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가 "감염 예방 아크릴판도 자비로 구입했는데" 한쪽지원은 의협 "백신 냉장고 알람온도계 비용 지원도 결국 실패했는데" 허탈
정부가 추경을 통해 전국 약국을 대상으로 비대면 거치형 체온측정기를 지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의료계는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 지원"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전국 약국 2만3000곳을 대상으로 비접촉 체온계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예산은 추경을 통해 마련할 예정이며 규모는 약 81억6000만원이다.
비대면 체온계는 체온측정기와 거치대로 이뤄져 있으며 한 대당 43만8000원이다. 이 비용의 90%를 정부가 부담한다는 계획이다. 일선 약국은 10%인 4만4000원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의료계는 코로나19 상황이 1년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체온계 지원이라는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하고 있다.
서울 A이비인후과 개원의는 "코로나19가 대유행인 상황도 아니고 이미 서서 얼굴을 갖다 대면 체온 측정이 되는 시스템이 웬만한 곳은 다 구비하고 있다"라며 "이제 와서 약국에만 비용을 지원해 준다고 하면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서울 B내과 원장도 "이미 의원 출입구부터 진료실 안까지 비접촉 체온계를 자비로 구입해 설치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비용 지원은 한 번도 없었다"라며 "요즘 체온계 없는 곳을 찾는 게 더 어렵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한창 방역을 할 때는 그렇다 하더라도 백신이 들어오고 하는 시기에 체온계 지원 사업이 실효성 있는 예산 집행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대한의사협회 한 임원은 정부와 의료기관 지원책 관련 대화를 했던 경험을 공유하며 이번 결정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과거 코로나19 관련 지침을 만들 때 아크릴판 등으로 차단막을 설치하면 의료기관 내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해도 휴원 등 행정 조치시 감안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라며 "이때 차단막 설치비 지원을 슬쩍 물어봤는데 일반 자영업자도 스스로 보호를 위해 자비로 하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굳이 약국에 체온계를 지원해 준다고 하면 시기적으로도 안 맞지만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여기다 최근 개원가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사업 참여 과정에서 백신 냉장고에 설치할 알람기능 온도계 설치비 지원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알람기능 온도계 설치는 강제하면서 비용 지원에는 소극적인 정부 태도에 의료계는 공분했다.
이에 의협은 정부와 협의를 통해 25만원 한도내에서 실비 정산하기로 했다.
서울 C내과 원장은 "자비 60만원을 들여 온도 이탈 알람을 휴대전화, 이메일로 알려주는 기계와 자동 온도기록계를 따로 구입했다. 냉장고에 온도계만 4개가 붙어있다"라며 "약사는 체온계 설치비로 40만원 가까이 받는데, 의사는 지원비보다도 더 돈을 쓰게 됐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체온계 비용을 지원한다면 약국뿐만 아니라 코로나19 환자 접촉 가능성이 높은 의원을 비롯해 한의원, 치과의원 등 요양기관에 모두 똑같이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협 또 다른 관계자는 "체온계가 지금 왜 국가 돈을 써가면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다"라며 "알람기능 온도계는 현 상황에서 꼭 필요한데도 정부를 설득해 비용 지원 약속을 받기까지 어려움을 겪었다. 한편으로는 허탈하기도 하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코로나19 환자가 다녀간 의원 또는 치료하는 의료기관이 아닌 일선 의료기관은 페이스실드, 수술 가운 같은 4종 보호구 지원도 한 번 받은 적 없다"라며 "정부는 지금 예산을 써야 할 곳이 어딘지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