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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병리는 선택 아닌 필수…범 국가적 노력 필요"

발행날짜: 2021-04-05 05:45:50

장기택 삼성서울병원 병리과 교수
삼성서울병원 국내 최초 시스템 구축…"안전 필수 요소"
초기 비용 및 운영비 부담이 관건…"수가 지원 서둘러야"

"디지털 병리는 더이상 늦춰서는 안되는 시대 흐름입니다. 환자 안전과도 직결된 문제인데다 딥러닝 기반 의료 인공지능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죠. 문제는 결국 비용이에요.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풀어가야 한다는 의미죠."

4차 산업 혁명의 바람을 타고 디지털 병리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과거 현미경과 슬라이드로 대표되던 병리과의 풍경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국내에서 디지털 병리는 거북이 걸음을 걷고 있다. 심지어 제대로 시스템을 갖춘 곳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삼성서울병원이 선제적으로 디지털 병리 시스템을 갖추고 나아가 5G 기반의 통합형 모델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 구축을 주도한 병리과 장기택 교수(대한병리학회 총무이사)를 찾아 이야기를 들어본 이유다.

"디지털 병리 시스템 환자 안전 위한 최소한의 안전핀"

실제로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2019년 디지털 병리 전환를 선포하고 올해 3월 마침내 시스템을 정립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장기택 교수는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장기택 교수가 국내 첫 디지털 병리 전환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사실 국내 대형병원에서 일어난 슬라이드 오류 사건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어요. 암이 없는 사람에게 암 수술을 한건데 미국이라면 수십억대 소송을 당하고 패소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 특성상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이라는데 있어요. 대형병원에 수만명의 환자가 몰리는데다 이들은 또 다른 대형병원으로 자주 옮겨다니죠. 병리 슬라이드가 제대로 남아나겠어요?"

그러한 면에서 그는 디지털 병리 전환은 환자 안전을 위한 필수 요소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으로는 심각한 사건이 또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지적.

1년에 수십만개에 달하는 병리 슬라이드가 만들어지고 이를 물리적으로 보관하며 이동하는 한 오류가 없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겠냐는 반문이 돌아온 이유다.

장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을 예를 들면 하루에 수백장의 병리 진단 보고서가 나오고 슬라이드만 1년에 30만장이 나온다"며 "이를 물리적으로 보관하고 이동하게 되면 그 가운데서 일어날 수 있는 오류의 위험은 셀 수 없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러한 물리적 이동보다는 파일 전송이 안전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며 "이에 대한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디지털 병리"라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지금의 슬라이드 보관 방식으로는 얼마 가지 않아 큰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나마 대형병원의 경우 상황이 낫지만 일선 의료기관들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

결국 환자의 히스토리가 되는 병리 슬라이드가 효용성을 잃고 그대로 방치되거나 버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만큼 디지털 병리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다.

장기택 교수는 "그나마 대학병원에는 별도의 공간에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된 채 병리 슬라이드를 보관하고 있지만 일선 의료기관에서는 이같은 시설과 공간을 구비하기 힘들다"며 "온도나 습도차가 심한 창고와 같은 곳에 보관되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시간이 지날 수록 슬라이드 양은 많아지게 되고 결국 이를 보관할 공간은 점점 더 줄어들게 된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상당수 의료기관들이 아예 보관할 곳이 없게 되고 인식할 수 없을 만큼 슬라이드가 망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디지털 병리 장기적으로도 이득…문제는 초기 비용

특히 장 교수는 디지털 병리 전환이 장기적으로 의료기관의 경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초기 비용이다.

장 교수는 이미 디지털 병리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강조했다.
경험적 측면에서 볼때 이러한 보관 공간과 인건비, 종이 등의 비용이 대폭 감소하는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는 분명한 이득이 있다는 것. 또한 숨어있는 안전 비용에 대한 감소 효과도 분명하다고 조언했다.

장 교수는 "현재 삼성서울병원만 해도 90평이 넘는 공간에 파라핀 블록과 슬라이드를 보관 중에 있는데 이를 모두 디지털로 바꾸면 공간 활용도가 매우 높아진다"며 "또한 1년에 수천만원씩 들어가던 종이값과 수억원에 달하던 인건비도 모두 그대로 남는 금액"이라고 귀띔했다.

또한 그는 "병리 슬라이드의 분실과 파손 등 숨어있는 안전 비용에 대한 부분도 충분히 감축할 수 있는 예산"이라며 "특히나 슬라이드가 바뀌는 등의 심각한 안전 사고를 미연에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부가적 효과"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초기 비용이다. 이러한 장기적 효과를 기대하기에 초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서울병원도 디지털 병리 전환에 수십억원에 예산이 들어갔다. 슬라이드 스캐너에 투입된 비용만 10억원이 넘는 상황. 일선 의료기관들이 가야할 길이라는 점을 알지만 망설이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다.

대한병리학회 등이 디지털 병리 가이드라인 등을 만들며 수가 적용에 힘쓰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수가 적용 없이는 저변 확대가 쉽지 않은 이유다.

장기택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경영진의 과감한 결정으로 전환에 성공했지만 상당수 의료기관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결국 디지털 병리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서는 수가 적용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상의학이 순식간에 디지털로 변화하는데 가장 기폭제가 된 것이 바로 수가"라며 "한두 병원이나 학계의 노력만으로 결코 바꿀 수 없는 흐름이기 때문에 결국 정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결국 병리 슬라이드를 표준화하고 병원간 시스템을 연결하는 한편 딥러닝과 인공지능의 기반이 되는 빅데이터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수가 적용을 통한 전국적 보급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국가적인 지원이 없이는 결국 일부 병원만이 움직이게 되고 오히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이러한 위험한 공존은 의료 시스템과 환자 안전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인 셈이다.

장 교수는 "당분간은 하이브리드 형태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할 수 밖에 없겠지만 하루 빨리 전국적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다면 디지털 병리의 장점이 퇴색될 수 밖에 없다"며 "특히 디지털 전환에 적응 기간과 보완 기간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속도를 붙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그는 "특히 디지털 병리는 인공지능과 맞물려 전 세계적인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충분히 이 분야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만큼 국가적 지원을 통해 저변을 확대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