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치한 혈우병 환자에 22일 노보세븐 투여, 심평원 4일치만 인정 서울고법, 병원 패소 판결 뒤집고 "의료진 판단 적절했다" 판단
혈우병 환자가 이를 뽑았다. 병원은 환자가 입원한 시점부터 22일 동안 노보세븐을 투여했다. 치아를 뽑은 후에도 잇몸 부위에 혈종이 나타났고, 과거부터 계속된 왼쪽 팔꿈치 관절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2일 중 4일 분만 인정하고 나머지 18일분에 해당하는 급여비 6억2000여만원을 삭감했다. 법원은 이것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 제4-3행정부는 경기도 A대학병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급여비용 조정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의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학병원의 손을 들어준 것.
A대학병원은 8번 혈액응고인자가 결핍된 혈우병 A형 환자에게 발치 전후 22일 동안 노보세븐알티주(성분명 eptacog alfa, 이하 노보세븐)를 투여하고 급여 청구를 했다.
심평원은 이 중 발치 전 이틀, 발치 후 유지요법으로 투여한 이틀을 합해 총 4일 분만 적합하다고 급여를 인정했다. 나머지 18일치에 해당하는 비용 6억2013만원은 조정했다. 즉, 삭감한 것.
"발치 전 노보세븐을 2시간 간격으로 연속 투여했음에도 잇몸 출혈이 악화되고 팔꿈치 통증, 손목 배굴 불가 등의 증상이 계속된 것을 보면 노보세븐은 효과가 없었다고 보인다"는 게 심평원의 이유였다.
A대학병원은 심평원 결정에 불복하고 이의신청했지만 기각당했다. 건강보험분쟁조정위원회에 심판청구도 했지만 이마저도 기각당했다.
심평원 결정과 의협의 진료기록 감정은 달랐다
A대학병원이 발치한 혈우병 환자에게 보름이 넘도록 노보세븐을 투여한 것이 과연 의학적으로 적절했을까.
A대학병원의 이의신청에 대한 심평원과 건강보험분쟁조정위원회 판단과 법원이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에 맡긴 감정촉탁 결과는 차이가 있었다.
심평원은 혈우병 전문가의 의견이라고 내세우며 이 환자 치료 사례를 노보세븐에 반응이 없다고 판단했다. 치료 약제를 변경하거나 외과적(치과적)으로 국소 지혈에 좀 더 노력하는 등 다른 치료방법을 시도해봐야 했다는 것이다.
특히 진물 등이 새어 나오는 증상이 계속되는데도 노보세븐만 2시간 간격으로 계속 투여한 것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심평원 의견이었다.
임상적으로 노보세븐에 반응이 있다면 3번 연달아 투여했을 때 경비한 출혈의 경우 90% 이상 지혈된다. 노보세븐을 6~7회 투여해도 지혈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분쟁조정위도 "전반적으로 발치 후 치과적으로 국소 지혈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고 출혈이 계속되면 1~2일 안에 효과를 측정해 다른 약제로 변경하는 등 신속한 조치가 필요했다"는 판단을 내렸다.
반면, 의협은 한국혈전지혈학회 등의 의견을 받아 "주치의가 종합적으로 판단해 우회인자의 지속투여 혹은 증량, 변경을 판단하는 게 의료현장에서는 가장 적절한 치료"라는 취지의 진료기록 감정 의견을 법원에 제출했다.
의협 의료감정원도 "수술 부위 출혈이 지속됐더라도 약제에만 모든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고 노보세븐과 훼이바 사이 어떤 역할의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모든 것은 환자 증상에 따라 진료하는 것이고 약제 변경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객관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2심 법원은 의협의 감정 결과에 무게를 실었다. A대학병원이 약제를 교체하지 않고 계속해서 노보세븐을 투여한 게 적절한 조치였다고 봤다.
혈우병 환자는 경미한 시술을 하더라도 3~13일의 편차를 두고 지혈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노보세븐은 소규모 수술 후 일주일 동안 투여를 권고하고 있다.
재판부는 "발치 후 출혈은 약제 교체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빠르게 약제를 교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환자에 따라 변이가 심하고 13~14일까지 지혈이 지연되기도 하므로 약제를 48시간 안에 교체해야 한다는 건강보험분쟁위 판단이 반드시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했다.
또 ▲노보세븐을 길게 투여하는 게 흔하지는 않지만 2주 이상 약제가 투여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완전한 지혈 효과는 없었지만 노보세븐 투여로 증상이 완화되는 양상을 보였으며 ▲환자는 마약성 진통제를 요구할 정도로 통증을 심하게 호소하고 있어 약제 변경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고 바꿔야 할 만한 뚜렷한 근거가 없었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의료진의 판단이 적절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