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대학병원 "적정병원 없다" vs 전공의 "소극적 행보" 대전협 측 늦을수록 2차 가해 문제...”정부 개입 필요”
서울 한 대형 수련병원 가정의학과에서 집단 괴롭힘 갈등이 발생, 이동수련까지 추진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현실에 부딪혔다. 이동수련을 받겠다고 나서는 수련병원이 없기 때문.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수련환경평가위원회가 집단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는 K대학병원 가정의학과 2년차 전공의에 대해 이동수련을 결정했음에도 K대학병원은 한 달이 넘도록 해결을 짓지 못하고 있다.
K대학병원 가정의학과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K대학병원 가정의학과 A전공의는 지난해 11월 상급 연차와 교수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며 수평 위에 민원을 넣었다. 상급연차 전공의들이 A전공의만 의국으로 따로 불러 평소 근무 태도, 업무 능력이 형편없다고 평가절하하며 욕설을 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A전공의는 "너의 의국 내 평판은 바닥의 쓰레기야 쓰레기", "윗연차가 너를 피해가는 것을 느꼈냐", "내일 당장 나가도 아무도 널 잡으러 올 사람이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등의 말을 일상으로 들었다고 호소했다.
K대학병원은 내부적으로도 괴롭힘 방지 위원회를 열고 괴롭힘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 수련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등 중재에 나섰다. A전공의가 참석하는 점심 집담회에 가해 교수 참석을 제한한다는 등의 수련계획안도 만들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게 A전공의의 주장.
가정의학과 의국 내에서 어느 누구 하나 A전공의와 눈을 마주치는 일이 없는 지경에 이르자 A전공의는 결국 이동수련을 병원 측에 요청했다. 수평위도 지난달 초 이동수련 요청을 받아들였다.
A전공의가 민원을 제기하고 이동수련이 결정되기까지 4개월, 여기서 추가로 한 달이 더 지났지만 A전공의는 여전히 K대학병원에 있다.
총 5개월 동안 K대학병원 가정의학과는 의국 내규를 재정비했고, A전공의가 당직일 때 병원을 벗어났다, 진료기록을 허위로 작성했다는 등의 이유로 병원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징계위가 징계없음 조치를 내렸음에도 다른 위반 사항에 대해 징계위에 회부하고 있다. A전공의는 현재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A전공의는 병원이 의도적으로 이동수련 병원 찾기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전공의는 "지속적인 괴롭힘, 명예훼손,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병원과 가해자는 어떤 사과나 재발 방지 약속도 없었다. 최소한의 피해자 생활 여건조차 마련해 주지 않고 있다"라며 "공식적으로 징계를 회부하며 나가기라도 바라는 듯 괴롭힘을 지속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K대학병원 가정의학과장은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이동수련 병원을 찾고 있지만 적정한 병원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정의학과장은 "이동수련이 결정됐다고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이동수련병원이 뚝딱하고 나오는 게 아니다. 여러 조건을 맞춰야 한다"라며 "특히 A전공의는 서울 또는 경기도에 위치하는 수련병원을 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동수련 내용은 학회를 통해서 공고를 낸 지 2주 이상 됐는데 선뜻 나서는 병원이 없다"라며 "받아주는 병원이 없으면 (이동수련이) 어려운 문제"라고 털어놨다.
A전공의 소식을 접한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13일 이동수련을 촉구하는 공문을 K대학병원으로 발송했다.
대전협 관계자는 "이동수련을 하려면 병원 교육수련부에서 적극 개입해야 한다"라며 "이동수련 병원을 빨리 알아봐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고 말했다.
"이동수련 절차 늦을수록 2차 가해 노출 문제"
전공의들은 이동수련을 규정하고 있는 법의 허점을 지적하고 있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13조에는 이동수련 조치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전공의가 폭행 등 부득이한 사유로 해당 수련병원 등에서 수련을 계속 받기 어렵다고 인정하면 다른 수련병원 등으로 소속을 옮겨 수련할 수 있다. 여기서 이동수련 조치의 내용, 절차, 방법은 대통령령에서 정하고 있다.
서울 대형수련병원 내과 전공의는 "구조상 수련책임자 의지가 있지 않는 이상은 이동수련이 실제로 성사되기는 어렵다"라며 "병원에 모든 절차를 맡기지 말고 정부가 적극 개입해서 전공의를 이동시키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폭력 등이 부득이한 사유로 이동수련 대상이 되는데 절차가 늦어지게 되면서 2차 가해에 노출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전협도 이동수련 환경의 어려움을 충분히 인지하고 지난 1월 이동수련 절차 등이 담긴 '수련환경 개선 방안'을 만들어 대한의사협회 범의료계투쟁특별위원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대전협은 이동수련 절차를 4단계로 만들었다. 1단계는 우선 수련병원 각 진료과에게 미리 이동수련 대상 병원 지정 신청을 받는다. 이동수련 대상 전공의는 수련병원별로 1, 2, 3차 지원을 하고 수련병원별로 지원자를 심사해 합격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다. 마지막 단계는 지방 순위에 따라 전공의를 배치하는 식이다.
대전협 전 임원은 "이동수련 절차나 방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별 내용이 없다"라며 "현재법 테두리에서는 이동수련이 안됐을 때 피해 보는 것은 결국 전공의 개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폭력 등의 부득이한 상황으로 수련이 어렵다고 이동수련을 허용하는 것은 손에 꼽힐 정도로 극히 드물다"라며 "아직 의료계 문화 자체가 전공의가 다른 병원으로 이동수련을 하는 자체를 꺼린다. 전공의 개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라고 꼬집었다.
문화는 인식을 바꿔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정부가 이동수련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것.
이 관계자는 "정부는 해마다 이동수련이 가능한 수련병원의 지원을 받아 리스트를 만들어 놔야 한다"라며 "이동수련을 원하는 전공의가 나오면 수련환경이 좋은 병원, 입원전담전문의를 채용하는 숫자가 많은 병원 등에 우선순위를 주는 등의 조치를 취하면 된다"라고 주장했다.
또 "전공의 개개인, 병원 단위에 (이동수련 해결을) 맡기면 안 된다"라며 "어떤 전공의가 올지는 모르지만 이동수련이 필요하다면 질 좋은 환경에서 수련할 수 있는 병원 명단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