있어 담보의 개념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며 "결국 물건을 공급했는데 부도가 난다던지 하는 경우 100% 손해를 떠안을 수 밖에 없었다는 의미"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하지만 표준계약서에 명확하게 담보 비율과 금액란이 있는 만큼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이를 설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문제가 생겼을 경우 공정위나 법원의 판단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강제력을 갖는다는 의미"고 덧붙였다.
대금 지급 시기, 수단, 지연이율 명시…"투명화 기대"
대금 지연 이율도 연장선 상에 있다. 대금 지급을 미룰 경우 지연 이자가 계속해서 부과된다는 점에서 가장 심각했던 갑질 문화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계약 기간과 납품 장소를 명시한 것도 성과라는 분석이 많다. 이 또한 의료기기 유통의 가장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의료기기의 특성상 창고 등의 활용이 불가피한데 지금까지는 납품 장소를 명확하게 명시하지 않아 창고 비용과 재고 관리 등에 있어 대리점 등 소매점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피해를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계약 기간도 갑질의 온상이었다. 공급사들의 영향력이 워낙 강하다보니 아예 계약서를 쓰지 않거나 해지 조건 등을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던 이유다.
의료기기산업협회 유철욱 유통구조개선 TF 위원장은 "지금까지 관행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조건들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계약 기간이나 납품 장소 또한 공급사가 바꾸고 싶을때 아무런 상의없이 변경하고 나아가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표준계약서의 의미는 이러한 불공정 계약의 단초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을 명확하게 명시해 갑과 을이 동등한 입장에서 상호 합의를 기본으로 계약을 진행할 수 있다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많다는 평가다. 일단 유통 구조 문제의 핵심인 간납사가 빠져 있는 것이 첫번째 문제다. 또한 다국적 기업의 경우 일방적으로 이를 차용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히고 있다.
다국적 의료기기기업인 A사 임원은 "글로벌 기업의 경우 본사 차원의 계약서가 별도로 있는 만큼 이를 함부로 변경, 수정하기 힘들다"며 "표준계약서를 일정 부분 참고는 하겠지만 차용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만약 그렇게 되면 각 국가마다 계약서가 다르게 진행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대다수 글로벌 기업들도 마찬가지 상황일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의료기기산업협회 등은 일단 첫발을 뗀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한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는 만큼 단초를 만든데 대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의료기기산업협회 유철욱 유통구조개선 TF 위원장은 "공정위와 이번 사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역점을 뒀던 부분이 간납사인데 표준계약서가 대리점법에 의거하다보니 간납사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 있다"며 "하지만 공정위도 이 부분을 이번에 명확하게 인식한 만큼 공정거래법 등을 통해 큰 틀에서 다시 묶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다국적사 같은 경우 본사 양식이 있는 만큼 한번에 변경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하지만 대기업일수록 공정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계약서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기는 쉽지 않은 만큼 점차 반영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